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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등 무거운 물건을 반품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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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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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BY 마음 2001-11-24

제4장 사생활

“미스박!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강주사 지금 난리 났는데?”
가족보건계 정여사가 계단으로 오르는 날 보고 황급히 말했다.
“왜요?”
“미스리가 없어졌데나 봐.”
“없어지다뇨?”
“몰라! 출근을 아예 안 했다는데...어젯밤에 여기 숙소에 있었다면서?”
“누가 그래요?”
“숙직했던 사람들이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고 하던데...?”
토요일 그런 일이 있고 사실 나는 한번도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
다.
다음날 윤미랑 함께 숙소를 일치감치 나와서 함께 주일 낮 예배를 보고 뒤이어 청년회원들 중 마음 맞는 사람들 몇 명이서 함께 오랜 만에 바다도 보고 근처에 사는 교우 집에서 저녁까지 얻어 먹고는 스텔라 승용차에 빼곡히 끼워 타고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가 숙소로 온 것은 열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녀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본 것 같았다.
"미스리 방에는 가 봤어요?"
"당연히 가 봤지. 미스박도 안 보이고 해서 미스박 찾고 있던 중이야.어떻게 된 일이야?"
정여사는 평소에도 미스리에 대해서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무실엔 강주사가 아예 서서 뒷편 숙소 쪽을 내다 보고 있었다.
"영주 집에는 전화 해 봤어요?”
“안 그래도 그래보까 어쩌까 하고 있는 중이었네. 어젯밤에 있었다면 지금 해 봤자 아직 집에 도착할 시간도 아니고...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뭐!”
병원쪽 직원이래도 보건 행정계에서 그 인사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하고도 직접 연관이 되는 업무였다.
무단결근, 그에 대한 처벌보다는 그녀가 도무지 행방불명된 연유를 알 길이 없다는 게 더 더욱 사람들을 긴장 시켰다.
그러던 중에 남자 직원 한사람은 슬쩍이 미스리 흉을 보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그래 갖고 우째 시집을 갈라고 그러고 다니는지...쯧쯧..”
“놔 두세요. 다 믿는 구석이 있나 보지 뭐!”
유일한 유부녀 정여사는 그녀의 화통한 성격만큼이나 막힘이 없었다.
“미스리하고 미스박은 너무도 달라. 같은 나인데도 보면 ...”
“미스박이야 어디 그런 생각없는 행동 같은 거 할 사람인가요. 여자 나이 스물셋이면 적은 나이도 아니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도 한참 지났네요. 그런데 ...”
그녀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비슷한 걱정을 했다.
“이 아가씨가! 별일은 없어야 할 텐데...”
제일 걱정을 하는 사람은 내 직속상관 강주사였다.
그래도 미스리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자신의 책임하고도 상관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아직 소장님께는 보고를 안 드렸는데...벌써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어떻할까. 미스 박! 내가 엠브란스라도 타고 읍내 한바퀴 쭉 둘려보고 오까? 어디 가서 쓰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병원에 오기가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갔을지도 모르고...”
강주사는 아예 다른 일은 손을 놓고 있었다.
“오늘 하필 계장님도 출장 중이시고 이일을 어떻하면 좋지?”
“강주사님! 아무튼 집으로 전화는 한번 해 보세요.”
내 말에 강주사는 인사기록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거기가 이정은씨댁 맞습니까?”
“네? 영주 아니예요?”
“그러면 이정은이라고 간호원인데요. 그런 분 혹시 안 사나요?”
“아버지성함이 이상도씨인데...”
“아...예...”
한참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정은씨 아버님이세요?”
“여기 보건소입니다. 미스리 혹시 ...”
“다른게 아니고 미스리가 몸이 안 좋다더니 오늘 출근을 안했거든요. 혹시나 집에 간 것은 아닌가 싶어서요.”
“네, 그래요. 예!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이 좀 알아볼께요.”
“네. 안녕히 계세요.”
강주사는 연신 굽실거렸다.
“괜히 전화했네. 걱정들 많이 하겠구먼...그런데 미스리 집 사정이 안좋은가...”
강주사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다가 나보고 미스리 혹시 왔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한번 가보고 오라고 했다.
사무실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여직원 한사람이 따라 내려 오면서 강주사가 혼자 보내기 좀 그렇다고 함께 갔다 오라고 했단다.
내 뒷모습이 좀 그랬나 보다.
“미스박! 신경 많이 쓰이죠? 숙소에 굳이 있을 필요 뭐 있나요. 방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여직원은 진작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네...안 그래도 어떻하까 하고 있었어요.”
그녀의 걱정스러움이 그녀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9급 공무원 월급이라면 방 얻어 살만큼 넉넉한 봉급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나였다. 왠만하면 그냥 살까 싶었는데...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미스리를 두어 차례 불려봤다.
역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방문을 혹시 싶어서 열어 봤지만 문은 그대로 열려 있는데 사람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문을 닫고 다시 나오려다 그녀 방 앞에 놓여 있는 신발이 의심스러워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역시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 댔고 같이 온 김양도 표정이 심각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붙박이 장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렸다.
그 속에 미스리가 있었던 것이다.
길이는 충분했겠지만 폭은 아무리 미스리가 날씬하다고 해도 움직일 만한 공간이 생기지 않을 만큼 좁았다.
그 속은 필시 무덤 속 같았다.
그 속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미스리는 사는 것을 포기한 사람이었다.
단지 스스로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는...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부스스 눈을 뜨더니 나한테는 눈조차 주지 않은 채 옆에 서 있는 김양한테만 아는 척을 한다.
미스리를 내버려둔 채 우린 일단 그곳을 나왔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말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를 무시해 버린 그녀의 눈이 아직도 내 시야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 작은 떨림이 일어났다.
섬칫하다 못해 공포물을 본 사람들처럼 김양도 아무말도 않고 내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