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37

[제20회]


BY byelover 2001-12-24

-기억14-
"그의 이야기(1)"

쿵쿵거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귀에 닿을듯 했다.
약간 열린 문을 살짝 밀어본다.
힘없는 문은 눈치도 없이 확하고 방안이 다 보이게 열어젖힌다.
영은은 긴장이 되어 마른침을 삼키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나란히 놓인 침대의 한쪽에서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몸을 일으킨다.
...?!
그가 아니다.
남자는 영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채 말이 없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멋쩍다.
영은은 약간 웃어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숙여보이며 빈 침대를 살폈다.
침대끝에 붙은 이름표를 보니 그의 이름이 맞다.
그러나 침대위는 깨끗히 정리되어 사람이 누웠던 흔적이 없어보였다.
남자는 영은의 거동을 느끼며 좀 어색한지 눕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미안해진 영은은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렸다.
문을 닫으려는 그녀에게 갑자기 남자가 말했다.
"민재씨 찾아오셨어요?"
영은은 그의 이름을 말하는 남자의 얼굴을 대답처럼 바라본다.
"민재씨 안 올지도 몰라요.아직 퇴원한건 아닌데...
그저께 외출해서 아직 안들어왔거든요."
영은은 남자의 친절함에 '네에'하며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잠깐 그렇게 선채로 멍해 있다 문을 닫았다.
'그래.이렇게 쉽게 그를 만날 리 없지.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영은은 갑자기 속이 상해 다시 울고 싶어진다.
힘없이 복도를 걷다 간호사실이 보이자 영은은 그 앞에 섰다.
환자이름과 병실이 적힌 하얀 보드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이름옆에 영어로 병명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영은이 알아볼리 없었다.
영은은 자리에 앉아 무슨 자료인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간호사가
자신을 보아주길 가만 기다려본다.
잠시후 고개를 든 간호사가 영은을 보며 생긋 웃는다.
"네.무슨 일이십니까?"
상냥해보이는 얼굴만큼 고운 목소리였다.
영은의 입가에도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미소가 옮아왔다.
"저...뭣 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저...5호실 김 민재 환자..."
영은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네.그분 아직 퇴원 안하셨는데...도망가셨어요.근데...누구세요?"
그녀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 있었다.
"저...전..."
"아하...!학교 후배구나.아님 친척 동생분이신가...?"
유난히 관심을 가지는 눈치다.왜 여자친구냐고 묻진 않는걸까...?
"그분 곧 잡혀 오실거에요.후후...누가 다녀가셨다고 해드릴까요?"
여전히 간호사의 말투는 장난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배인 음성이 문득 거슬린다.
이렇게 낯선 사람에게조차 자신을 그의 누구라고도 할 수 없음에
화가 나서...
환자 한사람이 두사람 사이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한참 환자와 얘기를 나누던 간호사는 눈짓으로 영은에게
무슨 할말이 더 남았느냐고 묻는것 같았다.
영은은 잠깐 생각하다 힘겹게 입을 연다,
"그분 ...지금은 괜찮은가요?"
"그러니까 걸어서 도망가셨겠죠?"
간호사는 또 웃어보였다.
"근데...왜 다쳤나요?"
"글쎄요.오토바이사고로 알고 있는데...만나시면 물어보세요."
"네...고맙습니다.그럼..."
영은은 유난히 잘 웃는 여자의 웃음띤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나서는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오토바이사고...?그가 오토바이를 탄 것일까...?
아님 누군가의 오토바이에 치었다는 얘길까...?
누군가 방금 여기서 담배를 피어 문것인지 연기가 자욱했다.
담배냄새에 그가 그리워졌다.

진이는 왜 벌써 내려왔느냐고 묻는듯한 얼굴을 했다.
영은은 그가 금방이라도 다시 이곳에 나타날것 같아
병원문을 나설수가 없다.
그래서 진이에게 말했다.
"우리...커피 한잔 마시고 가자...응...?"
영은의 힘없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진이는
서있는 영은을 자리에 앉힌다.
"난 마셨어.기다려.내가 빼줄께."
느릿느릿 걷는 진이의 뒷모습...
영은은 알수없는 슬픔을 느낀다.
'아무것도 변한게 없구나...네 걸음거리에... 난 눈물이 나.
너 ...아직도 그사람 접지 못하고 있었구나.너...성격이 급해서
늘 뛰듯이 걷는 네가...여기 앉아서 ...나를 보면서...
넌 무슨 생각으로 날 여기 데려온거니...?아직 그런 마음이면서...'
영은은 진이가 커피를 가져와 자신의 옆에 앉는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것인지,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건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커피를 건넨 진이는 자신의 옆에 앉지도 영은이 먼저 말을
걸게 하지도 않았다.
커피를 마시는 영은에게 그녀는 알수 없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은아!빨리 마시고 여기 나가자."
자신의 말에 영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진이가 다시 말했다.
"나...배고파.밥 먹으러 가자."

주문을 하고 밥을 먹는동안 두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시간이 어중간해서인지 병원앞 넓은 분식점은 텅 비어 누군가
한마디라도 하면 소리가 쩌렁쩌렁 울릴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비어있던 찬 속에 뜨거운 국물이라도 몇숟갈 들이미니
부르르 떨릴것 같은 머릿속도 조금 온기를 느껴 마음이 가라앉는다.
먼저 수저를 놓은 영은이 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먹어.체하지 말고..."
밥알을 대충 씹어 넘기던 진이는 영은을 보지도 않고
푸후하고 웃어보인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것만 같은 시간.
그러나 그럴수 있을까...?
잘되기를 바란다는 진이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자신의 심정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진이는 수저를 놓으며 묻는다.
"만나긴 한거야...?"
'그래.너 다워.눈치하난 빠르다니까...'
영은은 고개를 젓는다.
진이가 웃었다.
"그럴줄 알았어.왜 자신이 없어서...?"
영은은 냅킨을 진이의 손에 쥐어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보는 영은의 진지한 표정에 진이는 일부러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나...괜찮아.이제...정말이야."
진이의 말에 영은은 자신을 보는것 같아 자꾸 웃음이 나려 한다.
괜찮아.정말이야...
영은과 진이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서로 닮아 있다.
괜찮아.정말이야라고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여러번 포장하는 말.
'너도...나도...이젠 거짓말쟁이가 다 되었구나.진이야.미안해.'
아무말 없이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않는 영은의 시선을
진이는 간신히 받아내는듯했다.
"왜...?"
"그냥.근데 너 뭐가 괜찮다고 말한거야...?"
영은은 일부러 능청을 떨어본다.
진이는 대답하지 못하는 것인지,무슨 생각을 하는것인지
다시 고개를 떨군채 말이 없다.
영은이 물었다.
"그사람...어떻게 된거니...?"
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영은을 보았다.
"오토바이를 탄채로 ...바닷속으로 뛰어든것 같아.
너...아저씨가 왜 그랬는지...정말 모르는거야?"
오토바이를 탄채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가...?
오토바이를 탄채로...?
일부러...?
바닷속으로...?
상상할수가 없다.
아니 기가 막히다.
사고가 아니라 일부러 그랬다는거니...?
그사람 ...죽기라도 할 생각으로 그랬대니?
왜...?왜 그랬다니...?
자기가 왜...?
진이는 다시 새하얗게 굳어있는 영은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영은은 두려워져서 아무것도 물어볼수가 없다.
떨리는 그녀의 손을 진이의 두손이 감싸쥐었다.
"너...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나보다 넌 더 바보야.
민재아저씨...불쌍한 사람이야.너한테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너...괜찮은거지...?"
진이는 나에게 무엇이 괜찮은지를 묻는걸까...?
그사람의 사고 ...?
아님 앞으로 자신이 해 줄 그의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걸까...?
그가 오토바이를 탄채 바닷속으로 가져가려 한 그의 이야기를
진이는 알고 있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