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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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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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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byelover 2001-11-19

-기억7-
"어떤 시작"

영화에서나 소설속에서는 이런날 꼭 눈이나 비가 내렸다.
아니다.눈은 사랑이 꿈처럼 시작될때 음악처럼 내리는 거였어.
이렇게 비참한 주인공에게는 비가 내려줘야 하는거야.
그래야 눈물을 감출수 있으니까...
조금은 덜 초라해 보이겠지.
그래야...
영은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는 좀체 내려줄것 같지 않다.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영은은 얇은 남방의 깃을 세워 옷을 여며본다.
벌써 몇시간을 이렇게 서 있었는지 모른다.
무거워 보이는 나무문이 삐익하며 열린다.
가슴이 문처럼 덜컹거렸다.
문이 열릴때마다 온몸이 쭈뼛거리며 심장이 뛰었다.
한바탕 웃음소리가 났다.
두서너명쯤 되어보이는 무리였다.
영은의 시선이 혹시나하고 그속을 두리번 거린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같아선 단번에 저 문을 밀고 들어가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영은은 언제나처럼 용기가 없다.
같이 가주겠다며 따라나서는 혜영을 간신히 보내고
영은은 카페앞까지 와서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 나설 용기도 없으면서
그를 만나 도대체 어쩌자고...
영은은 이렇게까지 용기없고 소심한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만나면 어떡해야 할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영은은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뿐이므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늦는 날이면 어린 영은은
늘 문앞에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두사람을 기다렸다.
그들은 아무리 늦어도 각자 영은에게 돌아왔었다.
'볼이 빨개졌잖아.이런짓 이제 안한다고 약속했지.얼른 일어나.
문지방에 그렇게 앉아 있는게 아니다."
어머니는 대문앞에서 영은을 만나면 늘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영은의 손을 잡아 끌고 들어오며
'아빠는...?'하고 묻곤 했다.
아버지역시 영은에게 빙긋이 웃어보이며
'엄마는...?'하고 물었다.
그녀의 기다림에는 늘 대답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영은의 기다림에 대답해 줄런지는 알 수 없었다.
혜영이 말했다.
'마음의 이끌림에 무슨 이유가 있어?
계산하지 말고 마음으로 그사람을 봐.
언니가 진정 뭘 원하는지 언니맘을 들여다보라고...
그리고 결정해.아플건지, 후회할건지...
난 차라리 아픈게 낫던데...'
그녀는 지금도 그를 만나면 아플것인지,
지금 그를 접으면 많은날 후회하게 될런지 알 수없다.
어느날 바람처럼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좀처럼
떠나주지 않는 그라는 남자때문에 이렇게 초라해져 버린 한 여자.
영은은 자신이 참 보잘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그 많은 상처에도 둔감했던 자신이 그것도 이상하게
얽혀있는 문란한 그에게 이렇게 예민하게 곤두서 있다니...
그러고보니 평소같으면 밖에서도 간간히 들리던 음악소리가
오늘은 잘 들리지 않았던것 같다.
그가 저안에 있긴 한걸까...?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벌써 11시가 넘어 있다.
영은은 왠지 오늘 여기서 그를 만나지 못할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렵사리 정한 마음을 이쯤에서 지우고
기어이 발길을 돌려야 할 것만 같았다.
항상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는것 같다.
서빙을 하던 그의 후배라던 그남자,그가 잠시 누군가를 배웅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흘낏 그녀를 보다 문득 기억난듯 말을 걸어왔다.
"아!혹시나 했는데...아까부터 여기 계셨죠?저 아시겠어요?"
"네...!"
영은은 부끄러운듯 발개진 볼을 한손으로 감싸며
약간 고개를 숙여보였다.
"여기 온거 아니에요?추운데 어서 들어가세요."
그가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아,아니에요.누굴 기다리다가..."
"저...민재형 오늘 라이브 없는데..."
그래서 그의 노래도,그도 보이지 않은거였구나...
영은은 허망함으로 가슴이 쏴해짐을 느낀다.
"아니에요.그선배 기다린거...저 이제 가볼려고..."
"근데...형 지금 여기 술마시러 올거예요.저 영은씨 알아요."
영은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자 그가 말했다.
"형한테 얘기들었어요...괜찮음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요."
그가 자신의 얘길 누군가에게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가 이리로 오고 있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영은은 그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런지 걱정스러워진다.
그때 그가 말했다.
"영은씨 보면 형 좋아할꺼예요.들어가요."
잠시 망설일틈도 없이 그가 영은을 문쪽으로 미는바람에
그녀의 몸은 엉겁결에 카페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영은을 어떻게 말했을까...?궁금했다.
전에 앉았던 자리로 영은을 앉히고 그가 주방쪽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영은은 불안하다.
잠시후 그가 앞치마를 벗고 나타났다.
"아르바이트가 오늘로 끝났거든요.그래서 제가 형 나오라고
한거예요.여기서 1차 하고 다른데 갈려구...다들 바빠서 사람이
모자랐는데...잘 됐네요.영은씨 술 좋아해요?"
그의 손에 향기가 묘한 차가 들려져 있었다.
"추워보여서...홍차에 우유를 넣었어요.밀크티라고 하던데..."
뜨거워 보이는 찻잔을 입에 가져가 한모금 마셨다.
고소하면서도 약간 떨뜨름한 홍차맛이 느껴져 맛이 특이했다.
"맛있네요.처음 마셔봐요.고맙습니다."
"형말처럼 참 맑게 생기셨네요."
그가...?가슴이 떨려 찻잔을 들고 있을수가 없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에 영은은
쑥스러워져 한마디해본다.
"진하지 않은 사람은 맑다고 표현하나봐요."
영은의 예상대로 그가 웃었다.
그는 잠시 어딘가에 전화를 하러간다며 자리를 뜬다.
그리고 오분도 채 안되어 누군가와 함께 영은쪽으로 걸어왔다.
영은은 그와 눈을 마주칠수가 없다.
고개를 숙였다.
다리까지 떨렸다.
이런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고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은씨!형 왔네요."
어디선가 맡아본것 같은 부드럽고 희미한 스킨냄새가 났다.
영은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애써본다.
냉정해 보였던 그의 눈빛이 예전처럼 부드럽게 그녀를 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왔니...?"
왔니...?왔냐구...?그의 목소리가 저멀리서 들리는것 같았다.

한시간 가까이 어떻게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알수 없었다.
그 후배는 다른 한 남자를 더 데리고 왔다.
그사람도 여기서 라이브를 하는것 같았다.
영은은 바로 코앞에 앉아 있는 그의 존재감때문에
다른 사람의 얘기들을 제대로 들을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금 왜 이자리에 앉아있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후배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려는것같아 보였다.
카페에서 나와서는 갑자기 갈데가 생각났다며 함께 자리를
했던 남자를 데리고 가버렸다.
남겨진 두사람은 어색한 긴장감을 느낀다.
영은은 그를 도저히 제대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시계를 내려다 본다.
그가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며 물었다.
"몇시니?"라고...
영은은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대신 자신의 손목을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가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보였다.
영은의 내민 손을 그의 손이 감싸 쥐었다.
두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물어볼수가 없었다.
한마디라도 해서 이 침묵의 시간을 깨어버리면
다시는 그를 만날수 없을것 같아서...
버스정류장을 두번이나 지나쳤다.
이시간에 다니는 버스도 없었지만...
영은은 작품을 하느라 가끔 학교나 혜영의 작업실에서
밤을 새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땐 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좀 늦어요."또는 "오늘은 밤샐것 같아."라고...
그러나 영은은 지금 어떤 전화도 어머니에게 할 수 없다.
하루종일 한 남자 때문에 이렇게 눈물에 젖어 헤매고 있는 자신을
어머니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영은아!너 집에 안 들어가도 되니...?"
영은은 그의 말이 놀랍지 않다.
그러나 그의 말속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진다.
"왜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물음은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러겠다고
대답하는것 같았다.
그는 슬퍼보였다.
이렇게 단단하고 커보이는 사람이 ...
그는 이런 눈으로 늘 여자를 끌어들이는걸까...?
한없이 안아주고 싶은 그의 슬프고 여려보이는 눈.
영은은 그의 여자중 한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위험한 생각을 한다.
그가 영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말했다.
"우리 바다보러 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다.
영은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검은 바다를
두려운듯 바라보았다.
파도 한점없이 고요한 새벽바다.
어두운 바다가 그의 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가고 있는 깊고 두려운 바다...
그가 영은의 어깨를 두손으로 안아주었다.
"겉옷이 없어서 미안해...추울것 같은데..."
영은은 그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의 가슴으로 파고 들어갔다.
"우리 어디 들어가자.괜찮겠니...?"
그는 무엇이 괜찮은지를 나에게 묻는걸까...?
영은은 그들의 뒤편으로 쭈욱 서 있는 건물들을 보았다.
밤을 새워 하는듯한 카페와 여관들...
그는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그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잠깐이라도 눈붙이자.너...괜찮아...?"
그는 나를 안고 싶은걸까...?
영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은 골목 중간에 있는 작은 모텔로 들어갔다.
그는 처음 들어온 사람처럼 많이 어색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녀가 더 당당했다.
방으로 들어섰다.
약간 쾌쾌한 냄새가 나는것 같다.
영은은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슬퍼졌다.
그는 영은을 방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리고 자신도 그녀의 옆에 다가와 앉는다.
영은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이런데 데려와서 미안해.니가 너무 추워 보여서..."
한참을 두사람은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던것 같다.
낮부터 몇잔 술을 마셔서인지 방안의 따뜻한 공기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그가 이불을 그녀에게 밀어주며 말했다.
"어서 자라.그래야 좀 있다 바다보러 나가지."
그는 그녀의 불안한 눈빛을 토닥이듯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히 말했다.
영은은 생각했다.
자신은 그의 여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하고.
잠시 후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쪽 벽에 몸을 기댄채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규칙적이고 아이처럼 연약했다.
창밖으로 벌써 아침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은은 후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