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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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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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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byelover 2001-11-05

제6화
-기억1-
"용기"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흙냄새가 날것 같다.
영은은 잠든 남자의 얼굴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전공이 다른 진이와 수업을 마친뒤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문이 조금 열려있어서 그녀는 여느때처럼 안을 들여다보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동아리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진이의 전공은 금속디자인이었는데
늘 제시간보다 대략15분이상 늦게 마쳤다.게다가 정리하고
손이라도 씻다보면 ...
영은은 안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저기 흩어진 의자에 과자봉지,신문지...
진이의 말처럼 모두들 제멋대로 어질러놓기만 할 뿐
치우는 사람은 없는듯 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아리라 생각해서 그런지
영은의 눈에는 그래도 그나름대로 자유분방해보여 나쁘지 않다.
하긴 이걸 날마다 치워야하는 진이에게 그런소릴 늘어놓았다간
한대 얻어맞을것 같다.
영은은 진이를 생각하며 흩어진 의자를 대충 보기좋게 모아놓았다.
바닥에 떨어진 과자봉지를 줍기위해 끙하고 허리를 굽혀 쭈그려앉은
영은은 하마터면 '악'하고 비명이라도 지를뻔했다.
한쪽구석에 웬 신문지가 저렇게 깔려있나하고
무심코 한장을 쓰윽 집어든 순간
아...!
별안간 사람의 얼굴이 턱하니 눈에 들어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세히 보니 군복을 입은 남자였는데
그는 가늘게 코까지 골며 길게 누워 깊이 잠들어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남자를 보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잠든 남자는...
벌떡 일어서야 하는데 영은의 몸은 마음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그가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면
아마 한참을 더 그자리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것도 모른채
그는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며 벽을 향해 돌아 누웠다.
순간 한기를 느꼈던지 남자는 두다리를 모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영은은 처음보는 낯선 사내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깨닫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때 복도 저 끝에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
진이의 음성을 들은것 같다.

영은은 지금 그 남자를 진이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아침부터 무슨일이 있었는지 진이의 표정이 어두워
말을 꺼내기가 멋쩍다.
그녀는 연신 진이의 안색만 살핀다.
그날이후 그 남자를 몇번 본적이 있다.
남자는 늘 그 군복차림이었는데
볼때마다 다른옷을 입은것처럼 분위기가 달랐다.
한번은 동아리방앞에서 막 세수를 하고 나온
그와 마주친 적이 있는데
영은은 물기를 닦지 않은 그의 얼굴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사실 한번도 우연히 마주친 적은 없다.
그를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그녀는 늘 건물 두개를 빙 돌아다녔지만
그런 영은의 마음을 알리없는 그는 눈한번 마주쳐 주지 않았다.
2년이 넘게 대학생활을 하며 영은이 이런 감정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아침에 먹고 나온 빵에 체한것 같다며
진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수저를 식판위에 얹는다.
"약 사다줄까?"영은이 걱정스럽게 묻자 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걸핏하면 잘 체하는 진이.
무뚝뚝하게 내뱉는 말투완 달리 진이는 아주 예민해서
걱정을 많이 한다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곧바로 체했다.
"어제 무슨 일 있었구나?"
영은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묻는다.
진이의 뾰로퉁한 입모양을 보니 그런가보다.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니?재수강하래?"
영은이 커피를 뽑으려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자
진이는 대답대신 영은의 손에서 동전을 뺏고는 덥썩 손을 잡는다.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갑자기 진이는 결심한듯 말했다.
"영은아!우리 술마시러 가자."
"뭐...?!얘는...너 체했대매?수업은 어쩌구?"
그 날 처음으로 두사람은 대리출석이란걸 부탁해봤다.
늘 앞자리에 앉곤 하는 혜영에게 부탁했는데
그녀는 흔쾌히 그래주겠다고 했다.
진이의 주량을 영은은 지금도 모른다.
평소에도 술마시기를 즐겨하는 그녀였지만 그날은 사뭇 달라보였다.
처음 진이를 본 오리엔테이션때도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술을 잘 할줄 모르는 영은의 눈에 진이는 이상할만큼
술을 많이 마시고도 취할줄 모르는 아이였다.
그런 진이가 맥주 세컵을 마시고 취한 사람마냥 울고 있다.
영은이 왜그러냐고 묻자 진이는 더 서럽게 운다.
한참을 울다 진이는 말했다.
"그사람 정말 나쁘다.나보고 그러지 말래.
지가 뭔데 내감정을 그러라마라야.안그래.영은아?자기가 뭐라구.."
그사람이라니...?
영은은 진이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영문도 모른채 진이의 떨리는 두손을 그저 꼬옥 잡고만 있었다.
너도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구나.
누구니?네 맘을 아프게 한 사람이...?
우린 서로 비밀스럽게 각자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던거니...?
영은은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만
막연히 그럴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남자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영은은 아직 진이에게 말할 수 없을것 같다.
울고 있는 진이의 사랑도 나처럼 혼자만의 것이었을까...?
궁금했지만 진이가 담담한 가슴이 될때까지
그냥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진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면
그때 그 남자얘기를 하리라 마음 먹었다.

서로 작품전시회 준비를 하느라
점심시간에 잠깐 얼굴을 볼수 있을뿐
집에 가는 시간도 달라 영은과 진이는 그날이후
긴 얘기를 할 틈이 없었다.
대신 영은은 전공이 같은 혜영과 그즈음 많이 친해져 있었다.
물론 영은은 여전히 그남자를 보기위해 건물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영은은 뜻밖에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고 화들짝놀랐다.
"...저요?저한테 인사하신거예요?"영은은 믿기지 않아
자신없는 목소리로 처음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너 이 건물에는 왜 오냐?너 진이랑 같은 과 아니야?"
특이한 목소리였다.
늘 상상만 했던 그의 목소리.
베이스가 많이 깔려 나직히 울릴것 같은,
그러면서도 맑은 목소리였다.
그동안 영은도 그를 조금은 많이 알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진이에게 물었다.
"저 아저씬 무슨 과야?너랑 친해?"라고...
진이는 잠시 생각하는듯했다.그리고는 말했다.
"잘몰라.나랑 친하냐구?아니.생긴걸 봐라.
무식한게 운동하게 생기지 않았냐?"라고...
무심하고 매정하게...
그때 영은은 진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것 같다.
그는 사회체육학과2학년이었는데 아직 휴학중이라 했다.
영은의 나풀거리는 단발머리를 한동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기라도 하듯
오래 머물렀다.
"아...!전요.저는...영은이라고 해요.진이는 아까 갔는데..."
"알아."
"아...네...!"
영은은 그때 그에게 등을 보이며 과 건물로 돌아오면서
교정이 그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흥분이 되어
걸음걸이마저 흔들리는것 같았다.
그날 하루는 꿈을 꾸는듯해서 어떻게 보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멍하니 앉았다가 물에 담가둔 천 염색시간을 넘겨버려
혜영에게 잔소리를 들은 기억밖에...
그뒤로 교정에서 그를 자주 만났다.
그는 써클 후배들과 자주 어울려 기타를 치고 있었다.
영은의 기대이상으로 그는 그녀에게 친절하고 또 다정했다.
영은의 하루하루는 온통 설레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잦은 불화도 더이상 영은을 상처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영은과 그가 가까워질수록
상처입는건 진이였다.
진이의 그사람이 민재였음을 영은이 몰랐다는걸
그녀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진이는 영은을 냉정하게 대했다.
영은은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진이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영은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진이를 마음아프게 하면서도
이미 멈출수없는
자신의 사랑이 두려워졌다.
영은은 친구와 사랑을 지킬수 있는
용기를 내야 했다.
진이가 말했다.
"네가 내 진정한 친구라면
그사람을 포기해야하는거 아냐?"라고...
영은이 말했다.
"흐르는 감정을 막을수 있다면 나도 그러고 싶어.
진이야.널 잃고 싶지 않아.차라리 날 욕해라."
그때 영은은 진이에게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하게 두사람은 이기적이었다.
가질수 없는 사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