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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chssss 2001-09-08

"고추 떨어질 남자"

"인~석아! 머슴아가 자꾸 부엌에 들락날락하면 고추 떨어진데..,!"
난 어릴 적부터 이런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지금도 변한건 없다. 그저 아내가 아둥바둥 한푼이라도 벌겠다며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난 물걸레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청소건 설거지건 빨래건 아내보다 내가 훨씬 더 잘한다. 그렇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아내는 항상 불만 섞인 말투로 투덜된다. 왜냐구 자기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냥 트집을 잡듯 말한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처럼 아내가 무서운 적이 없다. 여자와 남자가 몸을 맞대고 살아가는 결혼이란 울타리 속에서 너무 자연스레 부담없이 변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신랑 앞에서 속옷을 훌러덩 벗어 제치고 보란듯이 갈아입는다는 것은 사실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내는 확실히 변했다. 처녀시설 그토록 아름답던 지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생활의 투사처럼 투쟁하듯 삶에 맞서 싸워 당당히 나가는 꿋꿋한 아줌마가 되었다. 난 아내의 불룩한 똥배를 싫어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아내의 모습이 좋다. 나를 위해 생활전선에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용감한 아내가 몹시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내는 힘들어 한다. 아니 이젠 지쳤다고 하는 표현이 옳다. 아내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 초인종을 누르면 부리나케 뛰어가 현관문을 열어 주어야 심통을 부리지 않듯 아내가 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갑작스런 사정으로 내가 아내 곁에 잠시 떨어져 있으면 그새를 못 참아 확인 전화를 여러번 해대고 그래도 못믿었던지 만나는 친구나 약속 장소로 꼭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서 한눈 팔 여건이 안된다. 나 역시 그럴 마음이 없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고작 할수 있다는게 집안 일이라고 여기니 이거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아녀자들은 집안 일이 무척 힘들고 해도해도 태가 않나 볼멘소리만 한다. 그건 맞다. 그렇지만 아가씨도 아닌 아줌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막상 홀로서기처럼 손걷어붙치고 나선다면 좋아 할 사람 아무도 없다. 특히 남성 직장 사람들은 슬슬 약올리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까지 늘어 놓면서 아줌마들을 가지고 논다. 직장생활이 살림보다 몇배 더 힘들다. 그러니 꾹 참아야할 일들이 쌓이고 싸여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하고 그대로 퇴근하면 풀때가 있어야 말이지 풀고 싶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한번쯤 쏴붙인다고 해서 옹졸하게 삐질 남편들이 어디 있겠는가..,나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찮게 대범한 사나이처럼 보여준 일이 지금은 화근이 되어 거의 매일같이 받아줘야 한다. 그래도 웃으면서 받아 넘기지만 솔직히 짜증날 때도 간혹 있다. 난 지금 이대로의 아내를 무척 사랑한다. 아니 존경한다. 어찌 들으면 바보같은 남자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다른 남자들이 욕을 한데도 그래도 난 행복하다...,!
잠자리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염려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난 아내와 잠자리에서 아주 거뜬하다. 오히려 아내가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슬슬 피한다. 한번하면 죽여줘야 개운하지 않겠는가..,!아내는 내게 용돈을 주면서 잔소릴 한다 "남자 지갑에 오천원이상 들어가면 꼭 딴짓 한다"고 중얼거리듯 말한다.
내 좌우명은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자..,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