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떨어뜨린 전화기에선..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울렸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듯..멍하니..서있을 뿐이였다.
왜..불행의 그림자는 그녀를 또 찾아오는건지..
"걸을수..있어? 괜찮지?"
"...저..이거 꿈이죠? 그렇죠?"
넋을 잃은 그녀를 차에 태우고..병원으로 향했다.
그녀의 동생이 있다는 응급실로 갔다.
교통사고라고만 알고 왔는데..
여기저기 보이는 핏자국..응급실이란곳은..두번 다시 오고싶지 않을것 같다.
피투성이가된 동생을 찾아 흔들어 깨우는 그녀의 절규,,
"동빈아..일어나봐..동빈아.."
"..누나..누나..컥.."
"보호자분 비켜주세요!!"
그녀의 동생이 뿜어낸 피가 그녀의 손을 붉게 물들였다.
"하빈.."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때 그녀는 무언가에 놀란 사람처럼 휙하고 고개를 들었다.
커져버린 동공에 서서히 빛이 사라지더니 그녀는 쓰러졌다.
"하빈아.."
"엄마..엄마야?"
"그럼..우리딸..왜 그렇게 누워있어? 일어나렴.."
"엄마 괜찮아? 안아파?"
"그럼..우리걱정은 마렴..우리딸..엄마가 늘 미안했다..알지?하빈아..넌 언제나 자랑스런 딸이였어..넌.."
"엄마..어디가? 엄마..어디로 가는거야? 엄마.."
"엄마~"
"일어 났소?"
"여긴..."
그녀는 긴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라오는데..꽤 시간이 걸리는듯 했다.
아니면..모든것을 꿈이라고 간주하고 싶은것인지도..모른다.
서울행에 올랐던 가족들이..대형교통사고속의 한차량이였다는 사실을..그녀는 믿고싶지 않을것이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힘들어 했던 그녀에게..하늘은 참으로 가혹한 시련을 준것이다.
"아냐..아니죠? 아무일도 없는거죠?"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는 그녀의 고개짓은..
부모님과 큰동생의 싸늘한 시신을 확인할때까지도..계속되었다.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시간에도..서류라는것에 서명을 해야하고 돈이라는것을 지불하는 우리 사는방식이..참 우습다.
문상객 한명 없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영안실의 그녀..
"쯧쯧..전생에 얽힌 실타래..이생에서나 풀어야지..불쌍해서 어쩌누.."
그녀를 바라보는 나를 툭치며 지나가는 왠지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노파를 불러 세웠다.
"어르신..누굴 보고하시는 말씀인지.."
노파는 나를 아래위로 주욱 ?어보았다.
"허허..다..불쌍한 사람들이지..홀몸도 아닌 사람..옆에서 잘해줘.."
뭐라 다시 물어볼 여유를 주지않고 노파는 문상 온 사람들틈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노파를 찾는사이..그녀의 흐느낌이 들렸다.
그녀를 품에 안은 남자가 보였다.
"휘문아..어떻게.."
"힘들었지? 아무말..필요없어..울고싶은 만큼 울어..잠시나마..내품에서 쉬렴.."
통곡의 강이 흐른다..
그 강너머에서..난 주저하고 있었다.
그녀의 흐느낌이 약해지고 있을때..그녀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다가갔다.
"하빈씨..난 이만.."
"하빈아..정신차려.."
그와 나는 동시에 그녀를 일으키려 했고..순간 묘한 느낌이 나를 스쳤다.
"환자분은..임신하셨습니다. 안정을 취하셔야하는데.."
의사의 말과 함께 그녀의 병상옆에 있던 나는..알수없는 분노를 느꼈다.
더이상..이곳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것 같았다.
그저..조용히 떠나주는게..마지막 그녀를 위한 배려라며..
의미없이 흩어지는 웃음을 띠며..돌아섰다.
차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시동을 켤때..나를 스쳤던 노파의 말이 생각났다.
"홀몸도 아닌데..잘해줘..홀몸도...."
시동을 끄고 다시 차문을 열고 나와 병원으로 들어가려하다가..난 다시 돌아섰다.
오늘은..돌아서야 할것 같았다.
"일어났니? 좀 괜찮아?"
"머리가 멍해..좀 어지러웠던것 뿐인데.."
"괜찮아..많이 힘들어서 그런거야.."
"휘문아..나..앞이 막막해..아무생각도 없어.."
"네 곁에..내가 있을께..나.."
"고마워.."
그녀를 위해 난..살수 있다고..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말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나 보다..
휠체어를 타고 온 그녀의 동생을 보곤 그녀는
덩치만 커버린 동생의 슬픔까지 감싸 안을수 있는 누나로써..일어났다.
"누나.."
"동빈아..괜찮아?"
자신에게 닥쳐올 앞날보단 눈앞의 동생의 건강에 더 애달아하는 그녀였다.
"하빈아 좀..더 먹어..입맛이 없더라도..응?"
"별로..먹고싶지 않아..속이 거북해.."
"그러니..그럼..뭐 다른거라도 먹고싶은거 있니?"
"응? 아니..너 먹는거 보니까..배부른데.."
"동빈이..재활치료 꾸준히 하면 괜찮을 테니까..그리고 내가 동빈이 심리치료를 맡았어.."
오늘..마음 편히 보내야할 사람은 다 보냈다.
그 동안 내곁에서 내게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과 함께...
동빈이와 살아갈 앞날을 걱정해야하는 난..더이상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 댈수가 없었다.
"휘문아..고마웠어..미안하구.."
"미안하다니..그런말 마..네가 잘 견뎌주니까..내가 고마워.."
어두워지는 산비탈 길을 내려오면서 간혹 보이는 가로등불빛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피곤하지? 편하게 의자를 제치고 자.."
"아냐..운전하는 사람옆에서 자면 안돼잔니.."
휘문이의 손이 내손을 감쌌다.
"하빈아..나..항상 네곁에 있어도 될까?"
"응?"
"널 위해..나 살아갈께..나만 바라보고 살수 있니?"
"휘문아..너 무슨 소리야? 우린 친구잔니.."
그가 차를 갓길에 세우고 나의 얼굴을 마주하고는..진지하게 물었다.
"친구 아닌 널 사랑하는 한 남자로 날..사랑할 수 있니?"
"..지금은..아무말도 못들은걸로 해줘..나..아무생각도 하고싶지 않아.."
한번 확인하고 싶은 그의 눈빛이였지만..
난 간절히 바랬다.
오늘은..그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않다고..그저 쉬고 싶다고..
그런 나를 이해한듯 휘문이는 아무말없이 병원으로 데려다주곤 다시오겠다는 말을 남긴체..차를 돌렸다.
병원으로 들어설때..그가 나왔다.
"오늘..출상일것 같아서..내가 늦었군.."
"여러모로..고마웠습니다..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드렸는데.."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잠시만..시간 좀 내주겠소?"
그와 병원근처의 커피숍에 들어온지 시간이 꽤 지난것 같은데..
그는 아무말이 없다.
"저..무슨 하실 말씀이.."
"당신에게..내가 책임질 행동을 했다면..책임지고 싶소.."
"..책임이라뇨?"
"당신..임신한거..말이요.."
"임..신요? 누가..?"
"당신..쓰러졌던 날 그렇게 진단이 나왔는데..몰랐소..?"그 남자는..놀라던 눈치던데..당신 주위에 다른 사람은.."
"그..남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