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626

[제7회]


BY 이슬비 2001-06-21

"엄마.."

"응..우리딸..참 좋은 사람이더라.."

"엄마..힘내..알지? 엄마는 할수 있다는거..내가,,내가 있으니까,,걱정마.."

이런말을 하면서도..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의문이다.

밤이면 더해지는 고통이지만 잠들어 있는 나를 위해 소리를 죽여 아픔을 참으시는 엄마..

그런 엄마가 잠든 새벽녘에 난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는것뿐..이다.

"하빈아..너..엄마가 늘 지켜볼꺼야..제대로 못한 엄마 노릇..죽어서라도 할꺼다.."

"그런말 하지마..엄마는 나 결혼하고 애기놓고.." 가슴에 서러움이 한가득 밀려온다.

엄마가 되어간다는것에는 무심했던 나였는데..

"하여튼 수술하면 괜찮을 꺼야..걱정마" 북받히는 설움에 목이 터질것 같지만..마냥 울수는 없다.

수술날짜 때문에 담당의사와의 면담이 끝나고 돌아왔을때..병실에서 도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다 나 때문인거..알아..나 참 못난 남편이였지? 미안해..."

"여보..난 한번도 당신 만나 살아온거..후회한적 없어요..다만..내가 복이 없는 사람이라..당신에게.."

"아니..내가 사업 망하고 가산 탕진한게..어디 당신 탓인가? 술에 취해 한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던 게군.."

"아뇨..그저 내가 조금이나마 당신의 도움이 못되어서.."

"그런말 하지마..당신이였기에..지금껏 목청 높히며 살아왔겠지..당신이 날 위하는 맘..다 알아..표현을 못했을뿐이지..나,,당신이라는 사람과 연을 맺어준 하늘이..참 고마워..정말.."

"당신이..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이렇게 지나고 나면 후회할것을..잘해줬어야 하는건데..시장에서 날품이나 팔게 하고..그래서 지금..이 고생이군.."

"여보..난 고생이라고 생각지 않아요..한푼 두푼 모으는 재미도 있었고요..행복은 느끼기 나름이라고 했어요..난...그래요..가끔 힘들때도 있었어요..하지만..우리딸..하빈이 보세요..어엿한 아가씨에요.이젠..그저..하빈이 결혼하는 모습이라도 보고 간다며.."

"헛소리..당신은 죽지않아..내가 절대로 당신 이렇게 보내진 않아..살아오면서 믿게해준 구석은 없지만..이번은 날 믿어.."

두분의 사랑은..그런것이였다.

늘 자리하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사랑은 세월에..시련에 감춰졌을뿐인것을..

가슴속으로 밀어넣었던 슬픔은..다시 고개들어 나를 흔든다.

"하빈아.."

벽에 겨우 몸을 기댄체 서있던 내게..그가 다가왔다.

"눈물이..참 따뜻하다..하지만 그만 슬퍼해..내 마음도 아파오니까.."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손길은 참 따뜻햇다.

"나,,안울려고 하는데..그런데.."

"쉿..그래..그래.."

이미..아버지의 말대로라면..그녀의 어머니는 가망이 없었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은..어머니였다.

심리치료라는것은 단편적으로 살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더 힘을 주는것이고

두려워하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것이다.

하지만..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야할 날에 미련을 버리신분에게는..힘든 치료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다.

"..이러고 있음 안되지..나 운거 표 나니?"

"응..조금..하빈아.."

화장실쪽으로 가던 그녀가 멈추어 돌아섰다.

하빈이의 올림머리를 지탱하고 있던 머리핀이 떨어지면서..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가 흘러내렸다.

"이런..핀이 고장났네..어쩌지.."

"우선 이거라도 대신.."

그가 내 머리를 감싸며 그의 손수건으로 묶어 주었다.

"고마워..네 손수건을 자주 빌리게 돼네.."

"아니..뭘..저녁시간..어떠니?"

오늘은..엄마에게 아빠와의 다정한 시간을 더 드려야할것 같다.

"응..괜찮아.."

"그럼 저녁때쯤..전화할께..자 이젠 웃어봐..웃으니까,,더 예쁘네.."

웃으라며 입가를 두손으로 당겨서 내게 웃음을 주었던 휘문이..

마음을 참 편하게 해준다. 그의 직업때문일까?

변치 않는 소나무같은 풋풋한 향기로..늘 싱그러운 색으로..그는 내곁에 다가왔다.




그녀가,,걱정된다..아니 보고싶다는게 더 정확하리라..

오늘도 몇번의 망설임끝에 크게 마음을 다지고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힘주어 눌렀다.

"여보세요.."

나야..라고 해야하나? 아니..하빈씨..나 지점장,,아니..나 박현우요..

순간의 시간이라면 순간이지만,,난 꽤 많은 생각을 했다.

"휘문이니?"

휘문..?

"여보세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하군..나 박현우요.."

"...왠일이시죠?"

'당신이 걱정되서..'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 휴직계 문제로.."

"휴직계가..왜요?"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야하는 이 치졸함..

"3달간이나 휴직할수는 없다는거..당신은 알만한 사람 아니오?한달이요..그뒤는.."

"네..잘..알았습니다. 한달뒤에..뵙죠. 그럼 이만.."

당신..어떠냐고 묻고 싶었는데..그런말할 여유를 주지도 않고 끊는군..

홀로서기에 강했던 만큼..내겐 더없이 독한 술 같은 사람..

그녀에게 취해가는 나를 두렵게 한다.




"여긴.."

"그래..너랑 두번째 마주친 곳이지..널 여기서 만나지 않았다면..생각하기 싫어..후후.."

"뭐..네겐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난.."

"널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힘이 나는걸..그것만큼 큰 도움이 어딨니?"

"자 맛있게 먹고 힘내야지..너 요즘 좀 야윈것 같아.."

"그런가? 훗..뭐 다이어트도 되고 좋지 뭐.."

초밥집에서의 식사가 끝나자 그는 내게 보여줄것이 있다고 이끌었다.

"이리와봐,,뭘 좋아할지 몰라서..사려다 말았어.."

그를 따라들어간 액세사리점의 점원은 휘문이에게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두분..참 잘어울리네요.."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휘문이는 이것저것 다 보여주며 이것도 이쁘다 저것도 이쁘다고 했다.

"이걸 다 살려고?"

"왜..마음에 안들어? 다 이쁘잔아.."

"이쁜긴 한데..그래도.."

"아가씨..다 포장해주세요."

오랜만에 손님같은 손님을 만났던 점원이 신나 보였다.

"고마워.."

"난..머리핀하나 사는 작은 것에도 즐거움이 베이는줄 몰랐어..널 알고 사소한것에까지..행복을 찾아내게 돼..내가 더 고마워.."

그는..그렇게 작은 것에 만족하며 자신이 가진것을 베풀줄 아는 사람..이였다.


수술실 밖에서의 기다리는 시간이 짧게 느껴진 이유가..있었다.

"네? 아니죠? 설마..아니죠? 제가 잘못 들었죠?"

"아닙니다..생각보다 훨씬 많은 암세포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그럼..우리엄마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고요? 그러라구요?"

"너무 늦게..찾아왔습니다..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런말은..누구나 할수 있어요.그래도 서울에선 제일 큰병원이라고..그래서 믿었는데..그랬는데.."

"하빈아 됐다.네..잘 알았습니다."

"아빠.."

"됐다니까..됐어.."

아버지는 정중히 인사하고는 내손을 잡아끌고는 나왔다.

"퇴원준비해야겠다..그리고..엄마한테는..내가 이야기하마.."

담담해 보였다..죽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시던 아버지가 아니셨다.

병실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엄마는 마취상태로 깊게 잠들어 돌아왔다.

주름살마다..어머니의 긴 한숨과 작은 걱정꺼리들이 매달려 있었다.

이젠..이젠..어떻게 해야하나..어떻게..

눈가가 붉으지신 아버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결혼이라는 울타리에서 모든것을 희생하며 살아온 한 여자에 대한 미안함..

사랑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잃어야 하는 슬픔..이였다.

"엄마가..깨어나면..무조건 수술은 잘된거다..그리고..회복되면..조용한 시골로 여행이나 다녀올까,,한다."

"아버지..그건..엄마에게.."

"안다..네 엄마에겐 무리라는거..하지만..마지막으로..내가..아무 걱정없이 조용히 쉬게하고 싶구나.."

"회사는..어쩌시고.."

"..일이야 또 가지면 될것이고..동생들 보살피며 네가 고생좀 해라..며칠 있다가..오마.."

엄마가 퇴원하는날..

"하빈아..아버지랑 여행가기로 했다..수술도 잘됐다니 다행이고.."

아버지가..얼마후면 들통날 거짓을 말하고는 기뻐하시는 어머니와 작은차에 몸을 실고 행적을 알려주지 않은채..떠나셨다.

휘문이는 부모님을 잡고 싶어하는 내게 보내드리는게 좋겠다고 했다.

강릉이라고 잘 지낸다고 전화 한번 오곤..이틀째 연락이 없다.

불안하다..

"하빈아..이리와서 저녁이라도 먹어..점심도 안먹었던데.."

"어..언니.."

초조함이 밀려와 시간을 넘나들고 있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하빈아..아빠다..우린 잘있다.."

"걱정했잔아요..왜 연락을 안하시고..거기 연락처를 가르쳐주세요.."

"아니..엄마가..어제 많이 아팠다..그래서..경황이 없어서.."

"네..돌아오세요..이젠.."

"하빈아..난 정말 네 엄마한테 해준게 없다..끝까지 지켜주고 싶다..끝까지..네게 미안하구나.."

"아버지..무슨말씀..아버지.."

동전이 떨어지면서 삐삐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사라졌다.

무슨말씀이셨지? 좀 늦겠다고 하셨을꺼야..그래..조금 더 있다가 오신다고..

그래..그랬어..분명히..

"연락이 되었으니..이제 걱정말고..눈좀 부쳐..너 요즘..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거 아니?"

"응? 으응.."

언니의 권유에 아버지의 전화에 산란한 가슴을 누그러뜨리며 잠을 청했다.

뒤척이다..뒤척이다..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던것 같다.

'우리딸..정말..잘 살아야해..엄마가 지켜줄께..엄마가..'

'엄마..어딨어?'

'걱정마..엄마는 늘 네곁에 있어..아빠랑..너희를 지켜줄꺼야..'

'엄마..엄마!'

엄마!하고 크게 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꿈..숨이 턱턱 막히며 식은땀이 흘려 내린다.

그 순간 울리는 전화벨소리..숨을 쉴수가 없다.

전화기로 향하는 내손은 떨리고 있었다.

가슴속을 날카롭게 긋고 지나가는 불길함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