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낭자..지금의 정국형세를 어떻게..보시오?"
"소녀가 뭘 알겠사옵니까..다만,,이 바둑처럼 소탐대실..아닐런지요?"
"아하..이런 또 내가 졌구려.."
그녀를 한양에서 모른다면..모름지기 선비라할수 없고 그녀와의 대국에서 이긴 사람은..별로없다.
그런 그녀를 만나지..어느덧 삼년으로 접어든다.
과거에 입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소문을 들었고 그렇게 차갑다는 그녀를 한번쯤은 보고싶었다.
남자의..오기였을까?
그녀가..뭐 그리 대단할까 싶어 찾아온 그날..처음 난 문전박대라는것을 경험했다.
허허..쓴웃음을 짓고 돌아서 가기를..세번째..
그냥 돌아서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 열었다.
씩씩 거리는 내 귀에는 차갑우면서 단호한 음성의 여자목소리가 들렸다.
"어느댁 도련님께서..이렇듯 무례하게 행동하십니까?"
"난..."
난,,할말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난,,,난 이씨 집안의 둘째 이 형빈이라 하오. 내 낭자의 바둑 명성에 놀라,,한수 배우러 왔소이다."
"바둑을 아시는 선비님께서..무례한 행동을..하시나요?"
"미안하오..세번이나 거절당하니..사죄하리다."
그녀의 몸종이 이끄는대로 난 후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깍아놓은듯..아름다운 사람이였다.
역시 소문대로...
차가운 기색에 가려져 아름다움이 빛을 잃어가는건 아닌지..
그런 첫만남에서 바둑에서는 대패를 하고..다시 오겠다며..돌아서왔다.
한 동안...
그녀가 술도 아니고 꽃의 향기도 아닐지인데..난 그녀에게 취해버린걸 느꼈다.
한때 정국공신으로 위세를 크게 떨쳤던 집안의 장녀였지만 지금은 몰락한 집안의 딸..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예견력으로 인해 두터워진 강한 배경을 가진 여자..이 하빈..
삼년이 다 되어가도록..
애툿한 마음은..전할수가 없었다.
그녀가,,나를 받아줄지도 의문이지만..그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늘 지켜만 보는..가슴아픈 애끓음이 계속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혼기가 찬 나이에 장가를 들지 않겠다고 우기는 통에 집안은 집안대로 시끄러웠고 난..힘들었다.
술에 잔뜩 취해..그녀를 찾아갔다.
"빈낭자..나요..이형빈이요..."
"도련님..술이 과하신것 같으니..오늘은 뵈올수가 없겠사옵니다."
"나,,할말이 있어 왔소..할말이...빈낭자,,처음 본 순간부터 사모하였기에..지금 이토록 슬픈거요"
그녀가 열어주지 않는 문가에서 흐느끼는 나...
깨어질듯한 두통으로 일어나 보니..사랑채 였다.
내가,,술이 과했군...
"도련님..일어나셨습니까? 하빈아씨께서 후원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녀를 만난다.그녀를...그녀는 분명..인연이 어쩌지 하면서 나를 내돌리려 할것이다.
그걸..알면서도 난 그녀가 기다리는 후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빈낭자,,어제의 무례를 용서하시오..다만..난.."
"도련님..도련님과 저와의 인연은..여기까지입니다. 이생에선..이뤄지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녀의 말에 응답을 하고는 있지만,,사실 머리가 멍하다.
그저..이자리가 그녀와의 마지막이 아니길..그렇게 기원만 하면서...
그녀를 향한 내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한 의지..뿐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내자신이오..내자신..당신을..잊으라는 말은 마시오.
차라리..날더러 죽으라고 하시오.."
그리곤 서둘러 돌아서 왔다.
사내 대장부가,,눈물을 보여선 안되니까..
그후..몇달이 지나도록..내가 어떻게 지냈는지..기억할수 없다.
"저.. 도련님..저...그게.."
"뭐냐 말을 해보라.."
"저..그게..빈아씨가..시집을.."
"뭐..? 빈낭자가? 사실이냐? 정녕..그것이 사실이더냐?"
그녀는 박정승의 소실로 들어간다는 것이였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한들..그녀가 부족한게 뭐 있기에..
그렇듯..인연을 운운하던 그녀가..그런 그녀가,,어떻게..
자리를 박차고 단숨에 그녀의 집앞에 왔다.
"문을 열어라..문을..."
"도련님..아씨께선 아무도 뵙지 않는다고.."
만류하는 몸종을 밀어부치고 들어선 그녀의 안채..
"빈낭자..그토록 차가운 지성에 미모까지 가지셨으면서..만족할줄 모르시오? 박정승의 소실이라니오..
박정승의 권력이 그리도 탐나더이까? 낭자..말을 해보시오..낭자.."
그녀는 조금 문을 열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천생연분..이라고 아시는지요? 하늘에서 이루어주는 인연이 아닌 천생을 살면서 만난 인연을 이르지요.
제가 할수 있는..최선의 선택입니다."
"말도 안되오..최선이란게,,고작 그것이오? 천생 연분이 어쩌니 저쩌니..난 그런것 믿지 않소.
그저 낭자를 향하는 내 마음만..믿을뿐이오."
열려진 방틈에서..빛이 났다..그녀가,,우는것일까?
하지만,,그런 생각에 말을 걸려 했지만..나는 곧.. 집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느댁 도령인지 모르겠으나 혼사를 앞둔 집안에서 무슨 행패요? 다시는..얼씬도 마시오"
건장한 체구의 막되어 보이는 사람들..박정승이 보냈으리라..
그의 야심을 체워줄 그녀를 지키기 위해...
며칠을 미친 사람처럼..허둥대기만 했고 거의 먹지도 잘수도 없었다.
눈물..아니였을까?
생각해보면 그토록 차갑던 그녀가,,내겐 한없이 부드러웠다.
가끔씩 보이는 수줍은 미소..
어찌보면..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는게 아닐까?
그런 대답없는 질문에 나는 빠졌다.
그리고 내가 눈을 떴을 땐..이미 그녀는 떠나 뒤였다.
난 결심했다. 모든것을 다 버리고 그녀를 택하기로..
말을 달려 박정승의 집으로 향했다.
집안의 잔치 분위기가..사뭇 진지 해 보였다.
지금은..그녀를 만날수가 없을것 같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해진 틈을 타서..사랑채로 들어갔다.
"허허..긴장이라도 한거요? 노곤하신게요? 빈..빈낭자?"
박정승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윽..하는 소리와 함게 그가 쓰러졌다.
잠자듯 누워 있던 빈 낭자를 일으켜 안았다.
"빈..빈낭자..당신이 뭐라해도..난 당신을 사모하오..당신 또한 나를 사모한다는것을..난.."
그녀는 왠지 가뿐숨을 내쉬면 힘겹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형빈 도련님...결국..어쩔수 없나 보네요..당신과 난,,이생에서 이뤄지면 안될 운명이였어요..
나 때문에 당신이..불행하게..."
"빈낭자..정신 차리시오..왜..왜 이런거요?
"..늦었어요..이미 제몸에는 독이 퍼져가요..이생을 마감하고 후생에선 정말,,
도련님을 깊이 사모하는것에 걸림돌이 없어지길 바래요..전..행복하세요.."
"아니되오..그렇게는 아니되...윽.."
강한 쓰라림이 등을 스쳤다.
울컥이며..입에선 피가 나온다.
"감히..이 무슨 발칙한 짓이냐..너는 죽어 마땅하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쓰러지는 나를 안아주는 그녀..
"나..다시 태어나 당신을 꼭 찾겠소..그땐..꼬..옥.....찾을것이요.."
"그래요..그때는..이렇게 늦진마요..이렇게....."
아직 봄이라지만,,무척이나 덥다.
옥탑방이라 그런가?
하여튼 신나게 이불빨래도 하고 점심도 먹었다.
조금은 한가한 시간..한가로움을 깨는 핸드폰 벨소리.
"언니..어쩐일로.."
"뭐..이젠 친구들 애인만난다고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날시는 좋은데..심심하잔니.."
"훗..그래요? 난 언니 인기 많은줄 알았는데..그것도 아닌가 봐요.."
"빈아..오늘 나 기분도 그런데..쇼핑도 하고 그러면 안될까?"
쇼핑이란건..언제나 내게 사치라는 생각..이였다.
하지만 오늘은..왠지 그녀의 청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좋은 예감..
"네..그럼..3시까지 나갈께요..그래요..거기서 봐요.."
그녀와의 쇼핑은 나름대로 즐거웠다.
아직까지 뭔가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나의 시선을 잡은 구두가 있었다.
하지만,,구두의 가격을 보곤..다시 만져보기도 겁이 났다.
언니는 이쁘다면 사라고 하지만..그녀는 나의 입장을 모르니까 하는소리이다.
"그럼 천천히 더보고 있어..난 잠시 화징실 좀.."
그녀가 자리를 비우자 매장직원은 억지반으로 내게 구두를 신겨 주었다.
참,,예뻤다. 벗겨진 내 구두는,,한없이 초라해보이고 그걸 신고 다녔던 나까지 움츠려든다.
"아니 됐어요..둘러보고.."
"손님 지금 저희매장에서 10%할인도 되는데..이 기회를 놓치시면 후회합니다."
"아뇨..그래도..아!!"
내가 신던것과는 달리 약간은 높은 힐 때문이였을까?
난 쓰러졌다.
"손님..괜찮으십니까?"
"아가씨..괜찮으세요?"
사태 파악...지금 내게 괜찮냐고 묻던 이 남자로 인해 난 넘어졌고 내 구두는..그의 발밑에 밟혀 있다.
"네..조심을 하셔야죠.."
"이런..죄송합니다..제가 미쳐 아가씨를 못보고 저도 잠시 어딘가에 걸려서 휘청했는데.."
"됐어요..어딘가에 걸리게 한건 제 구두니까,,저도 미안하군요..그럼 이만.."
"손님에게 정말 잘 어울리시는데.."
"아뇨..됐어요..저..발 좀 치워주시겠어요?"
"이런..죄송합니다. 저때문에..구두가 망가졌군요..어떻게 변상을.."
"훗...괜찮아요..뭐..어차피 낡은거였어요.."
그래.. 대학졸업식때부터 신었던 거였지? 훗..참..유행도 모르고 살았네..난..
뒤돌아서 언니를 찾기위해 화징실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저.."
"네..? 누구..?"
"좀 전에..구두매장에서..실레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건..제 성의 입니다. 거절하진 마세요"
그렇게 쇼핑백하나를 내게 안겨주곤 그는 세일에 몰려든 인파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그를 불러 세울수도 있었고 이런것은 받을수 없다고 ?Q 거절할수도 있었는데..
왠지..호감가는 그의 얼굴때문인지..아니면 남자에게서 처음받는 선물이기 때문인지..
거절할수가 없었다.
"응..구두 샀어? 그래..잘했어..너한테 딱이더라.."
"언니..그게 아니구..."
그녀는 어디 그런 멋진남자를 놓쳤나면..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왔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는 내게..
그녀의 늘어만가는 쇼핑백 때문에 할수 없이 집까지 함께 갔다.
"들어와,,생각보단,,넓지?"
당연히..넓죠..제 옥탑방에 비하겠어요? 라고 말할순 없었다.
"네..그렇네요..인테리어도 깔끔하고..역시 언니 다워요.."
"빈아 봐..이렇게 하면 방이 분리되니까..여기와서 나랑 같이 살자 생활비 조금만 받을께..응?"
"정말? 얼마 받을거에요?아니지..내가 파출부 비용 받아야 하는거 아니에요?"
그녀의 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들로..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만 가야한다는 그녀는..여기서 자고 같이 출근하면 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제의를 받아들인 내게 축하주라며 언니는 내게 맥주캔을 던졌다.
술이 취해서인지..
정말이지 언니처럼 편해서인지..
난 힘들게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하소연을..해버렸다.
정말이지..어쩜..너무 가슴에 담아두었기에..더 힘들었던것 같다.
"그래..그랬구나..아유..빈이 이 기특한 녀석...이젠 정말 날 언니처럼 생각하고 나랑 같이 살자.알았지?"
"나더러 차라리..죽으라고 하시오.."
휭하니 돌아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메여왔다.
당신을..사모하는마음은..아마 제가 더 클꺼에요..하지만,,저로 인해 당신이 불행하다면..
전 당신을 위해..어쩔수 없어요..우린..천생동안 살아오면서 만나왔던 그리고 가끔은 사랑했던 사이지만..
이생에선..당신을 위해 이렇게 모질어야 하는 날 용서해줘요..날...
용서해줘요...용서...
"빈아,,? 빈아? 아니 무슨 잠꼬대가 그렇게 심하니?아휴..땀 좀봐,,아니 눈물인가?"
"몇시에요? 7시야.."
"네? 그럼 지각이잔아요..어떻게.."
"서둘지마..빈아..여기서 회사까진 15분 거리다..알지?"
아차,,그렇구나,,여긴 서울 한복판이였지...
이젠 다른상황의 꿈속에서 되풀이되어 나오는 남자의 얼굴..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휴..떨쳐버리자..오늘은 일주일의 새로운 시작..월요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