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반장님!"
철우 는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서로 들어가다가 마침 먼저 서를 향해 걷고 있던 김 반장
을 부르며 급하게 그 쪽으로 뛰었다.
"어이! 손 반장이군!, 병원에서 오는 길인가?"
"네, 일찍 나오셨습니다. 어젠 잠복 근무가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어,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갔더니 마누라와 애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 "
"사모님 안녕하시죠?"
"어, 늘 제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사람 이쟎나, 여전해."
"참 좋으신 분이죠, 반장님 복도 참 많으십니다."
"글세 말이야, 복 덩어리를 제대로 대접해 주지 못해 늘 마음 한 구석이 찔려서 탈이지,"
김 반장이 씁슬한 미소를 짖는다.
"참, 자네 친구 분 좀 어떤가?"
"아직도 의식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남편을 자신이 죽였다는 한마디 외에 들은 것도 없고,착
실한 친구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빨리 깨어나야 할 텐데. . ."
"손 반장, 나쁜 소식이 있어."
"뭔 데요?"
"몇 일 전 일산에서 남녀가 철사줄로 목이 감긴 채로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 자네도 알
지?"
"네, 치정 관계로 저지른 범행 같다고 했던 그 사건 말씀이지요?"
"응, 놀라지 말게. 그 죽은 남자가, 바로 자네 친구 남편이라네."
"네?"
철우 는 가슴이 덜컹 주저앉음을 느꼈다.
당황하는 철우 의 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리며 김 반장이 조심스레
"이 사건 자네가 맡아보려나?"
". . . . . ."
"어차피, 친구분과 연관이 있는 듯 하고, 자수 할 의사가 있었던 것 같으니 자네가 맡아서
도와 줄 수 있는 방법도 찿아 보고, 자네가 맡게나."
"일산 쪽 담당일 텐데요?"
"자수 한 것은 이쪽 서이니 자네가 맡을 수 있도록 주선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철우 는 서에서 나와 일산으로 차를 몰았다.
담당했던 형사와 사건 현장을 돌아보고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만나기로 한 곳에 그쪽 형사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현장에 함께 도착했을 때 그 곳
은 몇 일 전에 사람 둘이 끔찍하게 죽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나즈막한
야산은 단풍으로 노을이 지는 듯 타들어 갔고 승용차가 서 있었던 주변엔 갈대밭으로 우거
져 있었다.
"당시 상황을 좀 알려 주시죠."
"산밤을 따러 나왔던 인근 주민이 처음 발견하고 신고를 해 왔습니다. 아침나절 산에 올라
갈 때부터 있었던 차량이 저녁 늦게 산에서 내려왔을 때까지 그저 있어서 웬 차가 이 산중
에 있나 싶어서 차안을 들여다보니 사람 둘이 차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잠들어 있는 것 같
더랍니다. 공연히 실수했구나 싶어 돌아서려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는 거죠. 그래, 염치
불구하고 다시 들여다보니 여자가 눈을 허옇게 뜨고 철사줄로 목이 감긴채 혀를 길게 뺀 채
로 죽어 있더랍니다. 너무 놀라서 남자 쪽은 볼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하
더군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와 보니 철사줄로 목이 심하게 조여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등받
이 쪽에서 누군가 철사줄로 목을 조이고 질식사시킨 것 같습니다. 반항한 흔적도 없고 너무
나 깨끗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좀 의아할 정도입니다."
"주변은 살펴보셨습니까?"
"근처 갈대밭까지 살펴보았습니다만 특이한 사항이 발견된 것은 없었습니다"
"신원은 어떻게 알아 내셨습니까? 차량 번호판 까지 떼어 낸 것을 보니 신분증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은데. . ."
"지문 조회를 했죠. 그리고 차량은 버려진 차량이었습니다. 물론 차안에 범인의 지문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원한에 의한 범행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알아 내셨나요?"
"네, 여자 쪽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상태고 형제, 자매 모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이라
곤 직장 동료들과 거래처 사람들 뿐 이었는데 여자의 사생활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와 결혼하려던 남자는 여자의 부정을 알고 거의 폐인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잘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아요. 배신감 때문에 혹시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고
그 남자도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 쪽은 부인이 행방불명 된 상태로 지금 수사중입니다."
"아, 사실은 그 부인이 지금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자수를 해와서 저희가 보호 중에 있습
니다."
"아, 그랬었군요. 그래서 사건 담당이 바뀐거군요. 그렇담 이 사건은 곧 마무리가 되겠군요,
범인이 자수를 했다니. . ."
"예, 그래야 되는데, 아직. . .
자수한 사람이 경찰서에서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말을 하자마자 혼수 상태로 들어가서
지금 병원에 있거든요. 허지만 깨어나서 자세한 진술을 들어보면 사건은 곧 마무리 될 겁니
다."
일산에서 자유로 쪽으로 차를 돌려 달리며 철우 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 사건, 그런데 너무도 쉽게 범인이라 말하는 미순 이가 자수를 한 것
이었다 어쨌든, 빨리 병원으로 가 미순 을 만나야 했다.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그녀로부터
들어야 했다. 자유로를 달리는 차의 속도가 올라갔고 길거리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의
불빛이 번쩍였다.
"아차, 내가 지금 너무 흥분 돼 있군."
혼자 말을 중얼거리며 철우 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자유로가 끝나 시내 쪽으로 가는 길은
차가 많이 밀리는 상태였고 도로에서 시간을 꽤 소비한 철우 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미순
은 깨어 있었다.
"깼구나, 몸은 좀 어때?"
"저, 너, 철우 아니니? 철우 맞지?"
"그래, 나 철우 맞어. 근데 너 어떻게 된 거야?"
근심스런 얼굴로 묻는 철우 에게 미순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나,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 여기 왜 이러고 있는 거니? 그리고 넌 여기 어떻
게 온 거야?"
"뭐라고? 네가 경찰서에 왔다가 쓰러졌었쟎아, 기억 안나?"
"경찰서에? 내가 경찰서에 왜 갔었는데?"
철우 는 기가 막혔다. 애가 도데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때 간호사가 철우 를 불렀다.
"보호자 분, 의사 선생님께 가 보세요."
"알았습니다."
"잠깐만 있어, 곧 다녀 올 테니. . "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층의 담당 의사 선생님 방 앞에서 노크를 한 후 문울 열
고 들어선 철우 는 마주 앉은 중년의 의사에게 인사를 하며
"저, 506호 환자 때문에 왔습니다. "
"네, 들어오세요."
의사가 하얀 까운을 입고 안경을 벗어들며 철우를 맞았다.
"최 미순씨 보호자 되십니까?"
"네, 현재는 그렇습니다."
"남편 되는 분 아니십니까?"
"친구입니다."
철우는 신분증을 내 보였다.
"아, 그러시군요."
"최 미순씨 상태가 지금 어떻습니까?"
"네,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 있는 데다가 몸까지 쇠약하고. . . 더 나쁜 건 지금 현재 일시적
인 부분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겁니다."
"네?"
"최미순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뭔지 모르지만 커다란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증 같은데. . ."
"기억 상실증이요? 부분 기억 상실증이라면 도데체 언제부터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
까?"
"약 이삼년전 일부터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격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잊고 싶은 일이 있어 잠재적으로 본인 스스로 기억하기
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철우 는 이제서야 미순이 자신을 알아보면서도 왜 경찰서에 왔던 것을 모르고 있는지 납득
이 가는 듯 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