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35

동무야


BY hl1lth 2001-03-30


"쉿! 조용히 해!"
밭 두렁 가까이 에 봉순, 미순, 영희, 철우, 학표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저쪽에선 미
자가 망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 빨리 해!" 미자가 나즈막한 소리로 아이들을 향해 소
곤거리며 손으로 무언가를 빨리 하라 재촉한다. 먼저 학표 가 살금살금 무밭으로 향하고 뒤
따라 아이들이 밭이랑 쪽으로 낮은 자세로 다가선다. 달빛 아래로 절반씩 솟아올라 밑동이
허옇게 드러난 무들이 실하게 땅속에 박혀있다. "야! 표시 나지 않게 한 곳에서만 뽑지 말고
군데군데 띄어가면서 뽑아!" 기껏해야 서너 개 뽑아 아이들과 밤참 삼아 나누어 먹을 것이
뻔하건만 아이들은 서너 자루라도 뽑아갈 듯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무청이 실한 놈으로 골라 두 손으로 잡고 끙끙거리며 잡아 당겨 보지만 잘 뽑혀 주질 안자,
봉순 인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낮게 일어 선 자세가 되어 무를 잡아 당겼다.
"아이쿠!" 무가 뽑히는 순간 봉순 이는 밭고랑 사이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옆에서 영희가 화
들짝 놀란다. "야아~,깜짝 놀랐쟎아."  "어이쿠 엉덩이야. 미안해" 십년 감수 했다는 표정으
로 아이들이 다시 무를 잡아당기려는데 바로 옆 인듯, "금자야~" 하는 소리가 밤 공기를 가
르며 커다란 소리로 들려온다. 화들짝 놀란 일행은 꽁지가 빠져라 하고 처음 약속 한 대로
개울 쪽으로 내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들킨 것 같으면 모두 개울로 도망가기로
했던 것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미순의 신발은 어디로 갔는지 달아나 보이지도
않고,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은 처량하기만 한데, 그나마 힘들게 뽑았던 무조차도 너무 놀라
밭에 버려 두고 미처 가져오지 못한 채였다. "에이- 씨, 봉순 이 아버지는 왜 하필 그 때 나
타나 가지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개울가에 주저앉은 일행은 한숨을 돌리자 생각지도 않
았던 봉순 이 아버지의 "금자야~" 소리에 놀라 뛰었던 자신들을 생각하며 키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봉순 아, 너희 아버진 왜 술만 드시면 너희 엄마 이름 부르시는데?  "밤에는 애
들 이름 부르는 것이 아니래."  "너희 엄마는 또, 네~ 하면서 저 아랫동네까지 마중 나가고,
그 치?" "몰라! 나먼저 간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집 쪽으로 뛴다.

아이들은 봉순이의 마음을 모르는 척 하며, 학표 가 한 개 건져온 무를 돌려가며 베어먹는
다.  무를 입안 가득 베어먹으며 미순이가 "야, 내 신발 한짝 없어졌어." "뭐라고? 정말? " "
그래, 급하게 뛰다가 한 쪽이 벗겨 진 줄도 모르고 여기 까지 왔단 말이야." 미순 이의 발을
쳐다본 아이들이 "정말이다!" 우 하하하- 하고 일제히 웃음을 터트린다. "웃지만 말고 같이
찿으러 가자" "에이~ 신발까지 벗어버리고 도망 오는 애가 어딨냐?" "그럼 어떻게, 걸리면
아랫동네 진섭이 처럼 손들고 벌서야 할텐데. . ." "맞어, 맞어," "진섭이 복숭아 서리하다가
들켜 가지고 하루 죙일 길가에서 나는 양심불량입니다" 하고 서 있었쟎아 히히" "그래도 우
린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야, 빨리 신발 찿아 주고 가자." "자다가 없어 진 걸 알면 엄마
들이 난리 날 테니. . ." 풀섭을 헤치며 무 밭 쪽으로 두리번거리며 걷던 아이들이 저쪽 길
가 쪽을 바라보니, 봉순이 엄마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봉순이 아버지를 부
축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를 불러대는 봉순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에고~ 봉순이 아버지, 정신 차리고 잘 좀 걸어봐요" 채근하는 봉순이
엄마에게  "놔!, 나 혼자도 잘 걸어 갈 수 있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봉순 이 아버진 어
기장을 놓았고, 남편을 추스리며 봉순 엄만 깊은 한숨을 들이쉰다. 봉순이 아버진 지금 화가
나 있었다. 철이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철이 없긴 매 한가지인 철이가 또다시 봉순 아
버지의 울화통을 터트려 놓고 가 버린 것이다.

새로 짓는 학교에서 공사 총감독을 맡아 일하는 남편을 조금이나마 도와 반찬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봉순 엄마는 집에서 염소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염소젖을 짜내어 소금을 약간
넣고 끓인 후 식혔다가 몇, 몇 집에 우유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봉순 엄마는 새벽에
서둘러 일어나 염소젖을 짜 양동이에 받아 끓여 놓고는 우유병 을 소독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히려고 양동이에 놓아 둔 그 우유를 가지고 철이가 맛사지 한다며 목욕을 하고 만 것이었
다. "생각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까-" 아침에 봉순이 아버지는 차마 장인 앞에서 철일 나무
라지 못하고 끓는 속을 진정시키려 술을 먹고 만 것이었다.

늘,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에 그리움을 어디 두고 하소연 할 길 없는 남편이, 어머니를
부르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여, 술을 핑계삼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닌다는 것을 봉순이
엄마는 잘 알고 있었다 늘 가슴이 아파 보듬어 주고 싶은 남편을 자신의 조카이며 아들인
철이가 다시 속상하게 하고 만 것이었다. 아마도 우유가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고생하는 고
모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철이가 못내 서운해서였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지난날 자신
이 북에 계신 어머니에게 철없이 굴었던 지난날의 잘못이 생각나 가슴 아퍼 하고 있는 것인
줄도 몰랐다. 남편을 힘겹게 부축한 봉순이 엄마는 남편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쓸어 내리며,
언덕 위의 자신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멀어져 가는 봉순 엄마와 아버지의 뒷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풀 섶에서 나와 서며 "봉순이 아버지, 오늘은 굉장히 많이 취했
다, 그지?" "그래, 술만 안 드시면 참 좋은데. . ." 그저 비틀거리는 겉모습만 보일 뿐 봉순
아버지의 속을 알 지 못할 아이들에겐, 옆에서 힘들게 부축하고 올라가는 봉순 엄마만이 안
돼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