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188

동무야


BY hl1lth 2001-03-30

점심시간이면 의례껏 봉순이와 미순이, 봉순이 짝꿍 철우, 그리고 미자와 영희는 답답한 교실에서 나와 모두 도시락을 들고 운동장 뒷 켠에 있는 벗지 나무 그늘로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고무줄 놀이와 다방구 놀이를 하곤 하였지만, 오늘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모두들 봉순의 자리로 모여들었다.

철우가 책상속에서 노란 양푼 하나를 꺼냈고, 아이들은 각자의 도시락에 든 밥과 반찬을 양
푼 안에 쏱아 부었다. 반찬이라고는 콩나물 무침과 김치쪼가리, 그리고 콩자반과 깍뚜기가
전부였지만, 봉순이가 가져온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비니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여기다 참기름 몇 방울만 있으면 죽이는데-"  양푼담당인 철우가 수저로 밥을 뜨며 한마디
한다. 미순이가 군침이 도는지 입맛을 다시며  "사내자식이 별 걸 다 챙기고 앉았네, 양푼에
밥알이나 흘리지 말고 먹기나 해"  "야~ 근데 오늘은 보리밥이 더 많아 진 것 같다. 요새
부쩍 방귀가 나와 싸서 미치겠어" 철우가 물색 없이 주절거리자 옆에서 미자 얼굴이 귀밑까
지 새빨개진다. 도시락을 싸 올 때면 늘 엄마에게 "엄마, 보리쌀 좀 작게 넣어- 내 밥만 맨
날 새까맣단 말이야, 아이들이 혼식검사 하는 날은 내 보리쌀 빌려다가 지들 밥에심는 다고
난리 치는 걸 보면 정말 속 상해 죽겠어"  하고 투정부려 보지만 "보리밥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 천진기라, 가스네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빼지도 보태지도 않는 엄마의 답변에
늘 본전도 찿지 못했다.

미자 가 속상해 하는 것 같자 눈치 빠른 봉순 이가 "나는 보리밥이 구수해서 맛만 좋더라,
방귀 좀 뀌면 어떠냐? 소화 잘 되고 좋지" 하며 입안 가득 밥을 퍼 넣는다. 너도나도 "맞다.
맞어~ 보리밥이 몸에도 얼마나 좋은데. . " "쌀밥만 먹으면 각기병 생긴다더라" 하며 철우를
향해 눈을 흘기자, 철우가  "누가 뭐래?" 하고는 멋적어하며 양푼 안의 밥에 금을 긋는다. "
여기 요만큼은 봉순이 묵고,  요만큼은 미순이꺼. . ."  "야, 너 뭐해? 밥에다 삼팔선 글 일
있냐?  그냥 눈치껏  각자 알아서 먹기다."  미순이가 얼른 그어놓은 금을 휘저어 놓고는
빠른 속도로 밥을 먹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덩달아 빨리들 먹느라고 볼이 미어 터지고, 양푼
은 순식간에 비어버리고 말았다.

"아이, 배부르다."
영희가 먼저 수저를 놓고 뒷 분단 쪽으로 가더니 주전자와 컵을 들고 온다. "오늘, 비가 와
서 나가 놀지도 못하겠고, 우리 공기놀이할까?"  물을 따라주며 영희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어떠냐는 듯 눈을 찡긋거리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바닥으로 주저앉아 각자의 영역을 만
들었다. 영희가 치마주머니에서 빤지르르하고 예쁜 조약돌 다섯 알을 꺼내 놓자 "오 덴-찌,
기울어도 편먹기!" "오 덴-찌, 기울어도 편먹기" 아이들의 조막 손바닥이 뒤집어졌다 제껴
졌다 한다.  두편 으로 편이 갈라지고, 숫자 가 맞지 않아 아무 곳에도 끼지 못하고 남게된
철우는 늘 그랬듯이 깍두기가 되었다. 깍두기는 양쪽 편에 끼지 못했다는 상실감을 양 쪽
편 모두 거들 수 있는 입장을 만들어 줌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를 주는 소외된 자에게 주
는 배려와 혜택 같은 것으로, 요즈음 끼지 못하면 빼내버리는 왕따의 개념과는 상반되는 제
도였다.

먼저, 공기알을 집어든 봉순 이가 조그만 손바닥에 놓인 공기알들을 바닥에 쫘 악 뿌려 놓
고는, 옆의 공기돌 이 움직이지 않도록 살그머니 돌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 돌 한 알을 공중
으로 집어 올려 던지고는, 알이 떨어지기 전 얼른 바닥의 공기알 하나를 손바닥 안에 움켜
쥐며, 공중에서 공기알이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아이들의 눈알은 공기 돌을 쫓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함께 오르락, 내리락 한다. 네 알 집기까지 잘 끝내놓고 꺽기
를 하다가 그만 한 알을 놓쳐버린 봉순인 "에이, 죽었다." 하며 공기알 다섯을 모아 다음 차
례인 미순에게 건네주었다. "잘해, 알았지?" 한편이 된 미순을 격려하는 봉순에게 "알았어,
걱정마. 이 언니가 누구냐 ?" 하고는, 공기 돌을 살짝 손등으로 던져 올린다.

그러나, 아차차. .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기 돌을 미처 받아내지 못한 미순인 그만 죽고 말았
다. "6 학년의 명물, 최미순 양, 아-깝습네다, 아깝습네다. 이 깍두기 철우! 목숨걸고 도전!
합니다~." 바닥에 흩어진 공기 돌을 주어 모으며 철우 가 외치자, 그만 아이들은 데구르르
구르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 학표가 "야, 손철우, 너, 또 계집애들하고 공기 하냐? 사
내자식이 쪼잔 하기는, 그러지 말고 나도 좀 시켜 줘-잉" 하며 등치값도 못하고 철우 옆으
로 폴싹 주저앉자,  긴장했던 아이들은 다시 박장대소한다. 다시 한번 "덴 찌, 오 덴 찌-기
울어도 편먹기!" 하며 아이들의 편가르기가 시작되고 교실 안은 웃음이 넘쳐 났다.

점심시간도 끝나고 수업도 끝나고 청소시간이 되자, 반장은 교무실로 양동이를 들고 배급
인 옥수수 빵을 타러 나가고, 아이들은 책상, 걸상을 모두 교실 뒤쪽으로 옮겼다. 주번이 빗
자루로 교실바닥을 쓸어내고 나자, 아이들은 각자 준비해온 석필과 걸레를 들고 교실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우선, 석필을 바닥에 낙서하듯 그리고 나서 마른걸레로
문지르다보면 바닥이 맨질 거리며 광이 나기 시작한다. 그 위에 침을 퉤! 뱉고 다시 문질러
주면, 바닥은 그야말로 유리알처럼 빛이 나기 마련이다. 열심히 걸레질을 하던 봉순이가 자
기 걸레를 짜증 난다는 듯, 바닥에 팽개치며 미순에게 묻는다. "미순아, 니 걸레, 너네 아버
지 입으시던 난닝구로 만들었나보다, 그지? 내건 엄마 입으시던 빨간 내복으로 만들어서 영
광이 잘 안 나는 것 같아" "이거?, 난닝구 하구 팬티하구 섞어서 만든 거야 킥킥.. .." 미순
이가 키득거리자 봉순 이도  키득거리며 함께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는 교실바닥을 걸레
로 밀고 다니기 시작했다. 

바닥 광내기가 끝나자, 책상, 걸상이 다시 앞쪽으로 밀려 나가고, 주번이 빗자루로 교실 나
머지 반쪽을 깨끗이 쓸어낸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들이 바닥을 문지르는 동안, 교실
여기 저기에선 남자아이들의 걸레가 날라 다니고, 무리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종달새가 우짖
는 것처럼 들린다. 드디어 책상 걸상이 정리 정돈되고 청소가 끝나자, 선생님께서 양동이 안
에 담긴 동그랗고 노리끼리한, 보기에도 먹음직해 보이는 옥수수 빵을 차례대로 나누어주시
기 시작하셨다. 대부분 하나씩 받아가게 되었지만, 어쩌다 운 좋은 날은 두개씩 받는 날도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운좋은 그날로,  아이들 말대로"기분 나이스!"였다. 빵을  하나씩 받
는 날은 집에서 기다릴 동생이나 언니, 오빠들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했기 때문에 늘 입맛
만 다시고 말아야 했지만, 두개를 탄 날은 한 개를 몽땅 혼자서 먹을수 있기 때문이었다.

새끼손가락 만큼씩 뜯어내어 국물을 쪽쪽 빨을라치면, 옥수수의 단맛이 어찌나 고솝고 맛
나는지, 과자가 귀한 만큼 옥수수 빵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부자 집 아이들은 병에 든
우유를 먹었는데,우윳병 주둥이를 막고 있는 딱지처럼 생긴 병마개를 딸 때면
뾱! 하고 소리가 나는 것이 여간 재미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얀 우유 물이 입가에
번지는 모습을 보면 미순이도 봉순이도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오늘은 운수 대통한 날이었
다. 모두의 손에 빵이 두개씩 들려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가방을 들고 비가 그쳐 질척해
진 진흙길을 뛰어가 철우네 툇마루에 올라앉았다. 동생이 없는 철우 네 집에서는 각자 한
개씩,  횡재한 빵을 다 먹어도 뭐라 나무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방
에서 빵을 꺼내든 아이들은 모처럼 만에 여유 있는 모습으로 빵을 먹기 시작했다.

미순이가 먼저 숙제할 공책을 꺼내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들 공책이며 연필 등을 꺼내놓자,
산수는 미순 이가 풀고, 자연숙제는 철우가 하고. . .나머지는  미순이와 철우가 숙제를 하는
동안 옆에서 묵찌빠를 하며 놀았다. 미순이와 철우가 숙제를 다하고 나자, 아이들은 앞을 다
투어 둘의 공책을 베끼기에 바빴고, 베껴 적는 동안도 틀리는 글씨가 있어, 지우개로 공책을
비벼대다 보니,꼭 때처럼 길게 늘어진 지우개 똥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멀리서 봉순이 엄마가 "봉순 아-, 봉순 아-" 하며 찿으시는
소리가 들린다. "야-너네 엄마 너 찿으신다. 빨리 가봐라" 철우 가 걱정스런 눈으로 봉순 을
재촉하자 "그래, 나 먼저 간다. 내일 보자" 며 급하게 책가방을 챙겨든 봉순이가 먼저 자리
에서 일어선다. 함께 나온 미순 이와 함께 집 쪽을 향해 뛰며 봉순인, 너무 늦어서 엄마한테
혼 날 일이 걱정스럽다. 그나마 숙제라도 다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미순아, 내일 우리 집
앞에 와서 나 불러, 알았지?" 하며 미순을 향해 잘 가!~   손을  흔들고는 집 쪽을 향해 부
리나케 뛰어간다. 집으로 향해 가는 봉순 의 뒤통수에 대고 "잘 가!" 소리지르며 미순이도
덩달아 집 쪽을 향해 뛴다.

덜렁거리며 등에 매달려 뛰노는 책가방을 한 손으로 잡아 누르며 급하게 집에 도착하니 흙
투성이가 된 남동생 둘이 만화책을 보며 뒹굴고 있었다. "너희들, 또 나가서 놀고 들어 와서
안 씻었지?" 두 눈을 부릅뜨는 미순의 눈치를 살피며 개구쟁이 두 녀석이 마당의 우물가로
나섰고, 따라 나선 미순이가   꼼꼼하게 얼굴이며 귀며 목, 까지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아
주고는, 수건으로 찬찬히 물기를 닦아주었다. 가방에서 옥수수빵 한 개 반을 꺼내 든 미순이
는, 반쪽은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한 개를 둘로 나누어  동생들에게 나누어주며 "이거 먹고
숙제들 좀 하고 있어. 누나가 금방 밥 차려 줄게"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미순의 엄마와 아버지는 북한산 계곡 유원지에서 산 장사를 하시기 때문에 저녁 늦게나 집
으로 오신다. 하여 미순이는 늘 동생들과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조막만한 손으로 밥을 하
고, 엄마가 끓여 놓고 가신 국을 데워 찬장 속에 있는 찬을 꺼내어 상을 차리고,  동생들과 
저녁을 먹은후,  설거지를 하는동안 동생들을 공부하라고 시켜두고, 동생들의 숙제 장을 검
사하고 나면, 눈꺼풀이 아래로 자꾸 떨어지고 머리를  곤두박질 치는 동생들을  잠자리를
보아 먼저 재웠다. 그리고 나서 미순인 책상 앞에 앉아서 밤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실 부모님
을 기다리며 공부를 했다.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부모님께서 미순의 그런 모습을
대견해 하고 보람으로 여기신다는 걸 미순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