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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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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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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바다 2001-03-28


토요일의 지루한 하루가 시작 되었다. 아이들은 놀이방이나 유치원을 가지 않았고 온종일 집안에서 쿵쾅 거리며 엄마를 힘들게 했다. 아랫층에 새댁이 많이 시끄러울 텐데... 전화기에서 반짝 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아이들에 웃음 소리와 텔레비젼의 소음이 하나로 합쳐져 전화벨 소리를 이내 잠식 시켰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형들을 발로 헤치며 다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네..." 목소리 톤을 높여 말을 했다.
"누구세요?" 아이들의 넘어갈듯 까르륵 대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 했다. "너희들 방으로 들어가...제발. 조용히좀 하라구...."
"여보세요."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나? 고함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려..."
"어...당신... 말 소리가 안 들려서, 애들이 떠드니까.. 무슨일 이예요? "
"오늘 집에 못 들어 가겠네.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어. 내일 새벽이나 되야 들어 가겠어..."
"토요일 인데..애들하구 놀아주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아...이사람아, 내가 놀러가나? "
"알았어요. "
날이 갈 수록 남편은 짜증이 늘었다. 하루에 1시간도 제대로 보기 힘든 남편 얼굴... 어쩌다 말 한마디를 하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끝까지 경청 해 주지를 않는다. 뒤틀리기 시작한 부부생활을 어디서 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내가 이대로 미쳐 버렸으면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 들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내 자신에서가 아닌 아이들에게서 찾고 있는 지금에 나로선, 언제 어떻게 그 가느다란 끊을 놓아 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 었다.

"은지엄마...뭐하니?" 윗층 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예고도 없이 찾아 들었다. 에너지가 가득차 당장이라도 폭팔할 듯 언니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전화도 없이...앉아요. 차 줄까?" 식탁의자를 가르키며 언니에게 말을 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매일 보면서도 반가움에 소란을 떨어 댔다.
"우리 애들 데리고 산책이나 갈까? 점심 간단히 준비해서 ...아님 사먹는것두 좋구...응?" 언니는 애들 때문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더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처럼 대답을 재촉 했다.
"헉....언니 난 애 둘 데리고는 혼자 못 나가...언니야 둘 다 컸지만 난 작은애 때문에 어딜 가도 편치가 못해...자기가 더 잘 알면서..."
"야...너 그런다구 맨날 집에만 있으니, 얼굴이 누렇게 떠서 중병 앓고있는 환자 같은거야. 힘들어두 자꾸 나가고 해야지 너도 적응 되고 애들도 적응되고 그러지....넌 생긴건 안 그런데 정말 답답 하다.."
언니는 정말로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 봤다.
"내가 그렇게 답답해 보여? "
"너, 정말 웃긴다니까...뭐가 그렇게 문제야? 누구나 다들 사는 모습 들여다 보면 다 비슷 비슷하지 특별한 거 있는 줄 아니? 좀 편히 살어...대충 대충 즐기며 살라구... 넌 알면 알 수록 속을 알 수가 없단 말이야...기분 나쁘게..."
"언니, 그랬다면 미안....에고...나두 왜 이러고 있는건지...나 아무래도 주부 우울증인가봐! 그치?"
"음....단순히 주부 우울증이면 애들 쬐끔만 더 크면 좋아 질거야. 나두 그랬었거든...내가 뭣하러 그렇게 죽으라고 젊은 시절에 공부를 했는지, 아이들 똥기저귀 빨려구 결혼을 한건지...하여튼 그 혼란함에서 빠져 나오기가 정말 힘들더라구...내가 슈퍼가서 물건값 치르는데 미분 적분 안 해도 전혀 지장 없고 집에서 살림하는데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한 번도 없는게...하여튼 그랬는데, 곧 좋아 지더라구...이런게 사는 거구나.포기반 이해반 하면서 ..."
"으응....사는게 그런거지...."
"어유... 할머니같은 표정...콕 한 대 쥐어 박고 싶다..."
"언니...오늘은 언니만 같다와. 다음엔 같이 가자..."
"그래야 겠지? 니 표정을 보니 애걸을 해도 안 갈 거 같다. 수림아...나와. 엄마랑 어디 가자..."

친구가 가고 나자 은지는 맥이 빠졌는지 한결 조용해 졌다.
내일은 정말이지 가까운 곳으로 아이들과 같이 나가야 될텐데...

남편은 새벽 6시가 되서야 들어 왔다. 옷을 벗지도 못한 채 쓰러져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너무나 완벽한 남편...그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나....
남편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조여들어 숨이 막히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잘 짜여진 각본 대로 한치에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하는 남편이 좋을 때도 있었다. 상처 뿐이고 불안정 하기만 한 내 삶을 남편의 제대로 된 삶 속에 편승 해서 잘 살아 보리란 꿈을 갖었 으니까...

오전 11시가 되자 아이들은 아무리 주의를 줘도 떠들어 대기 시작 했다. 남편은 몇번을 뒤척이다 일어 났다.
"아빠가 잠좀 자려구 했는데 ...협조를 안 해 주는군요..." 미처 떠지지 않는 눈을 깜박 거리며 아이들을 안았다. 아빠의 따가운 수염에 이리 저리 얼굴을 피하며 아이들은 즐거운듯 깔깔 거린다.
쉽게 그 자리에 끼지 못하는 내가 이방인 처럼 주위를 맴 돌았다.
"이봐...오늘 애들 데리고 장모님이랑 온천이라도 다녀 오지?"
"그럴가...당신은요?" 가족과 함께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들떴다. 장모님을 모시고 가자는 말이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집에서 쉴께...."
아! 집에서 조용히 밀린 잠을 자고 싶어 걸리적 거리는 우리를 집 밖으로 내몰려고 그런거구나... 순간 발작 하듯 온 몸이 떨려 왔다.
"아니...가려면 같이 가구 아니면 같이 집에 있어요." 남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쳐다 봤다.
"내가...온천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 시간에 잠을 자지...당신이 부러워 편안히 집에서 살림하구 온천하고...안 그래?"
진심으로 부럽다는건지 비꼬는건지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에 알 수 없었지만, 난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내가...내가...식모야? 씨받이야? 도대체 뭐냐구? 왜 날 미친년으로 만들어....내가 옷 벗구 길에서 발광이라도 해야 미쳤나보다 하겠지? 나 멀쩡해 보여도 속은 썩을 대로 썩어서 문드러 졌어.."
"조용히해..." 무서울 만큼 차가워진 얼굴로 한마디를 했다.
"그렇게 못해... 할만은 해야지. "
"나가...."
"나가? 이제서야 그말을 하는군..."

우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가 아는 누구에게도 불행한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온종일 시내를 걷고 또 걸었다.
얼만큼을 걸었는지는 퉁퉁 부은 발이 말해 주고 있었다.
밤거리는 싸늘 했다. 벤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넋 놓고 쳐다 봤다. 스치고 지나가는 저 사람들 중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숨어 있던 나를 보여 주고 싶었다.

"여보세요.."
"나야....수민이...전화 받기 곤란하면 끊을께..." 내가 선택한 사람은 성준 이었다.
"누구? 아냐...아냐...나도 나와 있는거야...어디니?"
"그래...밖이야...어딘지는 나도 몰라. " 어딘지를 묻는 말에 주위를 살펴 보니 처음 보는 낯선 길에 내가 있었다.
"그러니? 주위에 전철역 없어? 찾아봐...높은 건물이라도..."
"....." 왈칵 눈물이 쏟아져 대답을 못 했다.
"수민아? 수민아?"
"성..준..씨....나한테 ..너무..잘 해 ..주지마...절대로..."
"수민아...힘든 일이 있었구나....말해...지금 갈께."

택시 한대가 눈앞에서 멈춰 섰다. 성준이 내려서 정확히 내게로 걸어 왔다. 이러면 안되는건데...
"수민아, 어디에 들어가 있지 ..춥지?"
"...."
"일어나...어디 들어가서 몸 녹이고 뭘좀 먹어야지..."
"성준씨...오지 말지 그랬어...."
"어서 일어나 있다 말하구.."
카페 안에 훈훈함이 얼었던 몸도 마음도 녹이는듯 했다. 커피를 먼저 주문하고 성준은 식사를 권했다.
"성준씨, 왜 안 묻지? "
"묻긴 뭘 물어...부부싸움 한번씩 안 하는집이 어디 있어. 자기 성질에 못 이겨서 수민이가 나온거 아닌가?"
"결과적으론 그렇지. 나 혼자 소리치다 나 혼자 나왔으니까..."
"잘했네....속이 확 풀리지? 슬슬 집 걱정도 되구?"
장난스러움이 묻어 나는 눈 빛으로 날 바라 봤다.
"듣고 보니 그러네..." 정말 그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슬픔과 노여움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너무나 평온 했다. 성준의 넉넉한 여유로움이 소용돌이 치던 마음을 잠 재우고 있었다.
"수민아, 난 네가 너무 좋아. 이유를 묻는 다면 이유는 없어. 네가 내게 어떻게 하든 난 네가 좋을거 같아. 오늘 집에 돌아 가면 이제 부턴 씩씩 하게 생활해.다른 여자들처럼 쇼핑도 하고 운동도 하고. 누군가 하루에도 몇번씩 널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걸 잊지 않는다면 너도 힘이 날거야. "
그렇게 이유없이 누군가가 좋아 질 수 있는걸까...
"성준씨, 고마워....그런데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있는건가..."
"글쎄...아마도 그건 내가 너에게 기대 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서 그런지도 몰라. 결혼 상대자로 널 만났다면 달랐을거야.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겠지..."
"하여튼 미안해. 이렇게 달려 오게 만들고..." 진심으로 미안했다.그의 아내에게도...
"너, 충분이 나한테 이래도 돼...너에게 나를 어떻게 하든 상관 없다는 권리를 줄 수 만 있다면 주고 싶어..." 그의 눈이 촉촉히 젖어 들었다. 그의 눈을 본 이상 그의 마을을 더이상 의심하고 희롱해선 안될것만 같다.

집앞에 도착을 하자 그가 조용히 안았다. 전혀 불쾌하거나 싫지 않았다. 아버지 품이 이렇게 포근할까.. 한번도 아빠 품에 안겨 보지 못한 나는 막연하게 그에게서 아버지 품을 느꼈다.
"고마워...들어 갈께...."
"그래. 내일 좋은 소식 들려 줘라... 알았지?"
"응..."

집안은 깨끗이 치워져 있고, 아이들은 잠을 자고 있다.
내 손이 미치지 않아 엉망이 되고, 울고 있을 아이들은 생각 하며
들어 온 내게는 흐트러짐 없는 집안 모습에서 섬짓한 무서움을 느껴다. 남편은 아내가 나간 자리를 표나지 않게 잘 메꾸어 놓았다.
'이런게 아닌데....' 훅하고 가슴이 막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