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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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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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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더벅머리 2001-03-08

5.

영신은 다가드는 경숙을 향해 멀찌감치서부터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달리 인사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랬잖아. 그렇게 부탁했는데, 왜....."
경숙도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은 고개를 그냥 그대로 숙인 채로, 한 사람은 그 숙인 고개 내려다 보고 선채로 얼마간이 흘렀다.영신은 입을 가리고 있던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경숙의 체온을 느꼈다. 영신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경숙을 쳐다보았다.

"소복....입었네."
경숙이 영신의 손을 그대로 잡은 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우린 경황도 없고....동생인데도 소복 입는건가.....것도 모르겠고.....
물어보기도 뭣하고....그냥 이대로야."
영신은 그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간호사가 필요할 거라면서 가져다 준 소복이었다.
결혼한 지 두 달만에 남편을 잃은 여자로 간호사들은 이미 영신의 존재를 눈에 익어하고 있었다. 마주오던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드는 순간,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뒷좌석 오른편에 앉아있던 장모를 죽는 순간까지도 보호하려 했었던 것 같다는 경찰의 설명도 보태져 수많은 죽음곁에서 서성이면서 다소 덤덤해진 간호사들도 많이들 가슴아파한다...소복을 가져다 준 간호사는 눈도 못 맞춘 상태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가시는 길....제대로 보내셔야죠......

유난히 작은 눈에 물기까지 머금으며 그 어려뵈는 간호사가 소복이 든 종이가방을 내밀때, 영신은 그저 '감사합니다' 했다.뭐가, 감사하다는 건지도 모르면서....그저 감사합니다 밖에 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 사람....가는 길....한번은 봐야....한번은 봐야할 것 같았어요......"
영신은 참았던 눈물을 주르르 쏟아붓고야 말았다.
경숙은 영신의 손을 놓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냈다.
"이봐, 아가씨. 물론 알지....알고도 남지.
그치만...그치만 이건 아가씰 위해서야. 지금 나타나면 무슨 꼴을 볼지 모른다구.
우리 엄마.... 지금 제정신 아니셔.
알잖아. 아가씨 보면 정말 무슨 사고내고 말거라구."
영신은 두손으로 경숙의 팔을 잡았다. 눈물이 거침없이 볼을 타고 흘려내렸다.

"...한 번만....한번만요....저....그 사람, 얼굴두....그 사람 마지막 얼굴도 못봤어요....못봤어요...."
그랬었다. 성국이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직후에 정신을 잃은 영신은 꽤 한참을 성국이 없는 현실속으로 돌아오길 거부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다행히 영신의 엄마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병원에 도착한 성국의 부모가 성국의 시신을 수습해 영신은 성국의 얼굴을 볼 수도 아직은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을 지도 모를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아가씨 마음도 알아....우리가 야속하겠지....
하지만 이젠....이젠 성국이를 엄마한테 보내줘요. 아가씨....
누가 더 아프고 누가 더 슬프고 가늠은 못하지만.....지금 우리 엄마, 당신 자식을 보내고 있는 거예요..."
"알아요....저같은 건....저같은 건 감히 드릴 말씀 없어요....그치만요....그저 한번만....성국씨 가는 길에 인사라도 하게 해주세요. 누님....인사만 할께요. 인사만...."
영신은 잡고 있던 경숙의 한쪽 팔에 얼굴을 묻고 급기야 흐느끼기 시작했다.
핏기없는 하얀얼굴, 퉁퉁 부은 두 눈과 바싹 말라 군데군데 핏기마저 서려있는 입술을 한 그아이는 경숙의 팔에 매달려 그렇게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었다.
이 아이....정말....죽을 것 같이 보여....성국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아.....
경숙은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뭐라도 드시게 할 참이었어요. 시어머니도 오셨다니까....밖으로 모시고 나올테니까 잠깐 들어가봐요.
오래는 안돼요....진짜 인사만 하세요...."
한참만에야 입을 연 경숙은 눈도 안 맞추고 그렇게 쏟아붓고는 영신의 손을 떼어내고 걸음을 옮겼다.
"누님!"
영신이 뒤에서 불러 세웠지만 경숙은 돌아보지 않았다.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솟구치는 이 눈물이 죽은 불쌍한 동생 성국을 위한 것인지, 남아있는 저 가엾은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정말 보이고 싶지는 않은 눈물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걸음을 사이에 두고 경숙은 우뚝 섰다. 뒤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조금만 고개를 틀어 말했다.
들려도 그뿐, 못 들어도 상관없었다.
"그 인사말이예요....성국이가...제일 듣고 싶어할 사람일 거 같아서...."
그리고서 경숙은 급히 영안실 안으로 사라졌다.

"뭐라고...불러야 하는 건지....성국이....맞나요?"
한시간은 족히 흘러간 것 같았다. 저녁햇살은 벌써 어둠을 내려 온 복도는 형광등 불빛으로 환해져 있었다.
영신은 창가에 등을 기대고 또 하염없이 복도 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문득 앞에 다가서는 발길을 느껴
고개를 들었다. 키가 좀 작고 마른 것만 빼고는 경숙의 얼굴과 아주 많이 닮아있는 여자였다.
"성국이....그 아가씨....맞아요?"
영신은 기대고 있던 등을 곧추세우고 똑바로 섰다.
"네..."
"성국이 셋째 누나예요. 언니가 들어오게 하라고 해서요...."
영신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금방 식당 사람들 동원해서 겨우 엄마, 아버지 나가셨어요.
그치만 몇 술 안뜨고 금방 오실거예요. "

영신은 경희의 뒤를 따라 영안실로 들어갔다.
몇개의 똑같이 생긴 방을 만들고 있는 칸막이들, 다른 사진들, 다른 사람들, 하지만 하얀 소복, 검은 옷.....
그리고 똑같은 울음소리들....
영신은 그 곳을 몇개 지나쳐 경희가 걸음을 멈춘 곳에 섰다.
경희는 성국의 사진쪽으로 시선을 한번 주고 영신을 또 한번 쳐다보았다.
"금방 오실 거예요. 아시죠?"
경희는 무슨 말을 더 붙일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냥 오던 길로 걸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나서 영신은 서서히 얼굴을 돌렸다.
마루를 올라가야 하는 아무도 없는 조그만 방에 성국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웃고 있었다. 성국은.
향내음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영신은 마루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성국에게로 다가들었다.
향을 집어들었다.
불을 피웠다.
향내음이 더욱 짙게 방안을 휘감았다.
영신은 두손을 이마에 모았다.
그리고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두번하고는 일어서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 절 한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영신은 고개를 들었다.
성국의 얼굴이 들어왔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성국은.

"성국씨....내가 왔어요....영신이가 왔어요.
너무 오랫동안....오랫동안 못봤어.....
어디 있어요? 당신....지금 어디쯤 있어요?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나 온 건 알 수 있나요?"
성국은 아무말 없었다. 그저 웃고만 있었다.
영신은 성국의 사진으로 손을 뻗었다.
닿지를 않았다. 무릎으로 기어갔다.
사진을 더듬었다.
눈....코....입.....
영신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정말...정말 죽...었어요?"
영신의 볼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은 기세로 흐르고 또 흐르고.....
그 눈물 사이로 그래도 영신은 성국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아련하게....어렴풋이, 그러다 다시 다가들고 또 아련하게 어렴풋이 멀어지듯 뿌옇게 영신은 그렇게라도 성국의 얼굴을 놓지 않고 있었다.

"누구...."
성국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바닥에 웅크러져 있던 영신은 멈칫 고개를 들었다.
"누구...."
형자와 두식은 그래도 누군지 영신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하얀 머리핀을 꽂았으니 상을 당한 여자라는 건 알겠지만 어째서 성국의 사진을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건지 대번에 알아챌 수가 없었다.
형자는 곁에 있던 경숙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린 경숙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화다닥 마루 위로 올라서더니 여자를 일으키려 애썼다.
"아직도 이러고 있음 어떡해....얘, 얜 어딜 간거야.....잘 좀 지켜보랬더니....."
"야....누구...? 누군데...."
경숙의 일으킴도 소용없이 영신은 주저앉은 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경숙을 향했던 형자의 얼굴은 서서히 영신을 향해 옮겨졌다. 그 얼굴에 파르르 경련이 일고 있었다.
"너....너....그럼....그...."

형자는 경숙이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신발을 벗지도 않고 올라서서 영신을 향해 달려들었다.영신의 머리를 묶어주고 있던 하얀 손수건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형자는 영신의 머리를 잡아 채었다.
영신의 얼굴이 하얗게 드러났다. 영신은 눈을 감고 있었다. 형자는 한 쪽 손으로 영신이 안고 있던 성국의 사진을 걷어냈다.
그 사이에 경숙은 영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형자의 손아귀를 풀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 엄마 이러지 마. 제발...."
"놔! 이 년....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은 년. 여기가 어디라고....감히 여기가 어디라고.오냐, 잘 왔다, 이 년."
형자는 영신의 머리채를 놓더니 여지없이 얼굴을 후려쳤다. 영신은 아무런 저항없이 이리저리 비틀대다가 결국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듯 쓰러졌다. 형자는 그런 영신에게 또 달려들었다.
경숙이 온몸으로 형자를 막아세웠다.
"엄마. 내가 얘기할께. 내가...그러니 그만 해요. 그만."
"비켜! 저 년이 죽으러 온 게야. 내 손에 죽으러 온 게야. 백여시 같은 년. 내 아들 죽인 년! 비켜어! 어디 너 죽고 나 죽어보자...."
경숙을 밀치며 한번 더 욱하고 힘을 주던 형자는 순간,갑자기 맥을 놓고 경숙에게 기대는 듯 하더니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 엄마아!"
경숙은 쓰러진 형자를 부추기며 두식을 쳐다보았다.
두식은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아부지! 빨리요. 누구, 누구 좀 와주세요....여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