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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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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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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회 ]


BY noma 2000-12-05

8
결혼식을 며칠앞둔 그녀는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민우의 외할머니였다.
전에 현수에게서 민우가 가끔 외할머니를 만난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전화를 받게될줄 몰라 그녀는 당황했고 만나고 싶다는 차가운 말투에 신경이 쓰였지만 어쩔수 없는 기분으로 약속장소로 나갔다.
만나기로 한 커피숍에서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진한 화장에 천박해보이는듯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앞에 앉는 중년의 여자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 나, 민우 외할머니요 ]
[ 네... 안녕하세요 ]
[ 시간 끌 것 없이 말하지요. 아가씨가 민우애비를 어떻게 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애비한테는 우리 유진이밖에 없어... 아직까지도 우리집에 끔찍한걸 보면 말야. 그리구 어떻게 아가씨가 남의 아이를 키울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지금이야 애비한테 잘보이려구 잘하는척 하겠지만 곧 달라지지 않겠어? ]
[ 저, 말씀이 지나치세요 ]
[ 아가씨한테 충고 하는데 그집안 아주 끔찍하지. 우리 딸애는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갔는데 이제 와서 아가씨가 다 차지할수 있을 것 같애.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는게 좋을꺼야 ]
[ ...더이상 말씀 들어드릴수 없을 것 같네요.... 안녕히 가세요 ]
그녀는 후둘거리는 두 다리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똑바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민우 외할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그녀를 고통스러운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오빠의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고  그녀가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시절 유독 현수앞에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자 오빠 친구들은 놀려댔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친구의 어린 여동생을 모두들 귀여워하고 오랫동안 봐와서 아무렇지 않게 사춘기소녀의 변덕과 버릇없는 말투로 오빠친구들을 대할때도 있었지만 현수앞에서만은 얌전한 고양이였다.
눈에 띄는 외모와 소설속 주인공처럼 무뚝뚝한 이미지 -그녀에겐 부드럽게 웃어주었지만-
어린소녀의 동경의 대상이 될만 했지만 점점 가슴아픈 짝사랑으로 자리잡아갔다.
어느정도 그녀가 짝사랑에서 발전할수 있을 자신감이 들 나이가 가까워 왔을 때 그녀는 절대 그럴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이 너무도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자신과 주위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걸 보았다.
한번의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얼마나 사랑하는 여인에게 빠져있었는지 오빠들을 통해서 간간히 들어왔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현수의 청혼을 받은후 전혀 과거의 그가 존재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순간의 행복에 취해있던 그녀는 그가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뿐이라는 말에 생각지도 않았던 얼굴 하나가 떠올라 가슴을 짓눌렀다.

 그동안의 활기 있고 의욕이 넘치게 준비해나가던 그녀는 결혼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민우 할머니와의 만남의 후유증에 시무룩한 기분이 되었지만 언니는 그저 결혼식의 긴장감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오빠의 냉담함에도 꺾이지 않던 기가 머릿속을 파고드는 한마디 말로 사그라들고 그녀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복잡한 심정 때문에 일찍 가게문을 닫고 들어와 쉬고 있던 그녀는 동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어색함이 점점 반가움으로 변해가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집 근처 카페로 나갔다.
어둡지 않은 조명에 적당히 세련된 장식의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동윤이 그녀를 바라보자 예전의 장난스런 미소는 없었지만 언제나처럼 그녀의 응석을 다 받아 줄 것 같은 아주 이기적인 그리움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 ... 준비는 다된거야? ]
[ 응... ] 다음에 할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두사람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 어떻게 지냈어? ]
[ ... 그냥 첫사랑의 상처로 좀 괴로웠지...]
[ 거짓말!... 내가 무슨 첫사랑이야? 오빠 전적은 내가 다 아는데 ]
[ 알고 있었어?...그래두 마음을 준 여자는 하나도 없었어 ]
동윤의 좀 억지스런 몸짓에 이제 예전의 기분이 좀 살아나는 듯 했다.
[ 오빠, 고마워... 난 오빠가 날 다신 보지 않을 줄 알았어... ]
[ 그럴려구 했어... 근데 어쩔수가 없네 ... 재원이가 둘도 없는 친구고... 다 잃을 순 없잖아?... 너 진짜 대단하다. 전부터 재원이가 너한테 못 당하는건 알았지만 이번엔 그녀석도 고집이 있어서 힘들었을텐데 ... ]
[ 그래두 오빤 날 항상 믿어 줬으니까.... 이번에도 그랬을꺼야 ]
갑자기 여전히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오빠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무거워졌다.
[ 재이야? ]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를 동윤이 깨웠다.
[ 으...응? ]
[ 잘하라구... 결혼식... 난 못갈 것 같애... 그때 세미나가 있어서 서울에 없거든 ]
[ 고마워... 나 잘 살게 ]
미안한 마음에 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결혼식은 화려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 끝이 났다.
민우의 외할머니를 만나고 난후의 찜찜했던 기분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식 동안엔 지울수 있어 다행이었다.
현수의 친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녀 오빠의 친구들이라 결혼식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볼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동윤 오빠까지도 축하해 주어서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
신혼여행은 짧은 일정으로 제주도로 정했고 그동안 민우는 형수님댁에서 지내기로 되었다.

힘든 하루였다.
식이 끝나고 오후 비행기로 도착한 제주도에서 그녀는 그동안 긴장한탓에 챙기지 못한 허기를 달래자 이제 피곤이 몰려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먼저 끝내고 나온 현수가 아직 잠옷도 갈아입지않고 가운만 걸친채
맥주를 마시다 욕실에서 나와 수줍은 듯 그를 보는 재이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다가오자 재이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사를 찾느라 머리를 굴렸지만 제대로 떠오르는게 없었다.
[ ...잠옷이 너무 야해 ... 언니가 첫날밤엔 이런걸 입어야 한다구 자꾸 넣는 바람에 ... ]
그녀는 겨우 가운안에 감춰진 너무 민망해서 입기를 몇 번이나 망설였던 잠옷얘기를 꺼내며
미소짓자 그도 따라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동안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모든 일들이 그의 따뜻한 키스로 사라져갔다.
그가 조심스레 가운끈을 풀고 그녀가 걸친 것을 모두 벗겨내는 동안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이제야 자신의 사랑을 차지한데 대해 무한한 행복감에 취해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
조심스럽고 그녀를 배려하는 손길이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색해나가기 시작했고 그에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하는 소심함에 미한함을 느끼며 그가 주는 황홀한 기분을 맛보았다.

[ 오빠... 자? ]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아무말이 없던 그가 옆으로 돌아누운채로 시간이 흐르자 그녀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 아니 ]
그의 목소리에 안심을 한 그녀는 그의 돌아 누운 팔사이로 그녀의 손을 밀어넣으며 그의 등뒤에 얼굴을 묻었다.
[ 사랑해 ]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 ... 예전에 작은 책자에서 읽었던 얘기가 있는데, 어떤 나이가 굉장히 많으신 할아버지가 한번도 거르지않고 할머니에게 자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주셨대.
젊은사람이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할아버지께 물었더니... 그래야 내가 다음날 눈을 뜨지 못하는 일이 생겨도 내 아내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되지않겠느냐는 거였어... 그때 너무 감동을 받아서 나도 꼭 그렇게 살거라 생각했어 ]
그가 돌아누우며 재이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 재이야... 미안해. 너한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게 고맙지만 또 그만큼 돌려줄수 없다는게 괴로워... 너한테 솔직할게... 너와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지만 아직까지 난 다시 사랑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선 모르겠어. 네가 원한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할수 있겠지만 난 너에게만은 그렇게 가식적으로 할 수가 없어... 너는 너무 순수해서 그렇게 했다간 나 자신을 용서할수 없을꺼야... 너를 좋아해. 네가 행복할수 있게 노력할게 ]
사랑을 줄수 없는데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니.
가슴이 아팠지만 그녀는 그에게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모든걸 바랄수는 없는거니까. 이제 그가 옆에 있는이상 천천히 해나가는거다. 그런데 그가 아직도 전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민우 외할머니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