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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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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noma 2000-11-11

8
[ 어떻게 된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가운은 당황하여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 웬일은? 너 하는 짓이 너무 괘씸해서 다신 안보려다가 며느리 궁금해서 내가 졌다. 근데 세상에 내 아들 너무 변했구나. ]
그의 어머니는 보통의 키에 약간 통통한 몸집의 나이가 들었어도 꽤 귀여운 인상을 간직하고 활발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중년부인의 모습이었다.
[ 어디 우리 며느리좀 안아 볼까? ...나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응큼한 놈인줄 몰랐다. 예전에 니 얘기 할때 아주 애긴줄 알았는데 이렇게 키워서 자기 마누라를 만들다니...] 따뜻한 포옹과 함께 들려온 얘기는 그녀를 당황시켰다. 나연이 그의 얼굴을 묻는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 근데, 너무했다. 가운인 전화 한통 해서 결혼하니까 그런줄 아시라고 하고 너는 인사도 한번 안하고 , 혹시 저놈이 내가 있다는 얘기도 안한거 아니니? ]
[ 죄송해요 ] 그녀가 어쩔줄 몰라 하자 그의 어머니는 관대한 웃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셨다.


[ 나는 정말 딸이 갖고 싶었다. ]
너무도 갑작스러워 세사람은 간단히 저녁을 한다음 차를 들기 위해 거실로 모여 앉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옆에 앉힌후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었니? 나한테 왔었으면 조금 덜 화가 났을텐데...]
[ 어머니 집에 갔었어요 ] 가운의 대답이었다.
[ 어머, 어지간히 널 독점하고 싶었나부다. 하하하, 둘이 지내기에 거기만한데가 없지. ]
[ 너무 예쁜 집이었어요. ] 그녀가 쑥스러운 듯 말하자 가운이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 그렇지? 그집 짓는데 아마 십년은 걸렸을꺼야. 가운 아빠랑 땅은 싸게 샀는데 집지을 돈이 있어야지, 그래서 그림 팔아서 돈생길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지어 나갔지. 가운이가 중학교 들어갔을때쯤 다 지었을걸 ]
그녀의 어머니가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놀랐지만 그녀는 내색 할 수가 없었다.
나연은 그의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그 포근함에 그녀를 좋아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가운의 아버지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화가였다는걸 알았다.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십년전에 재혼해서 파리로 가서 활동중인것도.
어머니의 재혼에 그는 별 불만은 없는 듯 했다.
그의 부모님은 굉장히 따뜻한 분들인 것 같았는데 그는 왜 저렇게 차가운걸까? 하긴 몇 년 전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변한 이유는 뭘까.
[ 이제 들어가서 좀 쉬어야겠다. 비행기에서 많이 자서 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나 때문에 너희들까지 못 자게 할 수는 없지. ]
어머니가 일어 서며 그녀가 쓰는 방으로 향하려 하자 나연은 기겁을 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말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잠시후 그가 그녀의 잠옷과 옷 몇가지를 들고 나와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게했다.
[ 어머니한테는 며칠전에 싸워서 당신이 짐싸들고 그방으로 갔다고 그랬어, 아마 내일은 짐 좀 옮겨놔야 될거야. ]
그녀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아무말이 없자 그의 눈에 잠시 우울한 표정이 서렸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 난 좀 할 일이 있어. 당신 먼저 자]
그가 나가버리자 그녀는 침대위에 걸터앉아 그가 베고 자는 베개를 허전한 마음으로 쓰다듬었다.
몇시쯤 되었을까,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그녀는 등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한쪽 가슴을 누르는 묵직한 손길에 눈을 뜨자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에게 놀라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녀가 조심스레 그의 팔에서 빠져 나오려 몸을 뒤척이는 순간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이제는 세차게 그의 팔을 뿌리치려 하자 그가 그녀위로 올라와 팔꿈치로 그녀의 어깨를 가두었다.
[ ...제발, 더 이상 못참겠어. ]그의 애절한 눈빛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끌어 안았다. 달콤하고 그녀를 애끓게 하는 키스가 이어졌다.
그가 주는 육체적인 친밀감에 그녀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유혹적인 색다른 세계를 경험했지만 또다른 상처가 그녀를 기다리리라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뜬 그녀는 벌써 아홉시가 훨씬 넘어 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옷을 갈아 입었다 . 그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대충 씻고 거실로 나가자 어머니는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계셨다.
그녀가 어쩔줄몰라하며 다가가자 어제와 같이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반겼다.
[ 가운이가 너는 아침에 잘 못 일어난다며 그냥 놔두라 그러더라. ...너 우리아들 너무 꽉 잡고 사는거 아니니? 너한테 아주 절절 매는거같애. 걔 고집이 보통이 아닌데. 키우면서 얼마나 힘든일이 많았는지... 그래도 그런 성격이 지 아빠 돌아가시고 나니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너무빨리 어른이 된거 같아 서운하긴 하지만 엄마가 너무 철부지라서 어쩔수가 없었어. 우리 아들 진짜 착하다 ]
어머니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듣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곤 그녀의 아버지가 너무도 보고싶은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그녀의 엄마까지도 그리웠다.

그의 어머니는 겪으면 겪을수록 따뜻하고 사랑스런 분이셨다. 어느 장소에서든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놀라웠고 오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그렇게 발랄하고 귀여운 면을 가질수 있다는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어머니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 집안 분위기와 그와의 삶까지도.
비록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장되고 일시적인 생활일지라도 그녀는 이시간이 소중하고 놓치기 싫은 순간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와 그리움이 자리잡아도 그가 원하는 것이 그녀의 육체뿐이더라도 그를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언제나 아침에 눈을 뜨면 그의 품에서 아침을 맞는게 마지막이 아닐까하는 서러움에 목이 메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짧게 느껴진 보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오늘 파리로 떠나셨다.
짧은 시간동안 엄마품에서 사랑받고 행복을 느낄수 있게 해주신 분이 떠난다고 했을 때 나연은 서운하고 슬픈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그녀를 달래다가 결국 그녀를 공항에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는 씩씩한 모습으로 떠나셨다.
그는 오늘 늦는다고 했다. 나연은 하루종일 기운이 없고 침울한 기분에 일찍 잠자리에 들려다가 이제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듯한 그의 침실을 서러운 눈으로 둘러보고는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녀는 그가 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일어날수가 없었다. 그의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또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긴장하고 있을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그녀가 침대 위에서 고개를 들자 그의 화가나서 굳어진 얼굴이 들어왔다.
[ 뭐하는 거야? ] 화를 억누르려는 듯 경직된 목소리였다.
[ ...그냥, 이제는 이렇게...]
[참, 사람 마음이 편리하게 잘도 왔다갔다하는군. 어제까지도 내품에서 그렇게 즐거워하더니 하루도 안돼서 다시 얼음으로 돌아왔어. 대단한 여자야, 당신은 ] 그의 비아냥거림에 그녀는 감정이 폭발했다.
[ 그야, 당신이 워낙 경험이 많으니까 여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많이 알아서 그랬겠죠. ]똑같은 방법으로 그를 비웃으려던 그녀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 도대체 날 뭘로 보는거야, 그래도 하나는 인정을 하는군 당신도 즐겼다는걸...]
그가 그녀를 안아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