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나기(4)
"언니 어느 댁 사모님과 함께 오신 적이 있던가요?"
낯설은 나를 ?어보며 청담동의 한 유명 부틱의 종업원은 내게
그렇게 물었다.
"수아 엄마 아시죠?"
"어머, 그 사모님이랑 어떻게?"
"친구예요. 여기 가보라고 해서요."
그러자 그녀는 대번에 호들갑스럽게 굴었다.
언젠가 차를 얻어 타고 지나가다가 자기가 저 옷가게 단골이라
고 수아 엄마가 내게 일러줬던 기억이 났을 뿐이었다. 그럴듯한
내 사기에 종업원은 깜박 넘어가 주었다.
"어머, 그럼 전화를 주고 오시지요, 죄송해요. 가끔 구경이나 한
다고 뜨내기손님들이 와 놔서는. 아시지요? 저희는 다 소개로만
하잖아요. 그런데 언니는 어디서 주로 옷을 구입하셨는데요? 저
희 집 처음 이시지요?"
"전 남산 쪽에 주로 갔었는데, 이쪽은 번잡해서 잘 안나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천천히 골라 보세요.."
나는 매일같이 김밥이나 컵 라면, 떡복이를 먹으며 아껴 두었
던 돈을 털어 내, 꿈에도 입어 보고 싶지 않았던 고급 옷을 한
벌 장만했다.
어차피 다시 한 몫에 털어 그의 어머니의 그 비싼 연극을 위해
털어 넣을 것이었으므로, 그동안 수고한 내게 그 정도의 보답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위해서도 나는 옷
을 골랐다. 내가 적잖은 돈을 번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래
도 언제나 알뜰하게 저축하는 것으로 알고 용돈 한번 제대로 드
리지 않아도 아무 내색 없으셨던 분들이었다.
나는 내 피붙이에게조차 그렇게 했었다.
돈을 물 쓰듯 쓴다는 게 어떤 건지 적잖이 느끼고 싶었다. 하지
만 그러기에는 적은 돈일 뿐이었다. 나는 새로 장만한 옷을 갈아
입고 수아의 집으로 가야했다. 아직 받지 못한 돈도 있었고, 수
아의 아버지 그러니까 어느 준재벌이라는 그 애의 아버지가 나
를 보자고 한다고 볼멘 소리로 전하는 수아엄마의 전화를 거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김 선생님. 어서 오세요."
들어서자 마자 수아의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그 회
장은 나를 향해 절하듯이 맞아들였다. 뜻밖이었다. 나는 갑자기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엉거주춤 서 있었다.
"저번에 대단한 결례를 했다면서요, 수아 에미가."
"아닙니다. 제 잘못이지요. 제가 능력이 없어서, 사양한 것입니
다."
"'아닙니다. 수아가 얼마나 울고 얼마나 섭섭해 하셨는지 아십
니까?"
그랬던가, 나는 수아를 진심으로 대한 적이 별로 없던 거 같아
약간 찔렸다. 수아의 엄마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간단하게 목례
만 했을 뿐 일체 대화에 끼여들지 않았다. 묵묵히 과일을 깎아
내오고 찻잔을 나르고는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우리 수아가 본가로, 그러니까 성북동으로 옮겨가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어린것이 혼자 너무 쓸쓸할 거 같아서 선생님
이 계속 드나드시면서 좀 봐주실 수 있는지, 그러면 수아도 좀
안정이 될 테고 이 사람, 수아에미도 선생님을 통해서 수아 소식
도 전해들을 수 있기 쉽겠고 해서, 부탁드리려고 이렇게 오시라
고 했습니다."
"저, 저는.."
밀린 과외비나 받으려고 들렸던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전 주로 압구정동에서 일하는데 너무 멀어서요. 그렇게 까지
할 시간이..."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성적이나 그런 걸로 선생님께 부담
드리지 않겠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유학 보낼 테고, 본가 집
사람 비서 역할도 좀 하시고 그러면 어떨까요? 여기 압구정동
일 접으셔도 될 텐데요. 물론 보수야 섭섭치않게 해 드리지요."
"제가 맡은 아이들 입시는 끝내야 하겠지요. 그리고 좀 생각
해 봐야 하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손녀뻘 되는 내게 증손녀 뻘 되는 딸을 부탁하는 그 노회장의 기
름진 얼굴이 왜 그렇게 보기 싫던지. 어디 밖에서 보았다면 나
는 그를 중견 기업인으로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 볼 수도 있었
을 텐데..
수아 엄마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이 없었다.
"자네 섭섭한가? 자주 불러다 보면 되지."
손녀뻘 되기는 수아 엄마도 마찬가지였는데 귀엽다는 듯이 바라
보는 그 노 회장의 눈길이 나는 구역질 나도록 싫었다.
"네, 알겠어요. 선생님 부탁 좀 드려요."
뾰로통한 얼굴로 그녀는 아이처럼 말했다.
"생각해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그 달치 보다는 곱절은 많은 봉투
를 받아들고 그 집을 나왔다.
부자들이라고 다 저렇게 사는 거야 아니겠지. 이 압구정동에서
도 그렇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꺼야.. 내가
다 몰라서 그렇지..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다. 시쳇말로 이 바닥에서 한 번 줄을 놓
치면 다시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 였다. 어쩌면 나한테는 득이
될 수도 있었다. 준 재벌이라고는 해도 그 집 사모님의 비서 역
할이나 머리 빈 아이의 놀이 상대쯤 되어주는 것이 얼마나 편안
한 일거리인가..
하지만 나는 태진을 떠나면서 이 일들을 마무리 지으려 생각하
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의 그늘아래서 살수는 없었다. 나는 온
전히 태양 아래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같은 태양
이 비추는 빛이라도 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내 온 몸으
로 따스함을 느끼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태진의 어머니를 위한 그 한바탕의 굿을 위해 들어갈 소모품도
준비가 만만치가 않았다. 조상님 대로의 옷가지와 몇 가지 준비
물이 더 필요했다. 돼지도 통째로 잡아야 한다고 했고, 아무튼
그 작은 시골 동네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라고 했다. 태진은
마지못한 척 태희를 따라 내려갔고 나는 통장만을 아무 말 없이
내밀었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이해해줘서 고마워."
"잘 다녀와요. 이걸루 어머니가 낳으셨으면 정말 좋겠어."
믿지는 않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빌었다.
윤수네 아버지와 큰오빠부부, 영수씨 까지도 북채를 잡으러 다
같이 내려가 버리고, 나는 며칠간 윤수를 맡아 두기로 했다. 윤
수는 설레이면서 내 오피스텔로 왔다.
"선생님 이런데서 살아요?"
"응. 왜?"
"성냥갑 같아서요."
"성냥?"
"네, 초 켤 때 쓰는 성냥이요."
나는 아직도 그런 걸 쓰던가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윤수네 집
에 있는 물건들은 아직도 그렇게 예전의 것들이 많았다.
"윤수야, 선생님 집에 오니까 좋니?"
"네."
"선생님이 일 나가는 저녁시간이 되면 혼자 놀 수 있겠니?"
"그럼요. 저는 혼자서 잘 놀아요. 책도 읽고, 텔레비도 보고, 라
디오도 듣고요."
"윤수는 참 착하구나.."
어린아이답게 윤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뒹굴며 즐거워했다. 나
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로 들어온 아이들의 숙제를 검사하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던 윤수의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 등뒤로 전해왔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윤수는 이상스런 소리로 키득거렸다.
"왜 그러니?"
온 몸에서 일시에 소름이 돋아나는 괴상한 금속성 음이었는데,
윤수의 얼굴을 바로 보기가 차마 무서워서 나는 반쯤 눈길을 피
한 채 그렇게 물었다.
"크크크크, 고맙다, 고마워!"
"윤수야!"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안으려고 했다.
윤수는 저만치로 달아나는 시늉을 하며 계속 그렇게 웃어댔다.
"나가! 나가라구! 제발 떨어져 나가!"
나는 윤수의 작은 어깨를 잡아 흔들어댔다. 나도 같이 미쳐 가
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무섬증이 일었다.
나는 윤수의 얼굴에 어리는 다른 얼굴을 보았다. 그 웃음을 짓
는 얼굴은 윤수의 얼굴이 아님에 틀림없었다. 얼이 빠질 지경이
었지만 나는 그렇게 웃음소리에 맞서 소리를 질러댔다.
어느 순간 윤수는 그 웃음소리를 멈추었고 돌아앉아 눈물을 뚝
뚝 떨구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윤수에게 다가가 그 애
를 꼭 안았다. 그리고 계속 중얼거렸다.
" 괜찮아, 괜찮아, 마음만 강하다면 절대로 휘둘리지 않아. 절대
로!"
그 후로 이틀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 주었다. 윤수는 이상하게
잠만 잤지만, 기운이 없는 것 빼고는 대체로 멀쩡해 보였다. 그
리고 일을 끝내고 돌아온 윤수의 아버지는 성공리에 일을 마쳤다
면서 공치사하기에 바빴다. 어머니는 편안해 지셨으며 그 사이
다른 무당들이 몇 번씩 까무라 치는 걸 혼자 다 막아냈다면서,
동네 사람들이 며느리 잘 본다고 추켜세워 주더라고 까지 말해주
었다.
"선생님 그런 생각하시죠?"
아버지가 한 바탕 굿 이야기를 끝낸 뒤에 윤수의 말없는 큰오빠
부부는 돌아가 버리고,영수는 커피를 한 잔 타 가지고 건너와 내
게 싱글거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이요?"
"그러면서 너는 네 딸 하나 건져내지 못하는 구나, 그런 생각이
요?"
나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이해하려고 한다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 라서요.."
"선생님은 절대로 휘둘리지 않는다고 자신하시나요?"
"네, 전 안 믿으니까요."
"그런데 왜 돈을 대신 건가요?"
"간단하지요. 그들이 믿으니까요."
알 듯 모를 듯 웃으며 영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가버렸
다.
그후로 잠시동안,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 했다. 겉으
로는 아무 런 일없이. 태진은 시험준비에 전념했으며 나는 여전
히 압구정동 언저리를 헤메고 다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결국 윤수에게 뜻밖에 사고가 찾아왔다. 윤수
가 어느 날 부턴가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설
명해야 할 것인가.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병원에서는 기능
적인 이상은 없다고 말했고, 기어이 윤수는 내림굿을 받고 신당
을 차려 무녀가 되었다.
나는 그 날, 어느 산에서 윤수의 내림굿을 한다는 걸 알았지만
말리러 갈 수도, 가지도 못했다. 내가 어쩌지 못할 일이었다. 그
리고 저녁 무렵, 그래서 결국 그 애가 걸을 수 있는 것인지 확인
하러 그 집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소복을 입은 윤수가 새로 차
린 신당 한켠에 앉아 울고 있는 장면을 보고 나는 그아이 아버지
에게 물었다.
"그래서, 윤수는 걸어 돌와 왔나요?"
윤수도 울고 그의 식구들 모두가 울었다. 나만은 울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받아들이려면 울지나 말 것이지. 나
는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윤수가 걷게 되면 도망이라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신은 그
아이에게 앉아 있을 것을 명했다고 한다. 나 때문이라는 것처
럼, 걸을 수도 있었던 아이를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윤수의 아버
지는 나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그 아이
의 곁을 떠나올 수가 없었다.
윤수는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할아버지가 그래도 공부는 하랬어요..."
처음 신발이 내린 무녀는 잘 맞춘다는 소문이 도는 때문인지 신
기함 때문인지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아 한동안 나는 윤수
의 공부를 돌봐 줄 수가 없었다. 태진의 시험이 끝나는 때까지라
도 나는 그 애를 돌봐주고 싶었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
다. 저녁 무렵이면 그 애를 찾아왔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윤수는 혼절할 만큼 기진맥진하여 맥없이 누워버리곤 했다.
윤수의 아버지는 딸아이의 옆에 하루 종일 붙어 앉아 그애가 일
러주는 말들을 손님들에게 풀이해주고 있느라 바쁘다고 했다. 아
직 어린아이라 신이 일러주는 대로만 말하기에 해석이 불가능한
말은 아버지가 대신 해 준다고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그들의 믿음에서 나온다고 믿기 시작했다. 자
신이 믿는 대로 결국은 운명조차도 만들어져 가는 게 아닐까...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윤수 조차도 자신의 운명이 그 길로 가
게 되어있다고 믿고 있기에 아무도 바꿔 줄 수 없는 것인지도 몰
랐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그
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생을 책임지는 것은 자신뿐이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돌아서서 후회하게 된다고 한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면 미련조차도 끌어안아야만 한다고 나는 믿기 시작했다.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윤수네 집에서 그 어린것에게 점을
쳐 달라고 들러붙어 앉아, 반말로 찍찍 내 뱉는 말에도 쩔쩔매
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웃어버리고 싶었다. 인생
을 살아도 한참 더 살았을 저들은 도대체 무얼 알고 싶어서 저렇
게도 어린 아이 에게까지 매달리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자신
이 모르는 것은 신조차 절대로 알 수 없다든 것이었다. 지나간
일을 맞추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풍기는 인상만으로도 짐작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남겨진 미래는 자신의 몫일 뿐이라
는 걸 왜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
태진의 식구들도 그러했다.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아졌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여전히 이런 저런 이유를 달아 약을 끊지 못하는 데도 자신이 병
은 씻은 듯이 나아졌다고 믿었다. 그럼 된 것이 아닌가. 그럼
다 된 것이었다. 다만 나는 이제 그가 시험을 치루고 떠나야 할
날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