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스물 셋].... 절망
세희는 병원에 보름간 입원하고 퇴원했다. 친정 집에서 알게 되고
시끄러워지자 출장을 핑계로 단 한번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은 남편
이였다. 물론 전화도 없었다.
세희는 퇴원 후 승빈이 염려했던 우울증에 쌓여 있었다. 세희는 자
기만의 세상에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온 세상이 어둡기만 했다.
오른쪽을 보아도 왼쪽을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모두 암흑 같이 어둡
기만 했다.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텔레비
젼 방송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정민이 정훈이의 맑은 얼굴
과 웃음소리마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세희의 눈은 떠 있고 동공은 움직여도 느낌이 없었다. 가족들을
바라보거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에 맺혀 있는지 감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아주
필요한 말 몇 마디 외에는 함구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씩 움직임은 있었다. 길들여지고 습관이 되어버린 생활. 언제나
같은 시간에 소리 없이 일어나 인형 같은 움직임으로 밥을 하고, 상을
차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가족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때 되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그러나 남편이나 정민이, 정훈이가
느끼는 아내나 엄마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아주 많이.
남편은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세희의 모습에 긴장하고 있었다. 무
엇인가 잘못 되가고 있다는 느낌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는 않았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그리
곤 이내 무신경해지곤 했다.
세희는 요즘 거실 창가에만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워 끓어 안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계속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앉아만 있었다. 말도
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가 와서 시끄럽게 벨이 울려도 받지 않았다. 아이들이
엄마를 흔들며 전화가 왔다고 말을 해주면 받으려 움직이곤 했는데,
그럼 전화가 혼자서 울다 지쳐 끊어지곤 했다. 한동안 엄마를 못 봤
던 정훈이가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울며 때를 써도 세희의 움직임
은 없었다.
그리고 세희는 가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울고 있었다. 또
음식물을 자신의 입안에 담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뭔가 달라진
엄마를 보던 정민이는 겁이 났다. "엄마가 갑자기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는 것일까? 엄마가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할머니...... 엄마가 이상해요. 엄마가 아픈가봐요."
"왜 그러니 정민아? 엄마가 어디가 아퍼?"
"할머니...... 엄마가 이상해요."
친정 어머니가 세희를 보았을 때. 정민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전화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희의 모습에 소름이 돗
을 정도였다. 자신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창백한 얼굴을
한 세희가 거실 창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세희야? 정민 애미야? 얘가 왜 이러나?"
"오셨어요....?"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을 깨우듯이 흔들자, 시선을 돌려 어머니에게
한마디 내놓고 세희는 어린아이처럼 엄마 품에 쓰러지듯이 안겼다.
엄마 품이 포근하고 따뜻하다고 느꼈다. 아주 오래 전에 잊었던 포근
함 이였다. 또르르 맑은 눈물이 한줄기 떨어지더니. 어디에 그렇게 쌓
여 있던 눈물 이였을까? 몸 안에 있는 모든 수분이 눈물로 변한 듯이
하염없이 흘렀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세상에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세상에....."
세희의 여린 등을 주름진 손으로 쓸어 내리며 어머니는 뜨거운 눈
물을 흘리셨고,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 아이들 까지 덩달아 우는 바람
에 마치 초상집처럼 변해 있었다.
안방이 아닌 작은 방에 요를 깔고 누워있는 딸을 위해 죽을 쑤면서
어머니는 내내 굵은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집에 들어서며 처음에 본
세희의 모습을 생각하면 당장에 집으로 데려 가고 싶었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은 사위를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쌓아 놓은 감정대로 야단을 치든 어찌 되었든 살아보라고
타이르든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세희는 천장의 벽지 무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끝이 없이 반
복되는 무늬들. 그 안에 독백 같은 질문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왜 사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왜 사는 걸까?" 답이 없었다.
질문은 이어지는데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답은 벌써 나와 있는
지도 몰랐다. 세희가 느끼지 못할 뿐.
어둠이 내려앉아도 세희의 작은 방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엄마
가 궁금해 몇 번 방문을 열어보던 아이들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방문을 다시 닫곤 했다.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놀라 들고가던 상이 어머니의 손에서 미끌어
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세희가 누워 있는 방으로 정신없이 달려들
어갔을 때, 세희는 온 몸이 땀에 젖어 두 팔을 휘젓고 있었다.
"세희야! 세희야 왜 그러니? 얘야?"
"엄마.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천장이 내려와요. 나를 누르려 해
요. 엄마 나를 누르려 해요. 천장이 내려와요. 엄마.. 나 좀 살려주세
요."
"세희야. 세희야. 정신 차려라.. 세희야. 괜찮다. 괜찮아. 엄마다.
정신 차려라. 세희야.....!"
어둠 속에서 퀭한 눈을 한 세희가 엄마를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떨
고 있었다. 문 앞에서 두 아이들이 놀라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민아. 엄마 물 좀 갖다 주겠니? 세희야. 괜찮다. 꿈을 꾸었나 보
다. 괜찮다."
병원에서 퇴원시킬 때 집으로 데리고 갔어야 했다고 어머니는 후회
하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제정신이 아닌 듯이 병원에 단걸음에 달려
와 누워있는 세희를 보고 놀랬던 생각을 하면 어머니는 지금도 다리
가 후들거렸다. 인간 같지도 않은 사위가 정말로 옆에 있었으면 세희
의 상태보다 더 심 하도록 패주고 싶었었다. 괘씸하고 화가 났었다.
용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아이들을
봐서라도 살아야지 어쩌겠나 싶어서 친정으로 가자고 끌지 못했었던
자신의 판단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괜찮다는 세희의 말을 믿었
다. 아니 믿고 싶은 마음이었다.
"할머니. 내가 의사선생님한테 전화할까요?"
"무슨 의사선생님? 네가 의사선생님을 어떻게 알어?"
"아니.. 있잖아요. 지난번에 나 아플 때 와주셨던 의사선생님 있어
요. 저기 큰길에 있는 병원 선생님 말예요."
"아니야. 괜찮다. 엄마 이제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는 이제 강한 모성으로 제 자식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위를 만나 이야기를 해볼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 아이
들과 세희를 끌고 나온 현관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으면서 "다시는
이 집으로 들여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그런 기운
이 나는 걸까? 칠순의 노인이 기운 없이 늘어지는 세희를 부축하고
짐 가방들을 챙겨들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길거리로 나섰다.
겨울을 준비하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커다란 낙엽이 이리저리 뒹
굴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승빈은 세희가 입원한 병원에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었다. 직접 병문안을 가고 싶었지만 세희의 입장에서 볼 때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전화를 택했었다. 그리고 몇
번의 꽃 배달로 위로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퇴원했음을 알
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었다.
퇴원 전날 통화할 때 세희는 괜찮다고 많이 좋아졌다고 했었다. 하
지만 승빈이 병원에서 본 세희의 모습을 생각하면 후유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라고 권
했었지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뒤따랐었다.
승빈은 책상 서랍을 열어 얇은 서류철을 꺼냈다. 초록색 겉장위에
손을 올려놓고 한참을 내려보다 담배를 태웠다. 승빈이 세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모아둔 진단서들이지만 세희가 이 서류들을 사용하
게 될지 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