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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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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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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BY 낙서쟁이 2000-12-11

이야기 [스물]..... 가평 그리고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요?"
"네. 그런데.. 저.. 부모님께서 불편해 하시지 않을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늘 손님과 함께 간다고 미리 전화 드렸습니
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깊어 가는 가을을 느끼려 움직이는 차량의 행렬들이 제법 많았다.
멀리 또는 가까이 스쳐 지나가는 산에는 이미 곱디고운 단풍이 흠뻑
내려앉아 있었다.

동창회가 있다고 조심조심 말문을 열었을 때. 그 동안 조용히 지내
온 보상이라도 받듯이 쉽게 다녀오라는 말이 나왔다. 애들을 남편에
게 맞기고 혼자 나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아 아침 일찍 친정에
맡겨 놓고 나선 길이였다.

돌아 나오는 길에 바라본 친정어머니의 눈빛에 안타깝고 아쉬운 여
운이 가득 담겨 있는 듯 했다. 늘 부모님께는 죄송스럽기만 한 세희
였다. 그래도 웃음을 보여드렸는데. 억지로 지어 낸 듯한 엷은 웃음
위에 그늘이 가득한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마냥 안쓰럽기만 했다.

가평은 너무 평화로웠다.

차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 나오시는 부모님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어서 오라며 손을 잡아 주셨다.

"아이고 오느라고 힘들지 않았어요? 아범아 막히진 않았니?"
"네. 괜찮았어요."

통나무와 토담으로 만든 아담한집을, 그림 동화에 나오는 듯한 뾰족
뾰족한 하얀색 울타리가 감싸고 있었다. 울안에는 커다란 감나무에
서 하늘 가까이 남겨놓은 까치 밥이 햇빛을 받아 투명한 주홍색을
반짝이고, 툇마루 한켠에는 늙은 호박이 자리잡아 쉬고 있었다.

"손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 하실지 모르겠네요. 우리네 먹는 대로
수저 한 벌만 더 놓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상에는 맛깔스럽게 보이는 음식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세희로서는 낯선 방문과 낯선 자리였지만 두분의 넘치는 환
한 미소 때문에 편안한 자리였다. 식사를 하는 내내 승빈이나 부모
님 모두 잠깐 잠깐 세희의 안색을 살피며 불편함을 덜어 주려함이
보였다.

세희가 식사 후 자신의 행동에 조심스러워 하고 있을 때 승빈의 어
머님이 먼저 세희에게 말을 건넸다. 편안하게 해주려는 배려에서 나
온 말임을 세희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과일 준비 좀 도와줄레요?"
"아니요. 제가 설거지를 할께요."
"아니에요. 내 살림살이라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것이 수월해요. 과일
과 차를 준비해 주세요."

지난해에 만들어 놓았다는 모과차가 잘 삭아서 맛과 향이 잘 어우
러졌다.

"모과차가 참 맛있어요. 이 감은 마당 나무에서 따신 건가요?"
"그래요. 저 윗방 시렁에 올려 두었더니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 보
다 맛이 괜찮아요."
"네. 맛있어요."
"많이 먹어요."

따뜻함 그대로 였다. 승빈을 따라 집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어
머님이 손짓으로 부르셨다. 소리내어 부르실 수도 있으련만. 시선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저 손으로 부르셨다.

"정민이 엄마라고 했죠?"
"네."
"이거 돌아가는 길에 잊지 말고 가지고 가요. 별거 아니에요. 아까
그 모과차 맛있게 먹어주어 고마워서 좀 덜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시골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조금 넣었어요."
"너무 좋은 선물이라 거절을 못하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렇게 받아주니 내가 고맙네요."

고향집 할머니 같았다. 그 안에는 어릴 때 늘 보듬어주시던 어머니
의 얼굴도 보이며, 정과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민이 엄마."
"네."
"언제든지 와요. 이제 길을 알았으니 혼자라도 오고. 평일에는 차가
안 막히니까 애들 방학하면 함께 데리고도 오고, 힘들 때나, 우울할
때나,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말고 언제든지 와요."
"감사합니다."
"내 딸을 보는 듯 해요."

포개어 잡은 손에 힘을 주시며, 어머님이 잠시 먼 산에 시선을 옮
겨 놓고 있었다.

"힘들어도..... 잘....... 살아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날은 이
리로 전화를 해요. 절대로 나쁜 생각일랑은 갖지 말아요...."

세월을 격은 따뜻한 손등에 세희는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고, 어머
님은 말없이 등만 쓸어 주었다. 세희의 떨구어진 어깨너머 승빈이 짐
짓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하얀 울타리를 등지고 서서 두분이 또 오라는 말
만 거듭 하셨다.

"저 혹시 [아침고요 원예 수목원]이라고 아세요?"
"아니요. 이름이 참 예쁘네요."
"네. 그렇죠? 가까이 있는데 들려 가실레요?"
"네. 그러세요."
"봄에 오면 참 좋은데, 지금은 운 좋으면 난꽃을 볼 수 있을지 모
르겠군요."

늦은 오후였지만 이름처럼 수목원은 고요했다.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개인의 정원 같았다. 시가 적혀 있는 침엽수 정원을 산책하듯이
나란히 걸었다. 고요함과 평안함. 바로 그것이였다.

풀밭같은 야생화 꽃길을 지나 조용한 산책을 즐겼다. 아름다움이
이런 것일까?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기울어져가는 햇살 한자락 어깨
에 받으며 눈에 어린 웃음과 입가에 흐르는 미소와 함께 자연을 느끼
는 시간. 그 순간 작은 미물들까지 사랑해야 할 것 같은 시간.

승빈이 처음으로 보는 세희의 맑고, 환한 얼굴 또한 아름다웠다. 찻
집에는 들리지 않았다. 계곡물가에 앉아 손을 담그어 겨울을 준비하
는 투명한 차가움을 느끼고 돌아나왔다.

세희는 우물 안 개구리가 어느 날 우물 밖 세상을 본 듯한 느낌이
였다. 다시 우물 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싫었다. 시계바늘에 매달려
있는 시간은 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세희를 밀고 있지만. 그 싸늘하고
희망이 없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자신의 짧은 인생 중 약 1/3
을 암흑에서 보낸 시간들. 그 시간 속에 합류해야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저.... 술 한잔하면 안될까요?"
"저야 괜찮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러고 싶어요. 이왕이면 좀 시끄러운 곳에서요."
"시끄러운 곳이요?"
"네. 너무 조용한 곳은 상념에 빠지게 할 것 같아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시끄러운 곳이면 좋겠어요."
"시끄러운 곳이라..... 갑자기 생각나는 곳이 없지만 일단 찾아 가보
죠. 괜찮으세요?"
"네."

B1, B2, ... 차가 회전할 때 벽면에 커다랗게 써있는 글자와 화살표
를 따라 차가 계속 땅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세희는 쉬지 않고 계
속 내려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간 지하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 가 찾아 들어 간 곳은 실
내의 홀은 어둡지만 무대의 조명이 밝게 비추고 있는 째즈바였다.

무대에서는 몇몇 악기들의 연주에 맞춰서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탁한 목소리 같기도 하고 허스키 같기도 한 목소리의 여자가
열창을 하고 있었다. 세희는 처음 와보는 째즈바의 분위기가 좋았다.

"술... 모로 할까요?"
"칵테일 되나요? 전 마티니를 한잔하고 싶은데요."

테이블 위에 놓여진 세희의 손가락이 음악에 따라 장단을 맞추고
있었고 테이블 아래에선 왼쪽 다리 위에 포개진 오른쪽 다리의 구두
가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간간이 노래와 음악들이 끝나는 시점과 시작되는 시점에서 조용해
질뿐 내내 홀을 가득 메우는 째즈의 선율이 넘치고 있었다.

세희의 마티니가 몇 잔 추가되고, 이어 맥주까지 비어 가고 있었다.
세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아 녹이 슨 나사못이 어느 날 운 좋게 십자
드라이버를 만나 시원스럽게 풀려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기분 좋은 세희와 달리 마주 앉은 승빈은 세희의 늦어지는
귀가가 염려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