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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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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BY 장미정 2000-09-20

=== 고리 ===


그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 되었고,
우린 그 후, 잦은 통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
그런 연인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유머와 재치, 섹스를 함께 즐길 망정
절대 마음은 주지 말아야 하는 존재라고
누가 말했든가..........
정말 가능한 일인가.........

친구와 통화 속 수다에서 난 헤갈림을 얻기는 일수다.
이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가 옳고 그름을 두고
난 방황하듯 깊은 딜리마에 빠진다.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 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만
하루도 못보고 넘어가면 그리움에
내 가슴은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타 버립니다.
그래서 그냥 넘기지 못하고
그녀를 보아야 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나는 밤을 하얗게 새우지 않는답니다.
가까이 있고 싶은
그래서 못보면 고통스럽고
가까이 있지 않으면 괴로워지는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입니다.]


퇴근 하기전 그의 마음을 담은
메일 속 글들은 충분히 나를
흥분과 감동으로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았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고,
우린 우리가 사랑이라 칭하는 그런 묘한
감정을 유지하고 있을즈음........

나의 이메일 사서함엔 낯선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첫 메일 속 글의 섬뜻함이란........


[이젠 그만들 하시죠?
당신이 하는 짓에 대해
깊이 생각 해본적 있습니까?]

너무나 짧은 하지만, 너무나 깊이 가슴에
박히는 그 글속엔
나를 알고,
무언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메세지가 분명했다.

[그렇게도 좋습니까?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보시지요?]

그의 끝이 없는 멜들은 나날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에겐 차마, 이 사실을 밝히기는 나름대로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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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의 분주함 속에 남편이 퇴근했다.
식탁에 반찬을 올리며.

"씻고 앉으세요."

"응....근데,오늘 안색이 좀 그렇네?"

"그.......래요?"

난 혹 이상한 멜을 보내는 사람이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그의 얼굴이 천천히 훑어 보았다.
늘 변함없는 그 모습이였다.
경직 되어 있지도 않은.........

아닐까?
그럼 누구지?
의문이 꼬리가 꼬리를 물어 머리속이
엉커 붙는 느낌이 몰려왔다.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둑 거실 유리창을
두들기며 흘러 내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주방 청소 중에
시어머님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에미야......"

"네...어머니..."

"너...내일 가게문 열기전에 시장 좀 다녀와라...
요즘 애비 몸이 허한지 얼굴빛이 별로더라.
우족이라도 사와서 푹 고아야지 원......
집안의 대들보가 몸이 실해서 쓰겄냐!"

"네...그럴께요"

"여자는 자고로 서방을 잘 섬겨야
늙어서 자식들 한테 효도 받는거여..
애비가 오죽 힘들겠냐.
말은 안하지만 말여...
네가 좀 신경 쓰거라..
허구헌날 가게 한답시고 소홀하지말구..."

늘 아들 위하는 잔소리(?) 속에
이젠 만성이 된 듯 의식적인 대답만 할 뿐이다.

주방 청소를 끝낸뒤
앞치마를 걸어놓고, 난 주방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서 책을 보고 있는 남편은
들어서는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화장대 앞으로 가는 나에게 그는 말을 건넨다.

"혁진이는?"

"어머님이 데리고 주무신데요..."

"그래~ 근데 어디 아파?"

"아뇨....아프지 않아요."

얼굴에 찍은 바른 맛사지 크림을 닦아 낸 후
난 침대 이불 속을 걷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팔베개를 해줄려는 그에게

"오늘 그냥 잘래요.."

"왜요?"

"목이 좀 땡기네요.. 어제 잠을 잘못 잤는지.."

"그래 그럼...."

그는 몸체를 반대로 돌려 눈을 감아 버린다.
어둠속 방안엔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가득 메워졌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니....잠들고 싶지 않았는지도..........
30분 정도 흘렀을까
난 이불속에서 조심스레 몸을 빼며
침대에서 내려와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잠든 모습이였다.
조용한 걸으로 난 서재로 향했다.

시계 바늘은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컴퓨터를 켰다.
삐삐삑~
하는 소리와 화면이 밝아지고 윈도우 98이 보여졌다.
늘 가는 그 대화방으로 가기위해선
여러번의 마우스 움직임이 필요했다.

도착하자 마자, 그가 와있는지
이용자 조회를 해보았다.
[접속중]
이라는 글자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쪽지를 보낼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먼저 그에게 부터 쪽지가 날라왔다.

[이제 온거야?]

[응...어떻게 알았어? 내가 온지....]

[통신 친구란에 너 아이디 등록 해놓았거든]

[아......난 못했어.
아니....그런거 하기가 좀 그렇더라구]

[남편 때문이지?]

[후후..^^]

[일대일 하자...답답해]

[그래...]


바로 일대일 창이 열렸다.

비오는 날> 이 늦은 시간에 웬일?

바다> 그냥.........

비오는 날> 그냥이 아닌데뭐..

바다> 후후...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거야?

비오는 날> 하하....그냥 ...내 생각에 잠이
안오더라고 하면 황송하구....

바다> 근데....비 정말 시원하게 온다..그치?

비오는 날> 딴소리는~ 후후
그래 .....넘 좋다..

바다> 자기, 비 좋아 하잖아.

비오는 날> ^.^
근데...있잖아.........

바다> 응........뭐?

비오는 날> 너 이상한 멜 못받았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그에게도 나에게 왓던 그 메일이
갔었다 말인가?
왠지 알수 없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시치미를 떼야 겠다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바다> 무슨? 멜?

비오는 날> 아니......하도 이상한 멜이 와서리..
신경 쓰지마....별거 아냐..."

바다> 응......



대화 속에서 시간의 흐름도 잊은채
우린 접속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은 2시가 다가오고,
어깨에 뭉쳐오는 근육을 풀기 위해
앉은 채 몸을 조금 뒤틀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
뒤 쪽에 누군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몰려왔다.

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앗!!!!
다름아닌 남편이였다.

문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기대어 서있었다.

"놀......랬잖아.."

"뭐하니? 이 시간이 되도록....."

난 말을 하면서도 마우스로 닫음 엑스자 표시를
누르고 있었다.
순간 일대일 창도 닫히고
그냥 일반 대화방이 나왔다.

"아.....오....오...늘 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그래도 그렇지...잠도 안자고..."


남편은 약간 굳은 얼굴을 하더니,
금방 풀어진채

"얼른 끄고, 그만 자둬...."

"그래요...지금 나갈께요.."

남편은 내가 통신하면서 띠모임.취미.교욱같은
여러 방면에 동아리를 가지고 있는줄은 알고 있다.

서재에서 남편이 나간 후,
난 그때서야 긴 호흡과 동시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는 걸 느낄수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밤 잠은 다 잔듯 뒤적거림
여러번 속에 잡념만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지 않을 일이 생길것 같은 예감이
드는건 왜일까?

그 메일을 의식이라도 하는 듯
불안해 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조심하자.
조심하자.
머리 속으로 되새겨 보지만,
이건...........
조심만 해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앞선다.

한 줄기 바람에도 쉽게 상처 받는게
여자라면
그 상처을 휘벼파는 건 남자일 것이다.
잔인하다.
정말 잔인하다.
죄지은 뒤의 불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쩜, 이걸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불안해 하며, 미안해 하며
죄책감 마저 생겨 내 입으로
실토 하게끔 할려는 그의 계획되고도
너무나 야비한 전략일지도.........


관계......
참 묘하다.
누구와의 관계
누구의 아내.
누그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

그 누구냐인가에 의해
내가 칭해져야 한다는게.........
누구의 아내이기에
해도 되는일 해선 안되는 일이 있다는게 너무 잔혹하다.
나는 나 일뿐인데.......

이제 되도 않는 욕심 마저 생긴다.
내 이름 석자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게 억울하기 라도 하듯
갈망한다.
깊이 갈망한다.
모든 것에 갈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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