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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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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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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사랑


BY 로미 2000-07-03

다니러 오셨던 시어머니는 유치원에 가야 하는 새미를 굳이 서울

로 데려 가셨다. 한 동안 새미를 옆에 두고 싶다는 말씀이셨지

만 오래도록 소식이 없는 새미 동생을 염두에 두고 그러신다는

걸 알수 있었다. 내 놓고 아들 타령을 하시는 건 아니었지만,적

잖이 부담이 되었다. 굳이 아들이 아니더라도 새미에게 동생을

두게 하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아기가 생기지 않아 거의 포기하

고 있었는데,어머닌 포기가 안되시는 모양이었다.


새미랑 어머니가 서울로 떠난 오후에 새미 아빠는 출장지였던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급작스런 일기

변화로 저녁 무렵엔 비행기가 뜨고 내리질 않았다. 남편은 서

울 본가에서 새미랑 하루를 더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바로 출근

하겠노라고 전화를 했다.

나에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이틀이나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항상 옆에 있던 새미까지 없자 혼자 무얼 해야 하는 지

알수가 없어졌다. 새미가 없는 동안 여유있게 쇼핑이나 해야 겠

다는 맘을 먹고 빗속을 뚫고 나섰다. 마트의 셔틀버스를 타고

가 쇼핑을 마친 후 혼자 5층의 식당가로 올라갔다.

바다가 전면으로 보이는 식당 창가 쪽 자리는 항상 비어 있는

법이 없었지만,기다렸다가라도 오늘은 꼭 창가자리에 여유있게

자릴 잡고 밥을 먹어야지...하고 기다렸다.

쇼핑나온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토요일 오후에 그곳은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집에서 찬밥 비벼 먹

긴 싫었다.그렇다고 조용한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기도 싫

었다.

새우우동과 초밥까지 시켜 들고서 자리가 나자 얼른 뛰다시피 자

릴 잡고 앉았다. 밤바다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창 안

쪽에서 바라다 보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방파제 넘어로까지 파

도가 넘나들고 있었다.

"앞자리,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목소리를 따라 얼굴을 돌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정선생이었

다.

"네,어,,앉으세요. 그런데,어쩐 일이세요.선생님?"

"새미어머니야 말로 어쩐 일로 혼자 오셨어요?"

"네,새미아빤 출장갔다 오늘 들어와야 하는데 못 들어왔구요,새

미는 할머니랑 서울 갔거든요."

"저런,그?O군요.저도 서울 못 갔습니다."

"그러셨어요."

"5시 비행기까진 떳는데 5시 반 비행기는 못 뜬다더군요. 그래

서 저녁이나 먹고 맥주랑 안주꺼리 좀 사가지고 들어가려고 왔

죠."

"네에...어서 드세요..."

국수랑 초밥이랑 어디로 들어가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마주 앉아 식사를 하다니,그리고 하

필 이렇게 많은 음식을 시켜서 혼자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아는

척 하다니,지나가는 사람들이 정선생을 알아보고 아는 척 하기

라도 한다면 날 뭐라고 생각할까,여러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낼 오나요.새미아빤?"

"아니요,새미가 저희랑 첨 떨어진 거라서 하루 더 새미랑 놀아

주고 월요일날 들어 온다고 했어요."

"그럼 새미엄만 낼 뭐하십니까?"

"그냥,오랜만에 혼자가 되었으니 잘 놀려고요."

"뭘 하고 노실 껀데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럼 저랑 영화보러 가실래요?"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영화요? 영화구경 간게 언젠지 모르겠네요. 근데 선생님이랑

은 안 갈래요."

"왜요? 저도 가본지 오래되서 가 보고 싶은데,혼자 가긴 싫고

좋잔아요.친구삼아 같이 가시죠."

"선생님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텐데 오해 받고 싶진 않네요."

"오해라뇨?"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하지만 엎지러진 물이었다.

"몰라서 물어보세요. 이상한 사이로 오해 받고 싶지 않아요."

"그럴까요? 그게 신경쓰이세요?"

"여긴 바닥이 좁잖아요. 전 괜찮지만 선생님이 걱정되서 그러

죠. 저야 새미아빠한테 먼저 얘길 하면 되겠지만..."

"안해도 되는 얘기 아닌가요?"

"글쎄요.어쨌든 영화구경은 좀 그러네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거기까진 생각 못했군요.확실히 여자들

은 참 복잡하군요.여러가지로."

"네?"

"그냥 친구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면 안되나요?"

"새미아빠랑 친구하시잖아요. 저랑도 친구하고 싶어하시는 줄

몰랐네요."

"경호씨와도 친구지만 새미엄마랑도 친하고 싶은데요.근데 이름

이 뭐죠.새미엄만?"

"제 이름요?"

"네"

"그냥 새미엄마라고 불러 주세요."

"아니죠.제 친군데,이름이 있을 꺼 아닙니까?"

"김신영이예요."

"그럼 신영씨,저녁도 다 먹었고 제가 댁으로 모셔다 드리죠. 비

가 많이 오네요."

"아니예요.택시타고 들어가면 되는 걸요"

"차 가지고 왔습니다. 좀 돌면 되는 걸요 뭐.가다 해안도로 카

페에서 차나 한잔 사세요."

"그래도 될까요...그냥 가도 되는데요."

정선생과 나란히 나서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몇 몇 사람들은 정

선생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

엘레베이터 앞에서 드디어 정선생을 아는 척 하는 아줌마를 만났

다. 아이들과 쇼핑을 나온 모양이었다.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얘들아 안녕하세요 해야지. 여보 정소

아과 선생님이셔."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아이구 요놈들. 아빠랑 엄마랑 놀러 나왔구나 비

오는데."

"호호 애들이 어디 갈데가 있어야죠 비가 많이 와서. 근데 사모

님이세요?"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예? 아니요. 제 동생입니다."

"???"

"어머 진짜 그러고 보니 닮으셨네요.동생분이 제주 사셨어요?"

"다니러 왔습니다."

"네에..."

"그럼 다녀가십시오."

5층에서 1층까지가 그렇게 긴 줄은 몰랐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주차장에 차를 타러 가기까지 아무 말 않던 그는 차에 앉자 마

자 큰소리로 껄껄 웃어댔다.

"왜 웃으세요?"

"갑자기요,너무 재미있어서요."

"뭐가요?"

"왜 거짓말을 했을까?하고 생각하니까 너무 재미있군요.그리고

아까 신영씨 그 표정을 생각하니 너무 웃음이 나네요.신영씨랑

제가 닮았다니까 신기하기도 하고요. 저 여동생이 없는데 앞으

로 여동생 합시다 그럼."

"선생님 그리고 보니,짖꿎은 데가 있으시네요."

"글쎄요?"

아주 유쾌해 하면서 정선생은 해안도로 쪽으로 차를 몰았다.

파도가 도로까지 넘어 들어왔지만 무언가 후련하고 시원해 보였

다.

죽 늘어선 형형색색의 카페들을 지나서 그 중 소박한 모양새의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 따뜻한 차나 한잔 하고 가지요."

"제가 살께요."

별다른 치장이 없이 겉모습처럼 소박한 그 카페는 손님도 별로

없었다.

"신경 덜 쓰이죠?"

개구장이 처럼 웃으며 그는 말했다.

"동생이라고 하지요 뭐."

어느새 나도 같이 감염되었나보다.그의 천진스러운 유쾌함에.

결혼 한 후에 한 번도 다른 남자와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다

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었다. 결혼을 함으로써 나는 남편에게

만 성실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이런 설레임

은 또 무엇일까. 차가 오기전까지 음악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거 아십니까?"

"뭐 말씀이세요?"

"그냥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 말입니다."

"네,알 것 같네요. 사모님이 그러신가요?"

"아니,집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지만,편한 사람은 아니지요."

"미인이신가 보군요."

"네 알아주는 미모죠."

순간 조금 질투가 났다.

"좋으시겠네요."

맘에 없이 건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미모란 좋은 거죠.하지만 좋은 명화도 걸어놓고 오래 보다 보

면 그냥 벽에 걸린 풍경에 불과한거죠. 아름다움보다 중요한

건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거죠."

"뭔가 편치 않으신가요?"

"아니요,신영씨가 그렇게 편하단 말이죠. 사람을 편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편안하다니...후후.그런 영화 아세요?-내

겐 너무 이쁜당신-이라고요. 너무 이쁜 자기 마누라 놔두고 전

혀 이쁘지 않은 여자랑 바람난 남자 얘기지요. 저 기분 나쁘네

요.마치 좋은 음식 물린 사람이 김치나 깍두기 된장찌개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전 싫어요."

"신영씨도 아름답습니다. 전 그냥 신영씨와 가만히 마주 앉아있

어도 어딘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말씀드릴려

고 한 거죠.잘못 말한건가요?"

"에이 그만하세요 이제 비행기도 못 뜨는데요."

"전 스트레스가 많죠. 제 일이라는 게 아픈 아이들을 상대로만

하다 보니까. 항상 일에서 벗어 날 수가 없죠.주말이면 일주일

의 스트레스 때문에 정말 힘이 듭니다. 그 밖에 문제도 있지

만. 저한테 편한 친구해 주시면 안될까요?"

"선생님의 스트레스는 그래도 생산 적인 거 아닌가요? 환자가

많아서 피로를 느끼시는 건 환자 없어서 파리 날리는 의사가 들

으면 정말 화를 낼 일이죠.그리고 아픈 아이 안고 병원에가서

도 한 없이 기다려야 하는 저 같은 아줌마들의 스트레스에 비하

면 정말 호강스러운 거로 들려요."

"하하하."

그가 커다랗게 웃어버리자 나는 너무 놀랬다. 그러나 그는 눈물

이 나올 만큼 배를 잡고 웃다가,의아해하면서 쳐다 보는 내게

나즈막히 말했다.

"정말,신영씬,귀엽기까지 하군요. 사랑스러운 여자예요...경호

씬 정말 좋겠군요."


그 밤 난 오래도록 잠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누구한테 사랑스럽다거나 귀엽단 얘길 들어 본 적이 언제였든

가.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기나 한 거 였는지.

남편은 날 편안해하고 사랑했지만 사랑한단 말을 들어 본 적은

거의 없었던거 같았다. 그건 그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8년 이

상의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그는 날 여자로 보기 보다는 아

내로 사랑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남자로 사랑하기 보단 남편

으로 사랑했었다. 그건 당연한 거였고,그 만큼 애틋함이 없어

도 편안함은 있었다. 가정이란 그런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유지

되는 게 아닐까. 아무리 죽자고 연예를 해서 결혼한 사이라고

해도,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이들의 아빠와 엄마로써 만족하며

서로 편안해지고 길들여 지는게 아닐까. 아이들이 아플땐 함께

걱정하며 아이들의 재롱과 커감을 지켜보며 그렇게 니이들어가는

게 마땅하다고 난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늙어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선 바

람 한 줄기가 내게 다가왔다. 남의 일이라면 가장 혐오스런 눈

길을 보냈을 그런 바람이.

오래토록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그 느낌처럼 설레이게 하는 그

런 바람이 내게 불고 있었다.

어릴 적 첫사랑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지 뭘.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게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애쓰며 밤을 지새웠다. 더 늙어서 아름답

게 추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을 가슴에 그저 간직하면 되

는 거야.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도 했다.

밤새 비는 그칠 줄 몰랐고 난 내자신의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느

라 애쓰고 있었다.


차에서 내릴 때,우산을 받쳐주며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 연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