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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우리 처음 만나던 날에"


BY 로미(송민선) 2000-06-04

한 번쯤 누구나 한 번쯤 사랑얘기를 쓰고 싶을 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거기서 거기인,슬프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상투적인 얘기가 너무나 많지요. 저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서 한 번쯤은 이런 모험을 하고 싶습니다. 부담스러우신 분들께 미안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랑이야기 -하나,우리 처음 만나던 날에

처음 시작한 대학생활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졸업만 하면, 대학생이 되기만 하면, 모든 게 달라지리라는 기대는 물거품과 같았다. 언제나 따라기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 되었던 지금까지와의 결별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내 힘으로 내가 찾아야 하는 세계는 낯설기만 하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 지 알 수가 없어서 외로웠다.
그 날은 3월의 한기가 으슬으슬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소개만으로 끝나는 강의시간이 지나고 어서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가고 싶었지만 과 대표를 선출한다고 몇 몇 남학생들이 교단앞으로 몰려들었다. 아무런 관심도,참여할 의사도 없던 나는 찌푸린 채 멍하니 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몇이 추전되고, 자기 소개가 이루어 질 동안에도 나는 무엇이 지나간 시절과 다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동안, 그렇게 모든 걸 참아가면 갈망하던 대학이란건 무엇일까 하고.
자기 소개를 하러 나섰던 한 남학생이 지나가고,다른 학생이 교단에 섰을 때 갑자기 내 눈 앞이 후레쉬가 터지는 것처럼 환해졌다. 거짓말처럼 그가 내 눈으로 확대되어 들어와 버렸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상체를 앞으로 내 밀고 그를 바라보았다.
싱그러운 미소를 보이며,약간 쑥스러운 듯 자기 소개를 하는 그를 바라보면서,나는 지금 이 현상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때나,또는 지난 며칠사이 그를 본 적은 있었지만 특별히 눈에 뜨이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그가 갑자기 왜 눈앞에서 확대되어 버린 걸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게 옆자리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누구 쓸건데? 빨리 쓰고 가자"
"응?...누구 써야 하지...."
"아무나 쓰지 뭐, 젤 잘생긴 애로 쓸까? 호호?"
"글쎄..."
그가 과대표로 선출되었을 때서야,나는 그의 이름을 알 수가 있었다. 윤성진....그 날 이후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올가미처럼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그 이름을.

그 날 이후로, 그에 대해선 더 이상 특별한 게 없었다.가끔,어째서 그가 내게 그렇게 확대되어 왔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그와 마주칠 일도 별로 없이 내 생활은 바빠져가고 있었다.
더이상의 무료함이 싫어서 써클에 가입을 하고,아는 체 해주고 밥사주는 선배들과 친구들이 생겨서 살 맛 나는 대학생활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월이 되어 갈 무렵엔,늦도록 써클룸에 남아서 놀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낯뜨거워질 만큼 되지도 않을 현실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하지만,아무리 그래도 난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이어서,몇몇 혁명적인 선배를 따라서 벌써부터 열을 올리고 다니는 그런 축은 못되었다.
그렇게 몇 사람 힘으로 새 날이 오리란 기대는 할 수가 없는 게 나였다. 아무런 관심없는 척 하기엔 어딘가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있었고,그렇다고 나서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는 기회주의자요,회색분자였다.
오후 강의만 있다고 게으름 피우다,강의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달리던 그 날도,교문 앞에 늘어선 전경들을 보고는 겁이 났지만,설마..하는 심정으로 교문을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화염병을 날리며,밀려오는 학우들 때문에 당황한 나는 뒤돌아 뛰지도 못하고,앞으로 달릴 수 밖에 없었다.중간에 끼여버린 나에게 갑자기 머리 위로 최루탄이 날리는 가 싶더니 눈 앞에서 터져버렸다. 다들 뛰는데 뛸 수가 없다.
얼굴에 불을 맞은 듯 따갑고 쓰라리고 눈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뒤에선 전경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러다 애매하게 잡히면 안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방향감각마저 잃어버린 듯 헤메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전경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절망적이었다.
그 때, 누군가 내 손목을 나꿔채서 달리기 시작했지만,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도 내 다리가 아닌 듯 무감각하게 느껴 져서,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잡히면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손목을 잡힌 채 필사적으로 뛰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어떻게 지나고,더 이상 아무도 ?아오는 사람이 없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 나를 데리고 달렸던 사람은 손목을 놓아주었다.
"고마워요,,고마워,,,"
한 숨 돌린 나는 말이 아닌 몰골로,그래도 인사를 건넸다.
"수도가 있으니 가서 얼굴을 좀 씻자"
"누구,아시는 분?"
처음부터 내 말엔 아랑 곳하지 않고 반말로 나오는 그가 누군가 해서 얼굴을 쳐다 봤다. 그 였다.
빛처럼 내 앞에서 터져버리던 그.
수돗가에서 대충 얼굴을 씻고 좀 정신이 돌아온 나에게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경진이 너,내 이름은 알아?"
웃으며 그가 말했다.
"그럼 과대푠데,,,내 이름을 알고 있었어?"
어느 새 나는 감격하고 있었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그럼 과대푠데,그 정돈 기본이지!"
"아,,너무 무섭다.죽는 줄 알았어."
"너네 써클 형들도 많던데,너 참가하려고 온 거 아니야?"
"아니,,근데,내가 든 써클을 알아?"
"그럼,넌 소문 났잖아,과 보다 그 쪽에 목숨 걸었다구."
"아닌데,,,그냥 재밌으니까...그?O나.."
"오늘은 강의 없어.집에 가려고 나서다,그런데 너 바보아냐?"
"무슨 말인데?"
"상황이 그러면 들어오질 말아야지,너두 닭장 신세 질뻔 한 거야. 내가 생명의 은인이지..알겠어?"
"몰랐어,난 강의 시간에 늦을 까봐..."
"어이구,,,있다가 진정되면 생명의 은인에게 저녁이나 사지"
"그러지..뭐."
그러지 뭐,,,,그렇게 그와의 사랑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