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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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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BY 유수진 2000-10-04

팔당댐의 물줄기가 가슴 아리게 슬퍼 보였다.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있는, 오빠의 초라한 뒷모습 때문 일게다.

늦은 점심을 먹는내내, 눈을 피하는 나를, 배려해 줬던 해빈오빠..

"드라이브나 좀 하다가 들어갈까 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수종사에 잠깐 들러, 차나 한잔 하고 가자.
어떠냐. 좋지?"

남편은 분위기를 띄워 보려는듯, 밝은 음성으로 활기차게 말했다.
오빠는 고개만 끄덕일 뿐, 댐의 강줄기만 쫓고 있었다.

오빠쪽 Back Mirror 로 잠깐 잠깐 눈이 마주쳤지만, 난 마치 24년전 오빠가 제대했을때로 돌아간, 18세 소녀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작은 세상....
아둥바둥 거리는 세속의 다리위, 손톱만한 자동차들이 가여워 보였다.
지금 이순간, 어떤것을 내 시야속에 담아도 애잔할 것이다.

찻물을 우려, 잔에 따르는 남편은, 나를 깊숙히 쳐다봤다.

해빈오빠는 차를 한모금 홀짝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재인이는?"

"학교에...."



"....해인이는.."

'째쟁-'

해빈오빠가 내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당황한 내 손끝에 찻잔이 쓰러져 버렸다.

"괜찮니?"

해빈오빠가 얼른 일어나 휴지를 찾았다.

"됐어, 해빈아, 여기있어."

그이는 다시 차를, 따라 주었다.



"오......"

오빠를 부르는 순간, 목구멍에 슬픔 한 덩어리가 걸려 버렸다.
그리고, 그 슬픔덩어리는 어느새 흐느낌이 되어, 어깨를 흔들었다.

"해인아....."

단단한 바위같이 듬직한 오빠는 보이질 않았다.
눈부신 땀방울로 엄마의 그림 속에서 건강하게 웃고 있던 오빠는 어디에도 없었다.

죽을것같이 흐느껴서라도, 내 죄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면...
오빠의 젊은 날을, 보상해 줄 수만 있다면....
내 혈육의 죽음을, 돌이킬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해빈오빠의 신장 일부로 다시 태어났지만,
이 부활한 제 2의 삶은, 가시덤불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나는....
살아 있는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또다른 자책의 터널속을 헤매고 있었다.

"해인아...
그만 울어라.
그러다 쓰러지겠다."

"오빠...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오빠가 그런 어둠침침한 곳에서 청춘 다 허비하고,
나같은거 뭐하러 살린다고...
오빠 건강까지 헤치면서...
내가 뭐 그리 필요한 존재라고.....
흑.....
그리고...
그리고......"

"해인아,
그런말이 어디있어.
너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니?"

"오빠...
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만해라.
누구의 탓도 아니야."

"나...
난 죄가 너무 많은 년이야.
난......"

"어허..
이녀석,
그만 하래두."

"아니야...
오빠, 내가 우리집.."

"해인아!"

"엄마 아빠....가족들 ....
내 기사 터지는 바람에, 호주로 이민 가던날..."

"어머니...
경빈이는....경진이랑, 아버지는....
나 오늘 출감하는거 말씀은 드렸니?
아.....
뭐, 말씀 안 드려도 별 상관은 없지만,
내가 어떻게 그분들 얼굴을 봐야할지, 그게 제일 걱정이다.
너희들이야, 자주 면회 와 주었으니....
난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으흐흐흐흑...."

"해인아...."

"오빠.....흐흑...."

"이녀석아,
사람들 다 쳐다 본다.
그만 좀 하래두...."

"여보......
그만....."

"난.....
말 못하겠어.
난.......으흐흐흑...."

해빈오빠는 잠시 우리들을 쳐다보더니, 창백한 안색에, 한층 메마른 표정을 담았다.

"진재....
무슨일 있었니?"

머뭇거리는 남편을 나는, 애원하듯 쳐다 봤다.

"혹시....
호주집에 무슨 일 이라도....?
가족 중 누구....."

"해빈아....
그래.....
13년전.....
가족들이 타고 있던 호주행 여객기가 동중국해상에서 추락했어.
TV에서는 근 한달을 그 아비규환 속에서 블랙박스 찾아내고, 생존자, 실종자, 사망자 명단 발표하고.....
정말, 큰 재난이었다."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실내를 쩌렁 울렸다.

"무슨 소리야?"

"모두들 호주행 비행기속에서 사고를 당한거야."

"장난하는거야, 너희들...
떠나기 전에도 모두 만났고,
그리고, 해인이 니가 계속 소식 전하고 있다고.....
잘 있고, 건강하다고......"

오빠의 집요한 시선은 마치, 내게 '거짓말 이라고 말해!' 하는 듯 애절했다.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난, 혼절 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나를 부축해 안으며 말했다.

"그래....
13년동안 너를 속였다.
그 곳에서 니가 견딜 수 없을것 같아서....
다행히....
어머니는 생존자 가운데에 계셨어.
온몸에 화상을 입은체....

화상 치료를 받으시는 내내는 제정신이셨지.
한 서너달정도.....
그후, 가족들의 사망 소식을 들으신후......
그래도....
혹......
해빈이 너를 보면 정신이 돌아 오실지 몰라."

나는, 한참을 반 혼절 상태에서도 끈질기게 흐느껴댔다.

13년전.....
난 내 목숨보다 소중한 재인이를 얻고, 아빠와 형제들을 잃었다.

재인이가 아니었으면, 난 그때 해빈오빠가 내게 준 생명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뼈만 앙상한 해빈오빠가 쓰러질 정도로 흔들릴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그렇게 정신이 맑아질 즈음, 오빠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인이 안아라.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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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참....
예쁘다.
사랑원....
진재 답다.
사랑원 근처에 보금자리를 꾸밀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오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샤워 하지...
등밀어 줄께."

"아니!
우선, 어머니 부터....."

"그래,
사랑원에 계셔. 얼른 모셔올께."

재빨리 뛰어가는 그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오빠의 시선을 받았다.

슬픈 눈빛 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했지만,
그건, 어쩌면 지금 내 심정 이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겠구나...
너희 둘....."

"............오빠."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