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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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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BY 유수진 2000-09-30

"내가 미국으로 어쩔 수 없이 보내지는거야.
그곳엔 엄마의 어려서부터 죽마고우인 친구분이 계시는데,
그 집엔 아들이 사형제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보내지는 상황이 어떤건데?"

"부모님께서 돌아가신다거나....
아니야.
그건 너무 슬퍼서 안돼!
응......
그래!
엄마랑 아빠랑 내 교육을 위해, 엄마의 가장 친하고 믿을만한 친구에게 나를 당분간 맡기는거야.
그리고,
그곳의 사형제,
첫째, 제임스 오빠는 23세, 대학생이고,
둘째, 알렉스 오빠는 18세, 고등학생,
셋째와 넷째는 쌍둥이 티미, 지미, 내가 전학해 들어갈 새로운 중학교에 재학중이지.

모두, 재인이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거야."

"우와~
우리 재인이는 욕심도 많구나."

"그 다음이 더 중요해, 엄마.
그 중학교에서 펼쳐질 로맨스.
티미, 지미를 짝사랑하는 여자 선배들의 질투어린 시선에,
재인이는 꿋꿋하게.."

'와장창창창~'

"이런걸 그림 나부랭이라고 그려.
이 병신같은년....."

난 재인이의 머리를 빗겨주던 브러쉬를 떨어뜨렸다.

"엄마!
어떡해!
할머니..."

후다닥 달려들어가는 재인이 뒤를 휠체어로 쫓아 들어갔다.

빼꼼히 열린 화실문 사이로, 그림 서너점이 액자와 함께 박살이 나 있는것이 보였다.
난 우왁스럽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 늘 있던 자리의 나무자를 들고 비명을 질러댔다.

"뭐 하는거야!
무슨 짓 이야!
무슨 짓 이냐구!"

온집안을 쩌렁 쩌렁 울리는 내 괴성에 노인네는 그제서야,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 자신의 양팔속으로 머리를 숨겨 버렸다.

"잘못 했어요.
잘못 했어요, 엄마.
다시는 안 그럴께요.
엄마....
흐흑....
잘못 햇어요."

그 자리에 넙쭉 엎드려 싹싹 빌어대는 노인네에게 나무자를 힘껏 쳐들어 때릴 기세를 했다.

"엄마,
엄마!
그러지마.
엄마!"

재인이는 할머니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저리 비켜!"

"엄마..."

"저리 비키지 못해.
얼른!"

재인이의 꺽이지 않는 기세에 나는 더 역정이 났다.
나무자를 들고 있는 팔이 화에 못이겨 '부들 부들' 떨렸다.
그 팔을 위협적으로 흔들며 협박을 했지만, 자기를 때리지 못할것이라는걸 아는 재인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손 거둬...여보.."

"아빠!"

재인이는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채, 구세주라도 만난양 눈빛을 빛내며 반가워 했다.
그이 였다.

"재인이는 어서 할머니 모시고 바람 좀 쐬어 드릴래."

"네!"

양팔에 얼굴을 잔뜩 파묻고, 엉덩이를 천상으로 들어 올린체 엎드려 있는 지 할머니를 야무지게 부축하는 재인이.

익숙하게 깨진 액자들을 치우는 그의 모습을 화풀이 하듯, 불같이 노려보다 휠체어를 돌렸다.

"여보,
재인이도 있는데.....
감정 좀 다스려...."

등을 돌린체, 유수같은 세월 속 에서도 여전한, 냉소가 튀어나왔다.

"그 엄마의 그 딸 아니야."

"재인이는 아닌것 같은데...."

그래......

나는 엄마와 너무나 닮아 있는데 재인이는......
천상 지 아빠였다.

열세살....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 갔는데....

내나이,
이제 불혹을 넘겼는데도, 여전히 정신은 30여년전을 서성이고 있다.

"얼른 준비해.
안양이긴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 이것 저것 따지면 교도소에서 시간 많이 잡아먹을거야."

오늘은,
해빈오빠가 출감하는 날이다.

부당하게 길었던 죄값을 말끔하게 청산하고 세속으로 돌아오는 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난 해빈오빠에게 죽을때까지 갚아도 모자랄 빚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받았던 충격이상으로
오빠가 느낄 진실에 대한 충격이 걱정스러웠다.

몇달전부터 준비했던,
오빠에게 읖조릴 대사를 중얼거렸다.








창살이 걷어진 오빠의 얼굴......

많이 늙었다.

21년전 푸르디 푸른 스물 여덟의 청년을 삼켰던 사각 감옥은, 50을 눈앞에 둔, 정리하지 않아 더 도드라져 보이는 흰머리의 남자를 책임감 없이 뱉어 냈다.

교도소 문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우리 내외를 쳐다보던 오빠는, 같은 출감자가 뒤에서 무심하게 툭 치며 지나치는 바람에,손에든 곤색 보따리를 떨어 뜨렸다.

남편은 얼른 뛰어가 오빠가 줏어든 보따리를 들어주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깨를 감싸안고 내쪽으로 안내했다.

다가오는 오빠의 눈빛.......

해빈 오빠!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지......

오빠......

해빈오빠........

눈물은.....

이제 씨가 말라 버렸는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