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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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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유수진 2000-03-16



두어 수저 뜨다가 이내 수저를 놓았다.

"몬된 승질 또 나오네.
밥 숟깔 퍼뜩 안드나.
이따 밥달라고 하믄 니 알아서 하래이.
내 니 전용 가정분줄 아나."

"뭘 노려보노.
가스나가 몸이 그라믄 성질이라도 좋아야지.
니 비위 누가 맞추노."

'쨍강!'

난 숟가락을 던졌다.
"어구마 이기 이기 미?나.
?졍째??좇?다 있으니께 호강에 겨워 지랄이가.
니같이 몸 그내놔서 돈 ?졉?먹을거 ?종底?쫄쫄 굶고 비싼 휠체아 ?좇?지
내는 아들이 월메나 많은디...
몬된 가스나. 니가 이집 상전이가, 상전이가."

'쨍그랑- 쨍!'
난 밥그릇도 던져버렸다.

"아니, 뭐야!"
엄마가 안방에서 뛰어나오고, 내게 고개를 '획' 돌리며 소리친다.
"넌...... 정말......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 나쁜 기집애.
넌 불쌍해 보이다가도 그 드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정 떨어져.
어서 올라가.
미영이 올때까지 니 방에서 나오지마.
2층 거실에서 눈에 띄면 혼날줄알아.
아줌마! 쟤 빨리 방에 올려보내요.
꼴도 보기싫어!"

내 방 침대에 던져진 난 침대 머리맡의 액자를 문쪽으로 집어 던졌다.
'- 꽈쾅!'

멍하니 앉아서 액자를 쳐다보다가 살며시 침대에서 내려와(내 두팔은 이제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액자를 집어들었다.
언젠가 뒤뜰에서 경빈이가 찍어준 사진.
액자속의 단발머리 소녀는 티없이 환하게 웃고있다.
마치 두 다리가 있는 정상인마냥....

있는 힘껏 던졌는데도 이상하게 액자는 멀쩡했다.
액자에 찍힌 방문의 상처만이 나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끼익-'
방문이 열리고 미영이 들어온다.
난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 화판을 정리했다.
이미 이골이 난 내 방 작은 창문의 풍경화.
화창한 날씨에도 오늘 나의 물감은 검은색과 회색이 많이 쓰였다.

초봄의 쌀쌀한 기운을 방 안 가득 풍기며 미영은 철지난듯한 초록색 하프 코트를 벗어 침대에 걸쳤다.
화판을 치우다 쳐다보고 있는 내게 미영은 '빨리 안 치우고 뭐하냐'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82쪽.
See through a brick well.
I can see through your lies easily.
응용문이야. 잘 받아적어봐.
see through 라는...."

꼬르르르르륵-

오후 2시.
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미영은 손에 들고 있던 10 Cm자를 자신의 손바닥에 몇번 '탁탁' 튕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잠시 후 쟁반에 간단한 식사를 가지고 들어와 내가 앉은 책상앞에 놓으며,
"빨리 먹어!"
하고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여 책을 꺼내 들여다 본다.

의무적 상호보완의 관계.

미영은 스물 두번째 가정교사.
그래도 벌써 1년째 가장 오래 내 공부를 봐주고 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무테안경.
퀭하고 큰 눈에 키가커서 더 말라보이는 딱딱한 인상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과 남동생, 대학에 다니는 두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홀어머니를 대신해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고 있고 해빈오빠와 같은 동갑에 대학을 휴학중에 있다고 엄마와 아줌마가 대화하는걸 들었다.

"자아~
다 됐다.
어때, 감쪽같지."
방문에 난 상처에 액자를 걸어주며 경빈이 빙긋이 웃는다.

난 경빈의 거무스름한 입주변과 듬직한 어깨를 보며, 세삼 경빈이, 해빈오빠완 또 다른 어른같은 기분이 들었다.
16세.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어느세 나보다 생각하는 씀씀이도 더 넓어져 있고...
경빈이에게는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밥 잘 챙겨 먹어. 누나.
성당 갔다와서 내 여자짝꿍 얘기해 줄께.
얼마나 ??쳬構?생겼다구."
난 경빈이를 따라 휠체어 바퀴를 돌리며 2층 거실까지 배웅했다.

아빠의 차와 경진의 차가 사라질때까지 2층 배란다 유리문 앞에서 언제까지나 지키고 앉아 있었다.

미영과 함께한 교습 시간이 지나고 화판을 챙겨 2층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햇볕이 잘 드는곳으로 화구 자리를 잡아놓고 익숙한 거실 유리문 밖의 풍경을 스케치해 나갔다.
모두들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는 조용한 오후시간.
두런 두런 이야기 소리가 났다.
간혹 웃음소리도 뒤섞여 연필을 쥔 손을 잠시 놓고 거실 입구쪽으로 살며시 가보았다.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 인정 아줌마.
국무장관의 부인으로 우리집과는 해빈오빠 갓나쟁이 훨씬전부터 친분을 맺어온 엄마의 30년 친구다.
인정 아줌마에게는 경진이와 죽마고우인 하. 현. 수 라는 능글스러운 아들이 있다.
물론, 내가 8살때까지의 이웃집 오빠이기도 한.....

"해빈이 군대 빼준데도 부득 부득 간다고 우기더니...
어유~ 넘 든든하고 씩씩해졌드라.
나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을지경이었어."
"후후, 걔가 좀 그래. 지 아버지 닮아서 융통성이 없다니까.
그것만 빼면 정말 멋진 놈인데...
해빈이 보내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이제 한시름 놨어.
암튼 그때 애써줘서 고마웠다."
"뭘~
한것도 없는데....
우리 현수 대학 졸업하면 이 회장님 밑에 좀 넣어 사람좀 만들어 주라. 얘.
으휴~ 누굴 닮아서 머리가 그렇게 꼴통인지....
돈맛만 들어서 외제차에 옷값에...
얘 내 등허리가 다 휠 지경이야.
그놈 카드긁고 다니는 통에..."

"흐흠....
그래. 해빈아빠한테 부탁해 볼께.
장관 아들이 어디는 못 들어가겠니.
해빈 아빠 아니라도 대기업에서 서로 모셔가려 할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그래도 경진이랑 같은 학교 경영학과라서 그런지 둘이 곧잘 어울려 다니드 라. 우리, 조만간 사돈 되는거 아니니."
"하하하하하...
그럼 좋지.
장관집 며느리라...
괜찮은데...
근데 기집애가 대가 좀 쎄서 니가 골치좀 ??을걸.."
"호호호호
요새 애들 어디 시어머니말 듣니.
지내끼리 잘 살면 효도하는거지.
나 그렇게 꽉 막힌 시어머니감은 아니다 얘. 하하하하하"

"건 그렇고 너 올 여름에 개인전 갖는다며...
잘 되가고 있니?"
"응. 여러가지 끄적이고는 있는데..
요샌 해빈이 그리느라 잠깐 손 놓고 있어.
난 그앨 그릴때면 참 행복해."
"아유~
얘! 혼자보기 아까운 얼굴이다. 너.
해빈이가 니 뒤 이어 그림을 그렸으면 얼마나 좋았니.
그 딱딱한 정치학과가 뭐야.
나 정치하는 남편 만나서 느는게 주름이고, 흰머리다 야.
이건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고,
비싼 레스토랑에 가는것도 눈치 보이고...
못할 짓이야."
"글쎄....
지가 그게 적성에 맞는다니 할 수 없었지 뭐.
그래도 기대는 꽤 했었는데...."
"예술가 집안에 부모피 이어받는 자식이 하나쯤 나올법한데....
참! 해인이가 그림 좀 그린다며...."

"누가 그런 소릴해?"
"현수 녀석이 그러데.
놀러 왔다가 해인이 그림 그리는걸 본 모양이야."

"됐어. 걔 얘긴 하지마.
걔가 그리는게 어디 그림이니.
할 일 없으니까 그냥 끄적이고 있는거지."

.....................................................................

붓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