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은, 영감이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은 단 1프로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몸의 이곳 저곳이 고장이 나면서, 내 사고가 얼마나 그릇 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영감은 다섯 시누이 중의 시부모님의 유일한 아드님(?)으로 자라서, 처음 결혼을 하고서는 여간 불편하고 큰 고역이었는지를 생각하기도 싫다. 시부모님의 시집살이보다 영감의 비위 맞추는 게 더 어려웠으니까.
영감에 대한 이런 저런 불만이 지금도 백 프로 해소 된 것은 아닌 체, 누구나 그러하듯이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 껏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살고는 있다. 이 것은 순전히 내 참을성과, 자식을 둔 어미로서의 인내심과 한국적 도덕심의 발로였다. 그 동안은 안 살고 싶은 마음이 한 두 번 요동 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영감의 말대로 그의 인내심이 한 몫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큰 병을 얻으면서 내 자존심도 못 되게 변질이 되고, 영감의 인내심은 더 너덜너덜 볼품 없이 퇴색해버렸다. 요 근래에는 하는 일 없이 제 때에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용서가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최근에는 시장끼가 돌면, 영감을 옆에 두고서도 나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영감이 스스로 끼니를 챙겨 먹으면 좋으련만, 그냥 끼니를 건너뛰고 만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저녁이면 눈이 쾡 해지고 기운도 바닥을 헤매기가 일쑤였다. 밥을 챙기던 그 시간에 하는 일 없이 침대에서 딩구는 일이 많아졌다. 나를 위해서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한 두 끼는 영감을 곁에 두고서도 내 배를 채웠지만, 길게 할 일은 아니었다. 밥으로 끼니를 채우는 일과 간식으로 입을 다시는 건, 내 건강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영감과의 겸상은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되었다. 영감을 위해서 밥을 차린 듯, 큰 소리로 외친다.
"식사해요."
영감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보다. 서너 번을 외쳐도 영감은 반응이 없다.
'에구~.' 만석이는 안 되겠다. 그냥 주어진 대로, 이대로 살아야겠다. 훗 훗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