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많이 안 좋아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만약에
만약에 큰 일이 생기면 내 거취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지금 이 집에 쏟은 정성이 아까워서
혼자 남게 되더라도 정원이나 살살 가꾸면서 노년을 보내려고 했다.
사철 피고지는 정원에서 위로 받고 힐링을 하면서.
충직하고 정든 반려견 길순이랑 하천 둑을 따라 매일 산책도 하고
텃밭에서 머위랑 돌미나리도 뜯고
산딸기에 왕보리수, 동이감(대봉감) 단감도 지천인데.
그런데 애들은 엄마 혼자서 이 넓은 집을 관리하기에는 무리수란다.
돌아서면 잡초가 사람 키 만큼 웃자라고
잔디밭이랑 하천 둑길에 흐드러진 금계국 관리까지는 도저히 답이 없단다.
집 뒤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집 앞으로는 사철 실개천 보다 수량이 많은 하천이 흐르고
하천 따라 이어진 길고 긴 둑길은 어느 둘레길 보다 정겹다.
교통은 시골답게 그리 편리하지는 않다.
하루 서너번씩 오가는 시골버스가 전부다.
자가용으로 나가면 10분 걸리는 읍내가 차가 없으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운전을 못하는 것은 아닌데 하지 않는다.
운전면허증도 따 놓은지 오래됐고
혼자서 읍내까지 잘도 다녔는데 지금은 운전이 도무지 하기 싫어졌다.
앞만 잘 보고 다니면 된다고 하겠지만 누가 한눈이라도 팔다가
내 차를 박을까 봐도 겁나고
내가 실수를 해서 누구 차를 박을까봐도 엄청 무섭다.
그런 나를 남편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답답하단다.
다른 일은 다 일사천리로 밀어부치면서 운전은 왜 그리 무서워하냐고
으르고 달래다가 이제는 포기 상태다.
에구구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ㅎㅎㅎ
교통도 불편하고 병원도 멀고하니 읍내로 나가서 사는건 어떠냐고
남편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고향을 생각하게 됐다.
물론 그 집에는 막내오빠가 살고 있다.
언젠가 한번 만약에 내가 혼자되면 경주에 사는 건 어떠냐고
막내오빠한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오빠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럼 우리집 2층에 와서 살면되지
혼자서 그 큰집에 어떻게 사느냐며 도시가스도 되고
병원이랑 운동시설 기타 편의시설이 다 잘 되어 있다고 걱정말고 오란다.
그 2층에는 방이 3칸이고 화장실, 거실과 베란다까지 있는 아담한 집이다.
오빠는 늘 객지생활을 하는 막내여동생이 안쓰럽다고 했다.
오빠 넷은 모두 경주에 모여 사는데 나만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짐 정리하고 집 팔아버리고
경주에서 편하게 살아가면 된다고 했다.
남편도 이 넓은 집에서 잡초나 뽑으면서 사는 것 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단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빠는 내 피붙이니까 편하게 오라한다지만
올케언니 생각이 어떨지 그래도 시누이올케 사인데
오빠가 여동생 챙겨주라고 하면 신경 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올케언니 생각은 어떤지 물어 보라고 했었다.
올케언니는 결혼하고 40년 단 한번도 나랑 얼굴 붉힌 적도 서운한 적도 없었다.
그래 그런지 물어보니 단박에 고모가 오면 좋지 오란다고 오빠가 전해준다.
올케언니는 오빠하고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때도 친정에 안 가고
우리 집에서 2주일 쉬었다가 간 적도 있었다.
이혼 직전까지 간 일인데 중간에 시누이인 내가 들어서서 마무리를 잘 했다.
올케언니는 뭐든 있으면 다 챙겨주고 이사하는 날이면 시간내서 늘 도와주고
우리는 한번도 시누올케 같은 걸끄러운 사이를 만들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돌아가신 친정엄마는 너거 둘이는 친 자매지간이냐고 그러셨다.
그래도 시누이가 2층에 혼자 살고 있으면
이것저것 신경쓰일 일이 많을 것 같아서 경주에는 가되
오빠 집 근처에 독채를 세 얻든지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서 가겠다고 했다.
애들이 다 멀리 있으니 나이들고 만약에 급한 일이 생기면
보호자는 있어야겠어서 고향쪽으로 가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빠는 2층으로 오라고 친정엄마같은 말을 하신다.
시누이올케사이 40년 동안 단 한번의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는데
나이들어 이제와서 불편한 사이가 되면 안 될 것 같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막내오빠는 엄마같은 오빠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