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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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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역시 순진해


BY 만석 2023-06-22

"이리 좀 와봐."
영감이 주방 싱크대 앞에서 나를 부른다.
좀처럼 나를 부르는 일은 없는데 별일이다.

설거지통 아래의 문을 열어보라 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내게... 무슨 조화인고.
좀처럼 시키는 일이 없는 영감이 별일이다.

"이거 누가 마시는 거야?"
"으하하. 들켰네. 내가 마시지 누군 누구예요."
예쁘게 정렬을 하고 숨어있는 소주병 두 개.

영감은 도통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섰다.
"당신이 보면 마시고 싶을까봐 감춰 두었지."
"당신은 언제 마셔? 밤에 늦게 들락거리더니...."

하하하. 이렇게 순진하시긴.
언제 마누라 술 마시는 걸 본 사람 같다.
"별~. 우리 마누라도 이젠 갈 때가 됐나. 별 걸 다 마셔요."

현미밥을 지을 때 소주 두어 컵을 넣으라 한다.
현미의 영양이 배가 된다는 인터넷의 건강상식이다.
몸에 좋다는데 까짓, 못할 것도 없지.

그런데 영감을 좀 골려주고 싶다.
"밤에 잠 들기가 힘들어서 한 잔씩 마셔요."
"못 써. 아주 안 좋은 버릇이야." 크크크. 이렇게 순진하시긴.

정말로 알아들었나 보다.
후후후. 60년을 살았는데 마누라를 그리도 몰라요. 
내일은 정말로 마신 것처럼 두어 잔 비워 둬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