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도 하다. 분명히 어제 설젖이를 하고 돌솥의 나무 뚜껑을 행주로 물기까지를 잘 닦아서 놓았는데, 어디에다 잘 놓았더란 말이냐. 나무 뚜껑은 햇볕을 너무 강하게 받아서 말려도 뒤틀리고, 그렇다고 말리지 않기는 찝찝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주방 베란다의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물기를 말리곤 하는데, 주방의 베란다에도 없고 창틀에도 없다.
한끼라도 밥을 못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영감은 줄기차게 밥을 찾는 양반이니 어째.
발이 달려서 도망을 간 것도 아닐 테고 식구가 많아서 손을 탄 것도 아닌 텐데. 다시 사기는 억울하다. 그나마 다행히도 아귀가 잘 맞는 냄비뚜껑이 있어서 대용을 하고, 밥을 지은 지가 나흘 째다. 매일 아니, 끼니마다 주방을 뱅뱅 도는 마누라가 딱한지, 영감도 주방에 들어와서 두리번거린다.
아직 솥뚜껑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로봇청소기에 끼우는 걸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잖아도 손으로 박박 문질러 닦는 것보다 시원찮아하던 터라, 구시렁거리는 내 잔소리를 듣고 걸레가 내뺏나 보다고 웃어넘겼다. 밀대걸레를 쓰면, 아픈 어께가 아쉬운대로 지낼만은 하니까. 아~! 시원찮은 어깨가 금방 앙탈을 부린다. 그런데 걸레는 어디에 숨어버렸다는 말인가.
요새로 내가 정신을 빼놓고 산다. 물을 받겠다고 수도꼭지 아래에 대야를 받쳐놓고는,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튼다. 그러고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영감을 부르니, 영감이 한심하다 한다. 주방의 두 번째 칸에 냄비를 올리고 밸브를 돌리니 불이 올라오지를 않는다. 다시 보니, 냄비는 두 번째 칸에 올려놓고, 벨브는 세 번째를 돌리며 걱정을 한다. 이젠 영감도 꿈쩍을 않는다.
어제는 딸아이가 월말이면 청구하는, 영감과 나의 병원진료비를 정리해서 보내달라는 전화를 했다. 미안하고 고맙게도 나와 영감의 병원비는 네 아이들이 1/n로 나누어 분담하기 때문이다. 저 혼자 부담하는 게 아니고 네 녀석이 나누어 부담을 하니, 영수증도 사진으로 첨부해 보내야 한다. 저도 받아서 다시 나누어야 하니까 깔끔한 성격에 그리하는 게 순리이기는 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할 일은 없고,, 딸에게 보낸 사진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졌다. 폰을 찾아서 딸아이에게 보낸 사진을 찾으니 흔적도 없다. 어쩐 일일까. 대화창을 올려보고 내려보기를 아마 열 번은 더 했나 보다. 그런데 역시 흔적도 없다. 혹시 내 손에 걸려서 지워졌나? 워낙 시간을 쪼개서 사는 딸이라 전화를 하기도 어렵다. 이 시각이면 잠이라도 들지 않았을까?
사실은 딸이 잠이 들었을까 하는 걱정보다 내가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 문자를 보내 봐? 잠이 들었으면 내일 보겠지. '참 이상도 하다. 내가 도깨비에 홀린 것 같다. 분명히 영수증을 사진으로 보냈는데, 잘 보냈나 확인 차 찾아보니 깜쪽같이 없어졌다. 보낸 흔적도 없다. 꿈을 꾼 걸까? '네가 분명히 보내라 했지? 네 문자 창 좀 봐라. 잘 들어갔나. 정말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며칠 뒤 솥뚜껑은 김치냉장고 안에서 나오고, 청소기의 걸레는 볕이 잘 드는 안방의 베란다에 펼쳐져 있는 걸 영감이 걷어다 준다. 수도꼭지를 혼돈하는 버릇은 아직도 여전하고, 가스밸브도 아직 두어 번씩 시도를 해야 한다. 마침 딸아이에게 보낸 문자창을 찾아서 보낸 글자와 사진을 확인을 하고는, 급히 딸아이에게 다시 문자를 보낸다. '휴~!. 어렵게 찾았다. 잘 보냈더라^^'
"치매가 오기는 올 것 같다. 요새로 자꾸만 깜빡깜빡한다. 늦었다. 어서 자거라."
나는 잠이 올 것 같지를 않다. 이런 날은 별스런 망상이 떠올라서, 눈은 더 말똥말똥 해 진다.
병이 들면 병원엘 가고, 요새는 아파도 약이 좋으니 걱정은 하지 않는다. 혹여 이 나이에 병이 들어서 생을 마감한다 해도 과히 억울할 것은 없는 나이가 아닌가.
그러나 치매는 다르다. 우리에게 치매가 온다면 애들이 얼마나 맘 고생을 하겠는가 말이지.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되겠고, 생활도 엉망이 될 것이고....한참 심란한데 딸에게서 문자가 온다.
"엄마. 속 상하셔서 못 주무실까봐.... 우리 엄마는 치매 안 올 거예요. 저도 맨날 까먹고 그래요. 맘 불편하게 갖지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 고맙긴 하지만 요새로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심심해서 장난 좀 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