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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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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대로만 살다가


BY 만석 2023-02-01

쥐뿔도 안되는 것이 남들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은가 보다.
멀쩡하던 육신이 늙으면, 그래서 새삼스럽게 생겼다는 질병은 정말 반갑지 않다. 이제 껏 잘 살았고 살 날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대로만 살다가 조용히 갔으면 좋으련만 내가 무슨 복에.......

고혈압과 백내장이 앞을 다투어 다가왔다. 아직은 아니라고 앙탈을 부려본들 대수랴.
그래도 어쩌랴. 이겨 낼 수만 있음 수를 써서라도.... 방법이 있으니 대처하는 수 밖에.
그러구 보니 이만큼 산 것도 많이 살았다고 자책하던 것도, 속이 보이는 소리로고.

칼자루 쥔 손은 병원이고 나는 이제 순종하는 수 밖에. 마음 같아서는 명절을 지나고 수술을 하고 싶은데, 힘 없는 군상이야 병원의 스케줄을 따를 수 밖에.  애시당초에 내 바람 같은 건 물어도 보지 않더니, 멋대로 명절을 이틀 남겨 두고 수술을 하자 한다. 해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간?

수술은 진즉에 했어야 했는데 그도 도통 의사의 입맛대로다. 한쪽은 수술을 한 지가 아마 육 개월은 지났나 보다. 자주 넘어지는 원인이 두 눈의 각도가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수술을 하고서도 병원의 정원에서 다시 넘어졌으니 그도 아닌가 보다.  휴~. 내 무릎은 무쇠로다. 아프긴 해도 뼈는 별 탈이 없나 보다.

또 수술비니 검사료니 한 두푼이 아닐 터인데...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어쩌누. 차라리 저들이 모르는 척하면 영감이 경비를 쓸 터인데. 내가 병원비 걱정을 하면 아이들은,
"네 집에서 1/ n하면 얼마씩 안 돼요."하지만 모두가 요새같이 살기가 어려운 때니 시어미가 아니 어미라도 밉겠지.

힘 없는 백성이 어쩌겠는가.  그래도 어른이라고 며느님들이 차례를 거르자 한다. '덕분에 며느님들은 명절을 수월하게 본내겠구먼.' 싶어서  바득바득 우기지도 못하겠더구만. 영감이나 섭섭하겠지 ㅉㅉㅉ. 나도 차례를 거르는 건 싫다. 내가 효부라서가 아니라, 영감이 차례를 잊을 때까지는 기분을 맞춰 줘야하니까.

 ㅎㅎㅎ. 막내사위는 현명한 여우다. 이제 결혼 10년을 맞으니 장인 기분도 제법 맞출 줄 안다.
"내일은 아버님 모시고 양주나 다녀와야겠군."
이래서 영감이 양주에 모신 시부모님의 영전엘 다녀왔다. 허긴. 며칠 후면 시어머님 제사다.

영감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도 영감도 더는 아프지 말고, 이제는 요대로만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이만하면 잘 살았지 않은가. 이젠 서러울 녀석들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