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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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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는 영감


BY 만석 2023-01-14

그 옛날엔 179cm가 너무 큰 키였더란다. 그래도 180cm인 친구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자기도 180cm라고 우기고는 했더라지. 허긴. 내 친구들의 키가 작은 신랑보다는 보기에 나아 보이기는 했지. 남보다 나아보이는 것보다 더 다행인 것은, 내 아들들이 영감을 닮아서 큰 키를 가져, 남들이 보기에 썩 좋다하는 소리를 듣는 게 내 자존심이기도 하다.

허나 아들들과 달리 영감의 키가 자꾸만 작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 키가 작아진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서....;그렇다니 어쩌랴. 이제는 영감의 키가 잘 보아주어야 177cm라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작아진 대로도  보아 줄 만은 하다. 아직 등이 굽지 않았으니 키도 봐 줄만은 하다는 말씀이야.

그런데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영감의 키가 작아젔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매사의 모든 일에, 영감이 자신감이 없어지더라는 말이지. 그 높은 당신의 콧대를 닮은 고집은 다 어디로 갔는지. 원래도 누구와 다투는 일은 절대로 만들지 않는 양반이지만, 이제는 절대로 우기는 일 조차도 만들지 않는 영감이 차라리 가엽다.

내 영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 지하 방에 세 들어 사는 영감님이 아들과 다투는 소리가 났다. 영감은 왜 아들에게 큰소리를 못하는 지 내  속이 탄다. 분명히 옳은 소리를 하다가도 아들이 지나치게 우기면 슬그머니 주저앉는다. 꼴같지 않은 내가 들어봐도 그 영감은 분명히 옳은 말을 하던데 말씀이야.  옆방에 사는 사람들도 영감의 말에 힘을 실어주니, 영감이 박박 우기면 이길 승산이 분명한데 말이지.

방에 들어와서 공연히 내가 잔뜩 부은 목소리로,
"어째서?"냐고 물으니, 내 영감이 웃으며 말한다.
"아들이 알아들었나 보지 뭐. 아니면 영감이 자기 아들을 이겨서 뭐하겠나 싶었나 보지."

하지만 내 집에서는, 내 영감이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는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영감이 아이들 우위에 서야 가정의 질서가 선다. 어쩌자고 저렇게 아들이 아버지를 이겨 먹으려고 하는고. 보기에는 아들이 그리 막 되어 먹은 것 같지는 않던데.... 글쎄다.

내 마음을 읽은 영감이 말한다.
"이제는 아이들이 아는 게 우리들보다 많아서, 애들하고 맞서면 안되지. 지는 것보다 대적하지 않는 게 낫잖나.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다 똑똑해요."

그렇겠다. 이젠 집에만 들어앉아 있으니.....  어느 녀석이 우리 늙은 이보다 못하겠냐는 말이지. 이제는 아이들 뒤에 서서 나서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다. 나는 과히 못된 녀석들을 두지 않았으니, 공연한 걸로 고집을 피우지는 않을 터. 또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이제 자식을 이겨서 무엇하겠느냐는 영감의 말이 백 번 옳다. 이제 지하 방도 다행히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