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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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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가다


BY 귀부인 2022-12-16


이틀 전 남편이 시골로 내려갔다.

큰 아들 언제 내려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시어머님 때문에 마음이 불편 했는지,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도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내려 간 것이다.


수술 이후 무려 3kg이나 빠진 남편이 걱정되어 예정된 수업이 끝난 후 영등포 역으로 향했다. 금요일 낮 시간이라 예약을 하지 않아도 당연이 빈자리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3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의 기차 여행이라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 조금 신경이 쓰였다. 다행이 젊은 아가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며칠 집을 비워야 해서 아침부터 집안 정리하랴, 짐싸랴 부산을 떨어서 인지 피곤함이 몰려와 단 잠을 잤다. 남편으로부터 저녁 준비를 해야 해서 역전에 나오지 못한다는 톡이 와 있었다. 걸어서 갈 수도 있는 거리지만 추워서 택시를 탔다.


시댁에 도착하니 김치찌개 냄새가 집안 가득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있는 남편이 어찌나 낯설던지, 어머니 덕분에 남편이 해주는 음식 상을 받게 될 줄이야! 결혼 이후 남편이 해주는 음식을 먹어 본 게 언제 였던가? 신혼 때 감기 몸살 난 적이 있는데 맹물에 밥을 넣어 끓여 준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다. 엄지척하며 앞치마 잘 어울린다고, 찌개 냄새 좋다고 칭찬을 해주니 입꼬리가 올라 갔다.


부산한 소리에 방에서 tv를 보시던 어머님이 거실로 나오셨다. 미장원을 다녀 오셨나 파마를 한 머리가 단정했다. 도톰한 꽃무늬 셔츠에 분홍 조끼를 입고 계시는데 건강해 보이셨다.

"아이구, 어머니 이뻐지셨네."

"하하, 늙은이가 그렇지 뭐, 이뻐지가디?"

"어머니, 10년은 젊어 지셨네요. 큰아들이랑 있으니까 행복 하신가 봐요?"

"그렇지, 좋지, 자식이 있시야 혀. 이래서 아들 두는거여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 볼까 하다 시어머니 눈치가 보여 남편을 거들었다. 한 상 잘 차려진 밥상을 마주하고 함께 밥을 먹는데 어머님이,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여자는 혼자서도 잘 살지만, 남자는 혼자 못 산다고 하시며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머니 서울 우리 집으로 가실래요?"

"아녀, 내가 우리 집을 놔 두고 너이 집에 왜 가? 센타에 친구도 많고 한디."

"어머니, 서울에도 센터 있어요. 서울서 센타 다니면 되죠."

"아이 싫어, 안가, 안가, 서울가서 답답해서 못 살아, 센타 친구들도 다 그려. 아들네 집에 절대 가지 말라고, 공연히 눈치밥 먹지 말라고. 내 집서 내 맘대로 하고 살어야지."


치매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게 어머니는 똑 부러지게 말씀 하셨다. 요지는, 나는 절대 서울 안가니까 며느리인 네가 내려 오라는 말씀을 에둘러 하신 거였다. 마음 같아서는 남편을 설득해서 어머님 모시고 서울로 같이 가자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치매 환자들은 살던 곳을 벗어나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시골로 내려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꼭 해 보고 싶었지만 환경이 여의치 못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어머님의 바램대로 해 드릴 수 가 없다.


내가 좀 더 자주 시골로 내려 오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남편이 스스로 몸을 잘 챙겨주길, 어머님이 큰아들이랑 행복하게 오래 사시길. 

며칠 동안 건강하신 시어머님과, 다정해진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