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373

임신 헤프닝


BY 귀부인 2022-12-12

"아니, 이게 무슨 꿈이람!"
새벽 6시, 잠에서 나를 벌떡 깨우는 너무나 선명하고 황당한 꿈에 놀라 곤히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여보, 나 방금 꿈을 꿨는데 말이야, 친정 엄마랑 아버지 산소 옆에 있는  복숭아 밭에서 복숭아를  따 먹었거든. 근데  글쎄, 숟가락으로 맛있게 박박 다 긁어 먹고 보니까 이상하게 씨가 없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태몽인 게 분명해 ."
비몽사몽간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남편이 돌아 누우며 한 마디 했다.
"씨가 없는 거 보니까 딸이네."

년 연생 두 아들 녀석을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이들을 이뻐 하면서 키우지 못했다.  너무 힘이 들어 언제 얘들이 커서 내가 해방되나 하는 생각으로 지친 하루 하루를 보냈다. 아이 키우는 잔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부터는 셋째에 대한 욕심,  더 늦기 전에 딸 아이를 하나 낳아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한테 갖은 애교와 압력을 넣어 보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두 아이 키우기도 벅찬데 무슨 소리야, 두 아들 녀석이나 잘 키워야지."
사실 맘만 먹으면 남편 몰래 일을 확 저질러 버릴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선뜻 그럴 수 가  없었다. 남편에게 괜히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 하나 잘 키우기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행여 행운처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던 차에, 그날 새벽의 꿈은 내 희망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야, 맞을지도 몰라.'  반신 반의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빈 속에 마시던 꿀 맛 같은 커피 한 잔부터 끊었다.

꿈을 꾼 지 이 주일 정도 지나자 으실 으실 춥더니 감기 몸살이 왔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차마 먹지를 못했다. 온몸이 어찌나 아프고 열이 펄펄 끓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그런 나를 보고 둘째 아들 녀석이 겁먹은 얼굴로 침대 머리맡에 앉아 '엄마 죽지마 .' 하고 울먹였다. 그래도 약을 먹지 않고 버텼다. 꼬박 3일을 앓고 나선 왠지 확신이 섰다. '맞어, 임신 초기 증상 중 하나가  으실 으실 추우면서 감기가 오는 거였지 아마?'

손님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는 괜히 가슴도 커진 거 같아  확신에 차서  남편한테 말했다.
"여보 나 임신한거 같애, 태몽도 그렇고 감기 증상에다가 가슴도 빵빵 해졌어."
피식 웃으며 무슨 농담을 하냐던  남편이 정색을 하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이야? 낳을려면 진작에 낳았어야지, 당신 나이 생각하고 내 나이 생각해 봐. 나 못 키워."
남편은 임신이 아닐거라며  왜 지금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도 낳으면 다 키워."라는 한마디로 정리를 했다.

하지만 내 맘도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사오정 시대에 남편이 용케 정년까지 버텨 준다면 두 아들 녀석은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겠지만, 막내는 독립할 나이가 되지 못할 것 이었다. 막 흰머리가 한 두개씩 나던 때라
'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이야. 아이도 나이든 엄마는 안 좋아 하겠지.'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하루 하루 마음이 불안했다.

임신 일거야, 아닐거야 , 기분이  좋았다가 걱정도 되다가.
나 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말로야 셋째는 절대 불가를 외치지만 막상 임신이 확실시 되면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고 보니 매일 주문처럼 말하곤 했다.
"아니야, 상상 임신이겠지, 아닐거야."

드디어 손님이 올 날이 되었다. 하루 종일 불안한 맘으로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막상 온 마음으로 바래 왔건 만 이제 현실이다 싶으니 뛸 듯이 기뻐야 할텐데 더럭 겁이 났다. 내가 과연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딸이기나 할까?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여보, 어쩔 수 없어. 당신 한텐 미안 하지만 잘 키워 보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겨우 하루 지난 걸로 단정 하긴 어렵잖아."

그날 밤, 뒤척 뒤척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는둥 마는둥 하는데 새벽에  손님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 그 순간의 실망감과 안도감의 교차란.... 자는 남편을 깨워 임신이 아니라 보고하자 남편은 무지 기뻐하더니 그런데 왜 서운한 맘이 들지? 하며 내 손을 꼭 잡았다.

20 여년 전 내 임신 헤프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가짜 태몽 꿈을 꾼 이후로 두 아들 녀석들에게 사랑을 쏟으며, 셋째를 갖겠다던 내 소망을 완전히 포기했다.

최근, 방송에서 딸들이 아빠한테 애교 피우는 장면을 보면서 부러워 하던 남편이, 우리는 왜 딸이 없지? 하길래  셋째 불가를 외치던 사람이 누군데 그러냐며 쏘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