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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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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BY 귀부인 2022-11-21

역할


귀국 후 맞이하는 첫 명절이라 추석 일주일 전에 시댁으로 내려 갔었다.

늦는 이유 설명은 없이, 동서는 추석 전 날 저녁 늦게야 온다고 시동생을 통해 연락을 했다. 그동안 자기 혼자 힘들었으니 형님도 혼자서 한 번 고생해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괘씸하다는 생각보단 그럴 수 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서는 외식 문화가 발전해 집으로 손님을 초대 하는 일이 드물지만, 한국 음식이 귀한 외국에서는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많았다. 현지 음식 먹느라 고역 이라던 출장 오신 분들, 아이들 친구,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하여 한국 음식을 대접하곤 했다. 제사 음식을 혼자 차려본 적이 없긴 했지만 주부 삼십년 내공이 있어 음식 장만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제사 음식이 남아 냉동실에 굴러다니지 않게 식구들 먹을 만큼만 할 생각이어서 동서가 오든 안 오든 큰 부담이 없었다. 그래도 구색은 갖추어야 해서 삼색 나물과 3가지 전을 구웠다. 음식 하나를 해도 모양이 예뻐야 하고, 크기도 가지런해야 하는 나는 속도가 느리다.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 불 앞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끝내고 나니 저녁 늦게 온다던 동서가 왔다.


"아주버님 , 형님이 부엌에서 일하시는데 tv만 보고 계시면 어떡해요? 도와 주셔야죠!"

"아, 장보고 힘쓰는 일은 제가 다 했어요."

기습 공격 당한 사람처럼 깜짝 놀란 남편이 당황해 하며 동생댁에게 항변했다.


저녁 늦게 온다더니 왠 일로 일찍 왔냐는 물음에는 대답도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생선 손질을 했다. 조용조용한 나와는 달리 성격이 활달하고 할 말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동서는 음식을 하는데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했다.


추석날 아침, 제사를 지내고 동서는 곧 바로 친정으로 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명절에 찾아 갈 친정이 없어 슬펐다. 그동안은 외국에 있어 그려려니 했는데 한국에 와서 명절을 맞고 보니 엄마의 부재가 새삼 가슴 시렸다.


점심을 먹은 후 집 안팍을 청소하고 잠시 쉬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사가 없어 한가해 남편과 산책중이라던 친구는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얘, 너는 이제껏 한 일이 없으니 이제부터 고생 좀 해야지.' 하는데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올라왔다. 도대체 뭘 근거로 내가 한 일이 없다는 건지 따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여러 자식이 있어도 자식마다의 역할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친정의 경우 딸 세 자매의 역할이 다 달랐다. 듬직한 큰 언니는 살갑지는 않았지만 친정 엄마를 모셨고, 나는 용돈 담당, 작은 언니는 365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걸어 엄마의 말 동무가 되어 주었다. 각자 처지와 형편에 따라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엄마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시곤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언니들이 채워 주어 감사했다.


시댁에서도 나는 시누든, 시동생이든 각자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외에 살기 때문에 해드릴 수 있었던 일을 했고, 내가 해야 할 역할에 나름 충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친,인척들을 비롯해 친구마저 이제부터 고생 좀 하길 바라는 듯한 말을 할 땐 마음이 좋지 않다. 나 뭐 해 드렸어요, 뭐 해 드렸어요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한국에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 하면서 살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