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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이었나


BY 만석 2022-09-04

영감이 드러누운 지 오늘로 한 달하고도 스무 날.
제 풀에 풀렸는지 이젠 그만하다. 큰 병원 응급실을 돌고 싶었던 내 안달도 사그라졌다.
이제 화장실 출입은 혼자 해결했으면 했을 때쯤, 영감은 용케도 내 마음을 읽어주었다.

이제는 쓰레기통 정리도 좀 해 주어도 될 법하다고 눈치를 살필 때쯤, 영감은 용케도 재횔용쓰레기를 분리 수거해 주었다. 강아지 밥도 전처럼 좀 챙겨주어도 좋겠는데...영감은 그 즈음 강아지 먹이를 챙겨주었다. 참 요상한 일이다. 어쩌자고 내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읽어내더란 말이냐.

옥상의 화초에 적당히 물을 먹이는 일도, 이젠 좀 시켜야겠다고 벼르던 차에 당신이 먼저 조루를 짚었잖은가. 마당에 뿌려진 감나무 잎은 언제부터 말끔하게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저녁이면 재활용봉지를 대문 밖에 내다 놓고, 일반쓰레기는 월요일에 내 놓고....

명 짧은 사람은 기다리다 간다더니, 내 영감은 명이 길어서 예약일을 넘겼나 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고 싶은 검사를 원대로 하고 일각이 여삼추처럼 기다렸다. 전적이 있으니 분명히 MRI에서는 큰 병이 나타나겠지 하고 지례짐작을 했으나, 정작 의사의 진료는 체 5분을 넘기지 못한다.

"퇴행성 관절염이 급성으로 왔었고요. 검사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으십니다. 수전증은 여기 약 하나가 부작용이 있었던 듯합니다. 약만 바꾸시고 무리하게 운동을 하지 마세요"
'아니~!. 이 영감이 생전에 안하던 옴살을 한 겨? 내 속을 그렇게나 썩이더니 별 일이 아니라구?'

괘씸한 마음이 든다. 내 속을 그렇게도 썩이더니... 한 발자욱도 못 걷더니! 화장실 출입도 못하더니.
아니, 아니. 별 탈 없이 털고 일어나 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옴살은 하지 않는 위인이다. 그럼 뭐여? 그래. 큰 병으로 가려다가 내 기도 덕분에 그만 한가?
 엄살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