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2일-바람이 먼저 안다는 처서
음력 칠월 초하루.
오늘은‘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
여름의 끝.
펄펄 끓는 가마솥 늦더위.
하지만 바로 이 찜통 더위에
곡식들이 튼실하게 여문다.
벼 낟알 하나, 밤 한 톨, 도토리 하나 속엔
뜨거운 햇살 한 줄기,
“우르릉 쾅!” 천둥소리 한 자락,
먹장구름 한 조각, 새와 바람 소리,
사람의 땀방울이 조금씩 들어 있다.
좁쌀 하나에 온 생명과 온 우주가 들어 있다.
요즘 시골에서는 고추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잘 익은 열매 위로 뙤약볕이 가득찬다.
농부들은 혹 소나기라도 내릴까
틈틈이 하늘을 점검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햇볕에서 바짝 말린 올해 태양초는
지난해보다 품질이 더 좋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올여름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주부들에게 건고추 구입은 중요한 ‘연례행사’이다.
매콤한 식탁을 책임지는 든든한 ‘무기’니까.
가랑비가 잠시 멈춘 사이 힐끗 바라본 하늘은
어느새 한 뼘 더 높아졌다.
여름 내내 어깨를 짓누른 더위도,
뒤통수에 송곳처럼 내리쬐던
햇볕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입추(立秋)의 바짓가랑이까지
붙잡던 더위의 기세도 꺾인다는 처서(處暑).
고통스러운 여름은 이미 끝나고
나무도 하늘도 저만치 자랐는데,
미욱한 나만
못난이처럼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