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의사가 되기 전 엄숙한 마음으로 인류봉사를 다짐하며 하는 선서의 내용 일부이다. 의사는 선서하면서 약한 환자를 가엾이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새길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사는 환자로부터 존경을 받고 스스로는 위엄을 지닌다.
5월 19일 오후 4시 20분에 일어난 사고는 내게 악몽이었다. 어머니 집의 뒤꼍 석축에서 자갈이 깔린 마당으로 떨어지며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 수술하기 전 마취 상태처럼 몽롱한 몸을 겨우 일으켜 일어나 앉으려는데 왼쪽 손목이 너무나 아파 쳐다보니 손목이 틀어져 있었다. 순간 부러졌구나? 하는 생각에 병원을 가야겠기에 남동생에게 전화하니 안 받는다. 119를 부를까? 잠시 생각하다가 다친 손이 왼손이라 오른손으로 운전을 해서 12km를 내려왔다.
집에 도착해 오기로 한 남동생을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조차 무시무시한 통증에 몸을 떨었다. 남동생의 차를 타고 대로변을 따라 내려가다가 O.K 정형외과란 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에 가서 이름을 대고 부러진 것 같다며 손목을 보여주고 접수했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잠시 후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더니, 골다공증 검사를 하자고 한다. 지금 골다공증 검사가 문제가 아니고 부러진 손목을 고쳐서 안 아프게 해 달라고요. 하니 “ 골다공증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서요” 한다. 아픈 걸 먼저 해결해 주세요. 순서가 틀렸잖아요. 했더니 “ 아 네!” 하더니 저쪽으로 가버렸다.
잠시 후 다른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오더니 또 골다공증 검사를 하자고 한다. 벌떡 일어나면서 ‘사람 죽이겠네.’라며 일갈하고 그곳을 나왔다. 남동생의 차를 타고 길을 건너는데 ‘현대정형외과’란 간판이 보였다. 병원을 들어서 손목을 보여주니 바로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손목이 그냥 부러진 게 아니라 여러 조각이 났다며 내일 의뢰서를 써 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서 수술하란다. ‘수술 안 하면 왼손은 영영 못 씁니다.’라고 하더니 간호사를 불러 손목을 잡게 하고는 양 끝을 늘려 뼈를 맞춰주는데 통증이 대단했다. 반깁스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뼈를 맞춰만 주었을 뿐인데 통증이 반으로 줄었다.
다음날 의뢰서를 들고 강대 병원을 가니 원무과 직원이 환자가 많아 오늘 진료가 될지 모르겠다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몇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보며 5일 후로 수술 날을 잡았다. 수술 후 회진을 온 의사가 손목이 너무 산산조각이 나서 맞추느라 힘들었다. 하면서 혹시 골다공증이 있냐? 묻는다. 3년 전 어깨 통증으로 무척 고생했는데 그때 춘천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병원까지 갔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무렵 지인이 O.K 정형외과를 추천하길래 갔더니, 골다공증 검사를 하자며 만 65세 미만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데 괜찮냐 묻기에 아픈데 그게 대수냐며 그냥 했다. 그때 골다공증 수치가 -2.8이 나왔는데 이 나이에 이런 수치는 드물다고 하며 뼈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다.
골다공증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도대체 그 수치가 어느 정도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공부하니 그 수치는 70대 후반의 수치였다. 그리고 몇 번 더 방문해 주사를 맞아도 통증이 안 나아서 삼성 신경외과를 갔다. 거기서 어깨에 석회가 좀 있고 염증도 심하다. 해서 주사를 맞다가 물어봤다. O.K에서 골다공증 수치가 높다고 했는데 그것도 어깨통증과 관련이 있느냐? 물으니 의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우리병원 기계가 들여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한번 해 보실래요? “하기에 거기서 또 했더니 골다공증 전 단계로 나왔다.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며 O.K를 안 갔더니 그 후 O.K에서 전화도 오고 문자도 왔지만 다신 안 갔다. 말을 끝내며 어째서 병원마다 수치가 틀리는지요? 물으니 ” 그럼, 여기서 한번 해 보실래요? “ 하기에 내친김에 또 했다. 결과는 삼성과 같은 전 단계로 나왔다.
퇴원 후 지인을 만나 손목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다가 또 다른 나의 오류를 발견했다. 다치던 날 119를 부르지 않고 입술을 덜덜 떨며 자가 운전으로 내려왔다는 내 말에 그 사람이 의아한 듯 나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왜? 사람이 그렇게 미련하냐며 119를 불렀으면 고통은 훨씬 덜했을 거라 말했다. 전문가들이 부목을 대서 일단 안전하게 이송했을 것이고 병원 측과 협의하여 도착 시 의료진이 기다렸다가 바로 필요한 처치를 해 주었을 거라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자가 운전으로 내려오는 동안 고통스러워서 손목을 마구 움직였고 병원 두 군데를 거치면서 통증은 보태졌다. 다음 날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진료를 보고 5일이나 기다렸다 수술했다. 슬픔도, 아픔도 참는 게 익숙했고 참는 게 다른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란 구시대적 발상이 통증을 키웠고 회복을 더디게 했다. 때론 적당한 엄살도 필요한 것인데 자기 오판이 화를 키웠다. 몸도, 마음도 아플 때는 아프다. 슬플 때는 슬프다. 표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덜 받는다는 걸 아프면서 배웠다. 자기표현에 능한 사람이 대우도 받는다.
다친 지 두 달이 넘어 이제는 손목도 어느 정도 좋아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가야하고 1년 후 손목에 박힌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했다. 3년 전 어깨통증 때부터 뼈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었는데 이번에 다치면서 부러진 손목 사진을 보니 손목뼈가 텅 비어 있었다. 의사도 그 부분을 가르치며 텅 비어 있어서 콘크리트 시술을 했노라 설명했다. 이제부턴 뼈를 채우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어느 병원을 찾아가야 양심적인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진정성 있게 위로하며 환자의 입장을 배려한 진료를 해 줄까? 내가 정녕 그런 의사를 찾을 수는 있을까?
O.K 정형외과는 진료비가 비싼 골다공증 검사를 남발하면서 연관되는 주사까지, 맞기를 권했다. 환자가 부담하는 고액의 진료비에 눈이 어두워 환자를 자기의 돈벌이 도구로 취급한 것이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 한들 부서져 여러 조각 난 손목을 안고 들어온 환자를 응급으로 뼈를 맞추어서 고통을 줄여준 후 골다공증 검사를 하자고 해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환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고액의 검사만 종용하는 병원과 그 병원의 의사를 의사라 말 할 수 있을까? 이제 나는 그런 가짜의사 말고 진짜 의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어딜 가야 진짜 의사를 만나 뼈를 채우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진정 알 수 없으니 지금 나는 참으로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