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지금껏 지키려 노력해 온 것이 몇 가지 있다.
가끔은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한 가지를 먼저 소개해 보자면 , 남편이 퇴근 할 때는 항상 집에 있기다.
가이드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개인적인 약속이나 볼 일은 가능하면 남편 퇴근 시간 이전에 끝마쳤다. 현관문 열어주며 반가이 맞아주기와, 허기진 배 때문에 짜증부리지 않도록 미리 저녁 준비를 해두는 것도 필수. 이건 어디 까지나 내가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남편이 집에 오는 걸 즐거워 하게 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회사에서 지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집에 와서 편안한 안식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래서 집안 일이며, 아이들 교육까지 복잡한 일이 있어도 출근 하는 남편 붙잡고 불평하거나, 퇴근한 남편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있으며 집안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할지라도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집안 정리를 했다. 완벽하게 깔끔한 집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집에 들어 왔을 때 정리되지 않은 물건이나 옷가지들이 나뒹굴어 도깨비 집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정리를 했다. 피곤한 모습이야 어찌할 수 없었지만 차림새마저 그럴 순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 늘어난 목 티셔츠, 고무줄 반바지를 용납하지 않았다.
해외에 살다 보면 언어적 문제 때문에 대부분 남편을 대동해 아이들 병원이며 학교상담을 다녀야 하는데 보통은 업무 시간이라 남편에게 부탁하기 보다 스스로 해결을 했다. 혼자 택시 타고 다니며 죄충우돌 하다 보니 덕분에 현지 언어에 빨리 능숙해졌다. 물론 힘들어서 눈물, 콧물 흘린 적도 많았지만 대신에 남편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아이들이 독립을 했지만, 빈둥지증후군으로 힘든 적은 없었다.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뒤치닥거리로 아이들과 남편은 성장 했지만 나는 소모 되고 뒤쳐졌다며 슬퍼한 기억이 없다. 무탈하게 독립을 해준 아이들과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일 할 수 있었던 남편에게 나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색을 낸 적은 있어도.... 요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맞벌이는 당연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 외벌이로 지난 30년을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제 남편의 퇴직으로 살던 장소도,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남편은 그동안 일 열심히 했으니까 무조건 쉴거야를 외치며, 당신이 나 먹여 살려야 된다며 뼈있는 농담을 했다. 당신, 그동안 우리 식구들 위해서 너무 애썼다고, 이젠 내가 일 할테니 걱정 말고 맘 편히 쉬라고 ,멋지게 폼나게 말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일은 고사하고 얼굴과 언어는 같아도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나는 서울에서 새롭게 적응 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마치 해외 첫 발령 받았을 때처럼 아는 이웃 하나 없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고 멀리 ,친척도 친구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젠 전업주부직을 내려놓고 집 밖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싶다. 나도 궁금하다. 1년 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을지, 그리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