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물도 아니고 칠십을 넘긴 지도 옛날인데, 합방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 어색하고 부끄러운고. 더욱이 외간 남정네도 아니고 내 영감하고의 일인데 말이다.
아무튼 합방이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내 뱉을 말이 아닌 건 사실이다.
"크르럭 큭큭 덜커덩 덜컹"
누가 들으면 고장이 난 삼륜차 바퀴의 구르는 소리나, 녹이 쓴 경운기가 논둑길에서 쓸어지면서 내는 비명 소리쯤으로 듣겠으나, 이건 내 영감이 잠 자리에서 내는 코를 고는 소리다
견디다 못한 내가 운 좋게 이사를 하고 여유방을 얻게 되어, 쾌거를 부르며, 이름하여 나만의 방이라 명명하고 딴살림(?)을 차렸겠다? 영감이야 속으로 불만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딱히 지은 죄가 있으니 묵인을 하고. 허긴 이 나이에 영감의 불만을 이겨 먹지 못할 바도 아니질 않는가.
이렇게 각방 살림을 시작한 지가 몇 년이 지났다. 같은 방을 쓸 때도 내 멋대로였지만, 이젠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이 정말 내 멋대로다. 한쪽 벽을 온통 아이들의 사진을 걸고, 손주들의 사진도 현상을 해서 줄줄이 서열대로 도배를 하다 싶이했다. 학사모를 쓴 녀석부터 강보에 싸인 녀석까지.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그도 복이라고 자화자찬에 홀로 행복했는데. 와중에 영감이 병을 얻었다. 어느 날.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나던 영감이 걷지를 못하는구먼. 한 발자욱도 내 디디지를 못하니, 이건 낭패가 아닌가. 발등까지 퉁퉁 부어서는 화장실 출입도 어려워졌다.
생각다 못해 119를 부르고 삐뽀 삐뽀. 가깝기도 하고 영감 차트가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내려 달리지 않았겠는가. 예약이 되어 있지 않으니 응급실로 갈 수밖에. 그러나 응급실은 구경도 못하고 되돌아섰다. 미리 연락을 받고 마주나온 의사는 막구가내였다. 죽고사는 병이 아니면. 환자는 밤새 고생만하다가 내일아침이면 퇴원을 하게 된다니....
결국 다음날 아침 다시 119를 불러 대원들이 동원이 되고, 영감을 업어서 계단을 내려왔다. 동네 병원엘 갔으나 이 노릇을 하루 이틀이 아니고 어쩌랴. 결국 입원을 했다. 시절이 하 어수선하니 병실이 많이 비어있었다. 영감을 수발하자 하니, 아이들 성화로 나도 병원에 생으로 입원을 하고 말았다.
한 달의 입원을 끝내고 퇴원을 하자 하나 영 내 맘에 내키지를 않는다. 큰 병원에 예약을 했으나, 그것도 운이 좋아서 한 달 뒤에나 차례가 온단다. 그래도 규칙이 그러하니 퇴원은 무조건이라 한다. 맘 같아서는 큰병원에 갈 때까지 있었으면 싶은데 그것도 위법이라니 어쩌겠는가..
집으로 돌아오니 각방 쓸 일이 난감하다. 밤에라도 수발 들 일이 있으면 어쩌겠는가. 시집살이는 맡아 놓은 것이니 어쩌랴. 주말에 아이들이 오면 내 침대를 안방으로 옮겨 달라해야겠다.
"당신 침대를 이쪽으로, 이렇게 놓으면 되잖아." 영감이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반기는 내색이다.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요!"
에구. 괜한 소리를 했나보다. 그렇잖아도 말 수가 적은 양반이 앓으면서 말 수가 더 적어졌다. 아니, 키나 작은가. 건드리면 꺾어질 것만 같다. 그 큰 키로 벌써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불쌍한 생각만 든다. 나도 참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