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아르논 계곡)
요르단의 백신 접종율이 높아 얼마 전부터는 거의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입국시 PCR검사서 제출 의무 또한 사라졌다. 요르단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희소식일 듯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요르단에 뭐 볼게 있어 여행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중동 어디쯤에 있는 나라인 건 알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사막 대상이 오가던 왕의 대로를 품고 있는 요르단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으로 중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에는 11년 간 내전 중인 시리아가 있고, 동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그리고 서쪽에는 요르단 강을 마주 보고 이스라엘이 있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의 직계손이라 알려진 압둘라 국왕이 다스리는 요르단은 세계 3대 물 부족 국가 중 하나 이다. 농경이 가능 하려면 연 강수량이 최소 300mm는 되어야 한다는데, 요르단의 90% 이상 지역의 연 강수량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다, 대부분 광야 지역이라 농사를 지을 땅과 물이 부족해 식량의 자급 자족이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명랑하다. 손님 환대 문화가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친절하다.
해외 원조를 얼마나 많이 받아 내느냐에 따라 국왕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해외 원조를 받기가 쉽지 않다. 관광 수입 의존도도 상당히 높은데 그마저 막혀 있던터라 최근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요르단을 방문 할 최적의 시기는 3월이다. 유적지 관광 이외에, 덤으로 들판의 야생꽃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아르논 계곡을 지나 페트라로 가는 길은 가히 압권이다. 끝없이 넓은 들판에 샛노랑 꽃들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초록 밀 밭 사이로 군데군데 피어난 들꽃은 마치 흩뿌려진 눈처럼 새하얗다.
아주 뜨거운 7,8월을 제외하면 요르단을 방문하기에 나쁜 계절은 없을 듯 하다. 상당히 건조하기 하기 때문에 한 여름 낮 기온이 38도까지 올라 가더라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편이다. 바깥 날씨와 달리 집안은 그리 덥지 않아 에어컨을 트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 또한 일교차가 커(15도 정도) 한낮엔 더웠다 하더라도 해가 지면 서늘할 때도 많다.
요르단은 일반 여행객들도 많지만, 성지순례객들이 더 많다. 성지순례하면 대부분 이스라엘을 떠올릴텐데 요르단을 빼고서 성지순례를 마쳤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요르단 을 거쳐서 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독교인 일지라도. 나도 요르단에 오기 전에 성지가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느라 갖은 고초를 겪었던 모세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눈을 감은 느보산, 불의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던 요단강 세례터, 모압, 암몬, 에돔, 아모리족이 산 땅이며 신,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의 현장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요르단이 성지로서의 매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지순례 온 사람들에게 요르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페트라'요 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계 신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세계문
화유산에도 등재 된 페트라는,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에 등장한 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1.2km 바위 협곡( 시크)길의 끝에서 바위 틈새로 보여지는 나바테아인의 걸작을 보고,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천년 전의 모습에서 크게 훼손 되지 않은 알카즈네(파라오의 보물 창고) 앞에 서면 비싼 입장료에 대한 투덜 거림이 사라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나는 요르단의 최고 여행지로 와디럼을 꼽는다. 와디럼의 아름다움과 베두윈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비롯한 수 많은 영화 찰영지 이기도 한 와디럼은, 매 번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가는 시기에 따라 다른 감동을 준다. 손에 잡힐듯 가까이 흐르는 은하수, 별똥별, 뺨을 스치는 바람, 모닥불 냄새, 시시각각 밝기가 다른 보석같은 별들, 밤의 고요.... 왜 베두인들이 도시로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 오는지 하룻밤 만 지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행위 예술가라는 도올 김용옥씨 딸도 한 달을 머무르려 왔다가 와디럼의 매력에 빠져 1년 넘게 지냈다고 한다. 가끔 덥고, 모래 먼지 날리는데 거길 왜 가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감성이 아마도 모래보다 더 메마른 사람일 수 도....
안타깝게 최근 수년 간 와디럼에 에어콘이 나오고 수영장까지 갖춘 숙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형 숙소를 만들어 놓고 밤 늦게 까지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곳곳마다 등을 설치해 별빛을 즐기기 어려운 곳도 많다. 단체로 여행 와서 편하게 하룻밤 지내다 가려면 이런 숙소를 만나기 쉽다. 당연히 와디럼의 진가를 다 누리기 힘들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유 여행을 올 수 있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베두인의 삶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숙소를 잡으면 좋다. 해지면 자고, 해뜨면 눈뜨고,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 곳에서 힐링을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런 숙소는 가격도 싸고 텐트지기들도 순박하다.
(와디럼 광야)이 밖에 로마시대 도시 원형을 간직한 제라쉬를 비롯하여 재래시장 등 나름 볼 곳도 많고 음식도 저렴하고 맛있는 요르단 여행을 계획해 봄도 좋을 것이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이 되어 많은 여행객들이 요르단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들의 궁핍한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