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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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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도 量(량)이 있다


BY 가을단풍 2022-02-23

얼마 전 시아버지 49제가 지났다.
내가 사고를 쳤다.
지랄도 량이 있다.
드디어 내가 지랄이 난것이다.
49제를 끝낸 후 남편 형제들에게 일방적으로 선언 했다.
앞으로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낼테니 그리 아세요.
덧붙여 설명하자면 유교식 제사는 아들 형제들끼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남편을 비롯 시누이들이 난리가 났다.
부모의 마지막 인연을 곱게 지어놓고 남편 형제들을 향하여 싸움을 건 것이다.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편의 노발 대발 분노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누이들을 싸한 표정이 아른 거린다.

  이유인즉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사위가 세명임에 불구하고 아버님 영정사진을 들지 않았다.
제각기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분이 인생을 잘 살지 못하셨다.
그러다보니 피해를 입은 사람은 당연히 자식들이다.
자식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주었을뿐아니라,
특히 시아버지는 늘 사람을 미워했다.
타고난 성품이 그렇다보니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사위나 며느리다.
영정 사진을 들고가지 않겠다는 사위들이 이해는 갔다.
큰사위는 자기는 그런거 들기 싫어서 안 들었으며, 작은사위는 아버님 눈밖에 나서 돌아
가시기 직전까지 미워했으며, 막내 사위는 영정 사진을 들고 싶었도 그들 부부의 갈등이
있어서 별거중이었다.
이해는 갔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볼수록 괘씸했다.
어쩌면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나"다.
오래도록 미움을 받았으며, 돌아 가시는 날까지 생활비 계좌찍어 보냈으며
더구나 우리 친정 부모님을 대놓고 미워하셨다,
그러나 모든것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보듬었다.
한때나마  나를 사랑하던 시아버지,그리고  손주들을 사랑해주셨던 추억을 생각하며 지극 정성을 보여드렸다.

  공동묘지가서 물어보라,
어느 누가  완벽했는가?
곱게 만 지은 이별은 없다 해도 틀리는 말이 아니다.
아무튼 집안이 이리하여 냉냉하다.
부모님 가시는 길 그렇게 서운하게  보내드리고 제사때되어 하하호호 행복한 그들 모습이 보기 싫었다. 제사때인구가 젤라 많은 터인데 잘됬다.
그들은 자기들이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나는 싫어도 참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싫다.
요즘은 제사가 더 복잡해졌다.
코로나 시대가 외식도 못하게 되고 어디 갈데가 없으니
친정집 제사로 모이게 된다.
자식들 운전을 시키고 왕래하기도하고 때에 따라 손주들까지 대동하고 오게되며
심지어는 애완견까지 데리고 다니는 시대가 되어 있었다.
조카들을 생각하면 아릿하다.
그들이 낳은 손주들을 생각해도 아릿하다.
할미 할미하고 쏘다니는 손주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간이 녹을 물건이라면 벌써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참아야지.
나를 이길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나를 이기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제사는 형제들끼리 나누는 "정서"이다.
부모님 영이 어쩌기보다는 살아 있는 가족들끼리 모임을 갖는 것이다.
큰딸은 교회를 다닌다고 거부하고, 둘째딸은 아버지가 미워해서 거부하고, 막내는 자기
가정이 평탄하지 않아서 거부하고...이거는 정서의 나눔에서 '자격 박탈이다,'
어찌보면 사위들이 시아버지 영정사진을 들고가지 않아서 화가 난것 같지만
그것보다 가족끼리의 정서가 깨짐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좋은 건하고 싫은 건 하지 않는다 .'
나는39년 동안 하기 싫은 거 군말없이 했다.
애들 아빠가 싫었다.
얼마나 장남이 물렁 물렁하면 사위들이 이럴까?
화를 냈으면 남편이 냈어야 되건만 이사람은 나를 잡는다.
왜 수십년을 말없이 잘 제사를 모셔 왔는데 이제 와서 그걸 깨느냐는 것이 었다.
나의 설명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디테일하게 이말 저말할수가 없었다.
나이제 늙어서 못하겠으니
유교식대로 아들들끼리 제사를 지내고, 형제들끼지 일년에 2번,또는 4번 정도 모임으로
가자했다. 예전에는 제사때가 아니면 딸들이 친정에 갈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때나 친정을 오갈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부디 정서도 맞지않는 친정 제사를 지내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교회에 다니는 시누이님은 한번 시골에 오시면 부부가 함께 오셔서 며칠씩 있다
가신다. 그러나 부모님 제사에 절을 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고약하게도 나는 시누님이 좋다.
그러니 여자 형제는 모임으로 가지는 것인데 그렇게 노발 대발 하지 않아도 되련만.....
참고로 나는 친정집 제사를 지내러가지 않는다.
내가 제사에 참석하면 여자형제 네명이 함께 참석하고 그들 남편 그리고  서울에 있는 우리딸 셋과 조카들까지  참석하게 된다.
나는 오빠 아까워서, 올케 아까워서 제사 비용만 어김없이 송금한다.


요즘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반평생을 부모형제들 치닥거리로 살아온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를하고 있다.
아직도 내 지랄의 량은 끊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 지랄의 량이 많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