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김장을 버무려 넣으면, 굴밥을 지어 먹는 게 하루 건너 매일의 행사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시원찮은 마누라 덕분에, 나는 그만 두고라도 영감이 오늘에야 굴밥 맛을 보게 되었다.
워낙 소청이 없는 영감이니, 먹고 싶었어도 말을 하지 않았으려나?
"어~이. 이쁜(?) 마누라야. 제철이니 굴밥 한 번 먹고 지고."하면 어디가 덧난단 말인가.
말이 없으니 나도 무심코 겨울을 지나고 있었지.
아니, 내 얼룩진 면상이 그래도 부끄러운 건 알아서, 영감의 굴밥은 생각지도 못했네.
마침 아컴에서 <제철> 운운하며 굴을 들먹이자,
'아차차.' 큰 결심이나 한 듯, 어둑어둑한 저녁이 다 되어서야 마스크를 눌러쓰며 얼굴을 가린다.
며칠 쉬었던 거실에 박박 걸레질을 하던 손도 멈추고 마트로 나선다.
'어머나. 굴이 전복을 까놓은 듯 푸짐하네.' 굴밥은 잘잘해야 제격인데 말이지.
"잘잘한 굴은 없어요? 이건 밥에 얹어 맛 내기에는 너무 큰데...."
"동네가 후져서 작은 굴은 비싸서 갖다 놓지도 못해요." 이런 이런.
"좀 비싸게 받아도 국산깨 좀 갖다 팔면 좋겠어요."
"동네가 후져서 국산 깨는 갖다 놓지 못해요." 조금 전 기름집에 들러서 들은 소리다.
나는 씁쓸하게 웃음으로 생선 전을 나서며,
"후진 할매 갑니다."했더니, 주인장이 답 대신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며 허리 숙여 절을 한다.
마트를 나서니 사방이 컴컴하다.
후진 할미의 허한 마음을 알아보았는가. 저무는 해도 고개를 숙이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