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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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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엄마랑 기럭지가 같나요


BY 만석 2022-01-16

지하실의 한 세대가 오늘 이사를 온다. 이사를 올 때마다 나는 덩달아 바빠진다. 가스 요금이랑 전기 요금을 계산해서 주고받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이 삼일 전쯤에 계산을 해서 챙기면 좋을 것을. 그리하면 들고나는 한 쪽에서  불만하기가 십상이어서, 당일 치기를 해야 말이 없다.

오늘도 BO1호가 들고나기 때문에, 모퉁에 걸린 계량기엘 가서 전화기에 대고 계직원에게 숫자를 읽어주어야 한다.
"그냥 끊지 않아도 돼요 할머니." 전화를 끊고 기다리라는 내 말에, 친절하게도 '할머니'까지를 읊으며 상냥을 떤다. '이제는 꼼짝없이 할머니로구먼. 전화기 너머로 늙은이 냄새가 풍겼을까?'

생각과 함께 나는 그만 곤두박질을 치고 만다. 머리에 번쩍거리는 별들이 오락가락한다.
'아, 내 이마가 작살이 나는 게로구먼.' 그래도 전화기 속의 그녀가 기다린다는 친절에 , 다친 이마도 만져보지 못하고 모퉁이를 돌아 숫자를 읽어 주었지.

지하실쪽 마당과 우리 집의 마당 사이에는 얕으막한 세면벽이 서있다. 지금 생각하면 하등에 쓸모도 없는 손바닥만한 마당에 무슨 경계선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 담을 영감처럼 깡충 뛰어서 넘을 생각을 했으니, 주제를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게다.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이마가 아니라 무릎의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그냥 주저앉았지. 흐르는 핏줄기가 제법 굵기에 적은 상처가 아닌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신었던 버선을 벗자 버선 속으로 흘러서 고인 핏물을 확인하고는, '아~!  이마가 아니라 내 다리가 오늘 작살이 나는구나.' 라는 짐작을 한다.

그래도 계단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약간의 안도감을 준다. 마주 나오던 영감이 놀랐는지 그의 검은 눈동자가 회색이 된다. 아니, 놀란 내 눈에 영감의 눈이 그렇게 보인 것이리라. 제물에 놀란 게다. 아무튼 그 뒤의 일은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 뺨을 때리기에 눈을 뜨니 단골 정형외과의 침상에 누워 있구먼.

결국 나는 무릎 아래에 뭣인가에 깊히 찔려서, 피를 아마 한 대야쯤은 쏟았나 보다. 이마가 아파서 만져보니 달걀만한 혹이 불어나 있다. 급히 촬영에 들어가고, 뼈는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그나마 고마운 소식이다. 의사의 친절한 미소가 오늘따라 얄밉다.

다음 날에는 멀쩡하던 가슴이  아프다. 점점 더 아파온다. 웅신을 하지 못하겠다.
의사는 환자가 없던 터라 호제라 는 듯 갈빗뼈 3번과 4번이 골절이 됐다고 큰소리로 발표(?)를 했겠다? 그렇지 않아도 식구들에게 미안해서 죽을 맛인데 말이지. 정형외과를 단골로 다니다니 ㅉㅉㅉ.

다음 날에는 머리의 멍이 이마를 거쳐 왼쪽 눈 언저리를 지나서 뺨을 타고 흘러내려서, 그렇지 않아도 고운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만석이를 더 흉칙한 꼴불견을 만들어 놓는다. 아구~! 갈빗뼈는 경험상 3주는 지나야겠지만, 보이는 얼굴의 시퍼런 멍은 어쩔꼬.'.  아마 열흘은 더 걸릴 걸?!

출근을 한 큰아들은 제댁에게서 듣고는, 큰병원엘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요새는 작은 병원의 입원이 용이하다고 달래서 주저 앉혔다. 형에게서 소식을 들은 막내아들이 딱하다는 듯이 소리를 높힌다.
"엄마랑 아빠가 기럭지가 같나요?" 이건 유모인가 질책인가.

그리하야 만석이는 12월 23일에 입원을 해서, 새해 정월 보름에 퇴원을 했다. 영감의 생일에도 나는 얼굴이 창피스러워서 두문불출을 했고, 영감에게는 다리와 가슴이 아파서 도통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마안!" ''미안'^^"만 외쳤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