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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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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한다발


BY 그대향기 2021-11-13

남편이 힘들어하면 경주를 안 가려고 했다.
친정 부모님 두분 제사를 한날로 합치고 편해지기는 했다.
그래도 남편 건강이 늘 염려스러워 가자고 말 하기도 불편했던건 사실이다.
엄마나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도 아니고  거리도 먼데....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낮에 장거리 운전도 해야하는데
또 장거리 운전 그것도 야간운전을 하게 하자니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선뜻 가자고 하니 고마웠다.
친정오빠들 못 만난지도 여러해가 되기도 했다.
막내오빠야  올 해 여름에 우리 집까지 오긴 했었지만
다른 오빠들이야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바빴다.
둘째오빠의 건강이 위험수위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당뇨와 심장쪽이 응급실급이란다.

큰 맘 내 준 김에 가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수고하는 올케한테 줄 금일봉은 따로 준비했고
이틀 전에 도착한 예비사돈댁에서 온 철원오대미 햅쌀도 조금 준비했다.
우리가 쌀농사는 없다는 걸 아시고 일부러 이웃에 부탁하셔서
갖 찧은 철원오대미를 보내셨단다.
말린대추에 도토리가루며 돌복숭아효소,  오미자, 매실, 자두효소까지.

정성이 가득한 가을선물을 한가득 보내셨다.
일단 엄마아버지 제삿밥에 올릴 햅쌀만 좀 들어내고
마당에 활짝 핀 국화꽃 한다발을 만들었다.
두분이 참 꽃을 좋아하셨기에  딸이 가꾼 국화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국화향이 경주가는 내내 차 안을 향기롭게 했다.
오빠도 국화한다발을 제사상에 올리면서 참 좋네..그러셨다.

어쩜 철원오대미 햅쌀로 한 밥은 그리도 찰지고 맛있던지...
둘째올케는 밥만 먹어도 맛있다며 곱배기로 달라고 하고.
오빠들도 보통 밥맛이 아니라며 맛있게들 드셨다.
부모님께 마음 속으로 그랬다.
엄마아버지 막내 딸이 낳은   막내 아들 장가가요.
아들 딸 이쁘게 잘 낳고 무탈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지켜봐 주실거지요?

코끝이 찡하다.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애들 얼마나 사랑스러우실까.....
가난했지만 막내 딸, 하나 있는 막내 딸 안스러웁게도 사랑하셨는데.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이쯤 되니 아버지가 더 안타깝다.
젊디젊은 나이에 삶을 그렇게 허망하게 내려놔야했으니...

아버지의 한쪽 눈 실명은 회복할 수 없는 자괴감으로 아버지를 갉아먹었다.
현실은 냉혹했고
세상 그 어디에서도 아버지의 잃어버린 청춘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 비례해서 엄마의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무정한 세월은 칼바람을 몰고 가난을 안겨주었고
그렇게 아버지는 술로 찌든 간과 녹아내린 위장을 쓸어 안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물끄러미 젯상에 올려 둔 부모님 사진을 보는데
그래도 두분이서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싶으니 눈물이 났다.
두분 사진 옆에 급하게 구해서 꽂아 둔 물병 속의 노란 국화꽃에
어린 우리  막내를 안고 환하게 웃어주시던 엄마 얼굴이 겹친다.
막내  딸이 중학교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말없이 빙긋 웃으시던 아버지 얼굴도.
막내 딸이 이번 제사에 잘 왔다 하시는 듯.

제사를 좀 일찍 드렸다.
우리가 또 내려가야했으니 9시쯤 시작했다.
오빠들이야 다들 시내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멀어야 20분 거리다.
늦은 저녁을 먹고 되짚어 내려오는데 막내올케는 둘째 올케를 먼저 보내고
나중에 냉장고에서 뭘 자꾸 꺼내 놓는다.
고모야 이거는? 저거는?

오빠하고  둘이서 새벽까지 껍질을 깠다는 다슬기까지 냉동했다가 준다.
시장에 파는 다슬기는 다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사서 깠단다.
추울때 누룽지 끓여 먹으라며 볶은 누룽지가루까지 챙겨준다.
같은 동서끼리보다 시누이를 더 살뜰히 챙겨주는 막내올케가 고맙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나 안 계실 때나 한결같다.
안 갔더라면 준비한 올케가 많이 섭섭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