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은 아직도 다리를 절면서 걷는다.
그런데 시골엘 가야 한다고 서둘러 나간다.
왜냐고 물으니 다치기 전에 심어 놓은 고추가 궁금하다 한다.
궁금이야 하겠지만 고추는 버려도 할 수 없지.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시골로 나선다.
어머나. 저녁에 돌아오는데 제법 큰 고추 자루를 끌고 들어온다.
못 말려. 정말 못 말려.
힘들다 하면 마누라한테 좋은 소리 듣지 못할 터이니
끽 소리도 못한 채 자루를 푼다.
고추의 신수가 너무 멀쩡하다. 아주 잘 생겼다. 대견하다.
여름. 그 더위에 물 한 모금 받아 마시지 못하고도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고추는 어느 때보다 잘 컸다.
그런데 나는 도통 반갑지가 않다.
저걸 말리려면 내가 옥상을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할 것인가.
그래도 어쩌랴. 이왕에 받아 들었으니 싫은 소리도 못하겠다.
힘들게 수확해서 마누라 눈치를 살피는 영감이 안 됐다.
면허증도 반납을 했으니 아이들 차도 빌리자 못한다.
바쁜 아이들에게 SOS도 청하지 못하는 영감이다.
수확도 힘이 들었겠지만 끌고 온 게 용다.
아니. 그럼 김장은? 올해는 사서 먹자했더니 배추도 심을 겨? 참말로 못 말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