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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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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속을 썩이니


BY 만석 2021-08-09

지난 2일. 영감이 아침에 일어나더니 무단히 발바닥이 아프다고 도통 딛지를 못한다. 지난달 30일 대학병원에 정기점검을 다녀오던 길에 삐끗하기는 했어도, 이리 딛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데 말이지. Xray와 채혈검사만이라서, 나는 빠지고 며느님만 거니리고 다녀왔는데 말씀이야.

들여다보니 발등이 소복하게 부어있다.
"이렇게 생겼는데도 이제껏 말을 안하셨소." 워낙 말이 없는 양반이니 나무랄바도 아니다.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아마 30분은 걸려서,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엘 도착했나 보다.  

Xray를 찍으려니 기사가 원하는 각도를 영감이 만들어 내지를 못하고 퍽 고통스러워한다.  할 수 없이 일주일 뒤에 붓기가 빠지면 재 촬영을 해야겠다 한다. 약식 깁스를 하고 귀가를 하니, 화장실 출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워낙 엄살을 떠는 양반이 아닌데 아프긴 많이 아픈가 보다.

허허. 그러고 보니 집안 일이 몽땅 내 차지로세. 아침밥부터 집안 안팍 청소며 5개나 되는 쓰레기통의 정리도 내 차지이고, 세탁기 돌리기도 내 차지이다. 영감은 하는 일도 없이 삼식이 노릇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동안 영감도 하는 일이 제법 많았구먼.

막내딸아이가 주 중에는 바빠서 전화만 불이 나게 오더니, 오늘에야 시간을 냈다 한다.  도가니탕을 한 달 분을 주문해서 고왔다 하니, 눈물이 나게 고마운지고.
"엄마도 잘 자셔야 수발 드셔요. 엄마까지 병이 나시면 큰일이야요. 바쁜 우리가 큰일이라구요."

아항~. 그렇긴 하겠다. 내가 병이 나면 바쁜 아이들이 큰일이긴 하지. 우선은 아래층의 큰며느님이 힘이 들겠지. 그러고 보니 아래층 아이들도 영감의 와병을 알지 못하는구먼. 공연히 걱정들을 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았구먼. 아직은 내가 충분히 수발을 들 수 있으니까 말씀이지.

그런데 신기하다. 딸아이한테는 왜 연락을 했을까. 힘이 들면 가까이의 큰며느님도 찾을 법한데 말이지. 나도 잘못이긴하다. 그래서 가끔은 딸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 
"가까운 아들며느리 놔두고, 멀리 사는 딸한테다 얘기하고 싶으세요?"

딸의 소리도 그른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늦은 결혼을 하며 어미 곁에 오래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마흔이 다 되도록 딸은 내 카운셀러로 있었으니까. 그래. 이제부터는 나도 습관을 좀 바꿔야겠다. 그런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섭섭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딸아이의 마음도 좀 변했나?

암튼 영감의 깁스는 보름이 다 되어가는데, 4주는 더 기다리라 한다. 4주 뒤에는 벌떡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만석이가 호강하며 살았구먼. 난 그것도 모르고 영감이 더 도와주지 않는다고 앙탈이었으니 딱하다. 이러다가 영감은 가사에 이대로 습관이 되는 거 아녀? 그러면 안 되는데 싶어서 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