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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5) - 조개 무우국


BY 귀부인 2020-07-31

어머니한테 노인 돌봄 센터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드셨냐고 물어보니 
어제도, 그저께도 조개 무우국을 맛있게 드셨다 한다. 하지만 센터에서 
드신 점심 메뉴를 확인해 보니 어제는 오뎅국을, 그저께는 쇠고기 
미역국을 드셨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갯살 넣은 무우국을 드시고 싶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어, 어제 오후에 동서에게 조갯살 만원 어치와 큼지막한 무우 
하나를 사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오늘따라 늦잠 주무시는 어머니 잠 깨실라 까치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걸으며 조갯국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TV에서도 여러번 소개 된 
서천 특화 시장에서 사 가져 온, 탱글탱글 신선한 조갯살이 바닷 내음을 
물씬 풍긴다. 행여나 조갯살이 상처 입을라 조심조심,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깨끗한 물로 헹궈 채반에 담아두고, 
도마 위의 큼지막한 무우를 썬다.

그런데 아무리 조용조용하게 썰려해도 도마와 칼이 부딫치며 내는 탕탕 
소리는, 고요한 아침 공기를 뚫고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 방에 까지도 
들렸나 보다. 갑자기 등 뒤에서,

" 아침부터 뭐 한다니?" 하시며 드르륵 부엌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돌아보니 
울 어머니, 얼마나 이쁘신지....
아침 햇살보다 환하고 , 행복한 미소가 어머님 얼굴에 한가득이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자 짜증내며 칭얼대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깊게 푹 자고 일어나 편안하고,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암것도 하지마, 김치 짠지만 있으면 된게 번거롭게 당췌 힘들게 뭘 하지마." 
하시며 웃으시는데 하도 얼굴이 맑아 나도 모르게,
"어머나, 어머니 오늘 아침엔 어쩜 이리 이쁘실까요?" 라고 반가이 맞았다. 
평소 같았으면야 아이고 뭘 그럴라구 하실텐데,
"그려?" 하시곤 또 한 번 환하게 웃으시며 햇살같은 웃음을 내게 선물 하신다. 
그리곤 세수 해야겠다시며 바깥 마당으로 나가셨다.

한참이나 조용하길래 부엌에서 나와 봤더니 내가 임시로 거처하는 방의 화장대 
앞에 앉아 계시는게 아닌가?
거울 앞에서 얼굴에 로션을 바르시는 모습을 본 건 내가 어머님 댁으로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오늘이 처음인듯 하다. 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시곤 
공연히 멋적으신 듯,

"가을이라 (지금은 7월 이다) 얼굴이 땡겨서 그려어." 하시며 주름진 얼굴에 
골고루 로션을 펴 바르신다. 그리고 큼지막한 도끼빗으로 뽀글 뽀글 파마 
머리도 정성스레 빗으신다.

갑자기 혼자가 되신 어머님을 당분간 돌보기 위해 요르단에서 한국행을 결심 
했을땐 엄청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해마다 여름에 잠시 뵜었고, 며느리가 
된지도 30년 가까이 되긴 했지만 한 번도 시어머니와 단 둘이 지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기 이기는 하나 말로만 듣던 치매 증상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 된지도 모르고..... 

게다가 한국과는 달리 내 손으로 직접 음식을 해먹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힘든 요르단에, 이제껏 해 주는 음식만 꼬박꼬박 열심히 먹던 중년의 
남편을, 혼자 두고 오는 부담까지 겹쳐 매일 밤 잠을 설쳤었다.

하지만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지로 인해 충격 받으신 어머니를 홀로 둘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애들 데리고 어머니 돌보느라 수고한 동서도 
좀 쉬게 해줘야 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선택한 한국행 이었다. 아이들 교육이 
아니라 어머니 돌보기 위해 쉰 너머 선택한 기러기 생활이 벌써 두 달이 
되어 간다.

그동안은 매년 여름 열흘 내외 정도의 짧은 시간을 어머님과 함께 했었다. 
그 짧은 시간에 1년치 못다한 맏며느리 역할 다 해내려는 욕심에 늘 좋은 
모습을 보이려, 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가까이서 어머니 자주 뵙는 동서와는 달리, 어머님과는 고운정만 
있었지 미운정은 없었다. 서로 볼꼴 못볼꼴 다 보여 주고서야 갖게 되는, 
인간적인 끈끈한 정이 없었다.

이제까진 고운정만 쌓으며 늘 1년에 한번 오는 낯선 손님같은 며느리 였다면, 
이젠 함께 지내면서 미운정도 쌓고, 볼꼴 못볼꼴 다 보여주면서 진짜 며느리 
되어 보려 왔는데...

매일이 오늘 아침만 같다면,
어쩌나 ....

이쁜 치매 앓으시는 울 어머니와는 미운정 아니라 고운정 하나 더 
쌓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