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7
며칠 전부터 마늘 뽑아야 되는디, 마늘 뽑아야 되는디, 노래를 부르시길래 주말을 맞아 시댁을 찾은 동서 내외와 함께 아침을 먹자마자 마늘 밭으로 향했다. 평생 농사를 지어 오신 분이라 그러신지 방금 전 있었던 일은 기억 못하셔도, 몸에 벤 농사일은 온전히 기억하시나 보다.
며칠새 눈이 푹 꺼지고 헤쓱하니 생기라곤 전혀 없는 환자 같은 얼굴인데, 혹여 햇볕에라도 익으면 더 가관이겠다 싶어 먼지 쌓인 챙 넓은 밀짚모자 후후 불어 머리에다 꾹 눌러 썼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일주일 내내 한 숨도 자지 못해서 그런지 구름 위를 걷듯 발걸음이 허둥허둥 휘청인다.
집을 나서기 전,
" 어머닌 나오지 마시고 집에 가만 계셔요. 얼른 마늘 다 뽑고 올테니까요." 라고 당부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마늘 한 고랑을 체 다 뽑기도 전에 저 멀리서 허리 잔뜩 구부린 체, 느릿느릿 마늘밭을 향해 걸어 오시는 어머님이 보인다.
"아들이 밭에 있는데 어머니가 집에 가만 계실리 없죠오." 동서는 이미 예견 했다는듯 한마디 한다.
저만치 앞서 마늘을 뽑고 있는 시동생 뒤에서 동서와 나는 뽑아진 마늘을 가지런히 정리를 하며 뒤따르는데, 어머님도 함께 합류를 하셨다. 그러다 얼마 못 가,
"아이고,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죽겄네." 하시며 끙끙 앓으시는 거다. 보다 못한 내가,
"어머니, 집에 안 가셔도 좋으니까 밭 머리 감나무 밑에 가만 앉아 계셔요."
"아녀어, 내가 아퍼도 조금이라도 거들어야 우리 아들 일이 줄어들지이. 아이고, 우리 아들 힘들텐디이, 고상혀서 어떡혀어, 울 아들 아까워 죽겄네에." 하신다.
가만히 있을 동서가 아니다. 장난스레 농담 삼아 한 마디 한다.
"어머니, 아들 일하는 건 아깝고 우리 두 며느리들 힘들게 일하는 건 안 아까워요?" 하며 묻는다. 아무래도 동서는 어머니랑 함께한 시간이 많다보니 나처럼 조심스럴것도 없고, 이물이 없다보니 속에 있는 말도 참지 않고 스스럼 없이 하는 편이다.
" 아, 너들이야 괜찮지이이, 아들이 힘든게 아깝지이." 하시곤 저만치 앞서 마늘을 뽑고 있는 아들을 애처로이 바라보시며 한숨을 쉬신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서는 결혼 초 부터 일일이 예를 들 수는 없지만 어머님이 너무 아들, 아들 하면서 당신 아들만 챙기라 하셔서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자기도 친정에서 귀하게 큰 딸인데 싶어 속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왜 아니시겠냐는듯 잠시 샐쭉해지긴 했지만 무덤덤하게 넘긴다.
나 또한 어머니의 대답에 서운하단 생각없이 무덤덤하게 넘긴다. 그건 아마도 친정 어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 몸은 큰 딸 집에 기거 하시면서도 늘 아들, 아들하면서 아들만 걱정 하시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머님 세대는 아무래도 아들에 대한 편애가 심한게 아닌가 싶다. 그걸 어떻게 얼마만큼 표현 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일반적으로 치매를 앓게 되면 누구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마 어머님에게 그 대상은 시동생이 아닌가 싶다. 큰 아들은 코로나 때문에 못 들어 온다고 체념을 하셨는지 큰 아들은 아예 찾지도 않으신다. 하지만 작은 아들에 대한 집착은 기억을 잃어 가시면서 점점 더 심해 지시는듯 하다.
아무래도 아버님 돌아 가시고 나서 의지할 건 아들밖에 없다 싶어 더 그러신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 아들 잊지 않도록 기억을 오래 붙잡고 계셔야 할텐데 안타깝다.
끝날것 같지 않던 마늘캐기와 정리가 다행이 점심 시간 전에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 뜨겁지 않은 6월이라곤 하나, 오전 내내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며 땀까지 쏟고 나서인지 일어서는데 휘청하니 하늘이 노랗다. 마늘 캐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말 그대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다.
한 때 남편이랑 더 나이 들면 귀농이라도 해 보자 하고 의논한 적이 있다.
하아!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게 아니란 걸. 엄청난 육체적 노동을 감당할 체력이 안되는 난,
귀농의 꿈은 접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