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특별한 큰엄마 한분이 계셨다.
전화가 없던 시절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연분홍색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사립문을 들어 서시던 큰엄마.
사실난 큰엄마보다 늘 그 연분홍색 보따리가 더 반가웠다.
내게 한번도 찾아온적 없는 산타 할아버지 대신에 큰엄마는 크리스마스에나 달랑 한번 찾아오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1년에 몇번씩이나 찾아 오시는 고마우신 산타 할머니와도 같았다.
큰 엄마의 연분홍 보따리엔 시골에선 살 수 없는 예쁜 원피스도 있었고,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과자도 있었고,
때론 내가 갖고 싶어했던 눕히면 스르르 눈을 감는 신기한 인형도 있었다.
그러나 매번 나를 위한 선물이 있었던것은 아니다.
그럴때 약간은 실망 스러웠지만 그래도 난 아빠 돌아가신뒤에도 잊지않고 우리 가족을 늘 챙겨주시던
큰엄마가 고맙고 반가웠다.
조용하고 말이없던 친정 엄마와 달리 큰엄마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정말 여장부란 생각이 들었다.
20대 후반에 과부가되어 보따리 장사를 하며 자식들 대학 보내고 억척같이 사시느라
그리 되셨는지, 원래 성품이 사내대장부같았는지 모르겠으나
다른 동서들한테는 호랭이처럼 무섭게 대하셨지만 우리 친정 엄마한테는 한번도 화를 낸적이 없으셨다고한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으신지 큰 엄마는 거의 새벽까지 엄마 곁에 누워서도 이야길하셨다.
피곤해서 '아이고 형님 그만 주무시지요.'하고 짜증낼법도 하지만
친정 엄마는 한번도 그러시지 않고 추임새를 넣으며 큰 어머니의 이야기 보따리가
바닥날때까지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러다보니 그 이야기 소리에 나도 선잠을 자느라 큰엄마 오시는 날엔 아침이 몹시 피곤하였었다.
결코 하룻밤 이상 주무신적 없던 큰 엄만 담 날로 친정 엄마 챙겨주신 곡식들을 연분홍보따리에 싸
머리에 이시고 바람처럼 오신것처럼 또 그렇게 바람같이 사라 지셨다.
이젠 두분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뵐 수 없는 내 그리운 추억속에만 살아계신다.
지금 내 옆엔 나보다 10년이나 어린 동서가 있다.
해외로만 떠도는 나 대신해 가까이서 시부모님 잘 챙기는 이쁜 동서다.
말이 별로 없는 나와달리 동서는 참 이야기를 잘한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1년만에 보는 손윗동서에게 스스럼없이 자기 친구얘기며 친정얘기며
때론 시부모님한테 서운했던 이야기 등등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동서를 보며 난 뜬금없이 오늘 이렇게
큰엄마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내 친정엄마와 큰엄마의 사이가 좋으셨듯 나도 동서와 정말 자매처럼 잘 지내고 싶다.
큰 엄마가 내 친정엄마한테 베풀듯 베풀고 큰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던 친정엄마처럼 동서의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고 싶다.
오늘따라 큰엄마가,친정엄마가 몹시 그립다.도란도란 밤새 나누시던 이야기 소리들이 귓가를 맴도는듯하다.
가을이 시작 되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