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덴마크 농민들에게 농업 탄소세 부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88

자서전


BY 그대향기 2015-10-01

적어 뭐하겠나 싶다가도 아니지...

더 나이들어 기억이 가물거리거나 크게 아프기라도 한다면

내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는지 누가 알까?

내가 가고 난 다음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그래도 남겨두고 싶다.

쓸모없는 종이뭉치가 될지 불쏘시개가 될지​

아내를 그리고 엄마를 그리워할 아이들의 추억이 될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55년 전  내가 태어난 집 주소와 동네

내가 다닌 초등학교,중학교, 고등학교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 이름과 성격

내가 자랄 때의 가정형편 그리고 분위기

자라면서  피부로 느꼈던 ​건조하고 버석거렸던 가난의 추억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엄마가 된 기분

담담하게

그리고 가감없이 담백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중요하게 생각 안하더라도 나의 기록이니까

내 살아 온 삶이고 살아 내야 할 삶이니까

순간순간 느꼈던 기쁨과 좌절까지

내 기억이 요만이라도 할 때 적어두고 싶어졌다.

먼 훗날에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 지금의 나를 뒤돌아 보는 기회도 되겠고

더 먼 훗날에 이 엄마가 가고 없더라도

엄마의 꿈이나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기록이면 족하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한다.

내 개인의 단순한 기록들이니 이래야하고 저래야 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나한테도 꽃피는 봄날의 환희가 있었고

나한테도 여름 날의 열정이​ 태양처럼 뜨거웠던 적도 있었고

나한테도 무르익어 눈부셨던 가을 날의 충만함도 있었고

나한테도 조용히 ​안으로 성숙되어 가던 겨울 날의 침묵이 있었음을.

어느 날 내 이름 석자를 잃고 누구 엄마로 누구 아내로 산 30년

이제는 내가 나를 불러주고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싶다.

누구보다도 가슴앓이가 격했고 치열한 삶을 살아 낸  나의 20대​

세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숱하게 많았던 시행착오와 서툰 엄마노릇

아내로 맞벌이주부로 멋부릴 사이 없이 흘러 가 버린 나의 30대와 40대

이제는 젊다는 표현보다 무르익어가는 중년의 풍만한 멋이 흐르는 50대

아이들도 다 자라 둥지를 떠났고 이제는 둘만 남았다.

잔손길이 덜하니 나한테로 돌려야겠다.

내가 자란 이야기

내가 꿈꾸었던 삶

이루거나 그렇지 못했던 내 꿈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느껴야했고 아팠던 이야기들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꺼집어내고 다독거리고 달래야겠다.

참 많이도 힘들었던 나한테 위로도 해 주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대필해서 낸다는 흔하고 거창한 자서전이 아니라

그저 나한테 쓰는 내 이야기 그런 자서전을 쓸까 한다.

대학노트 한권쯤이거나 더 적거나

조금씩 생각 날 때 마다 한두줄도 좋고 신나면 몇장도 좋고

내가 가고 없을 때 아이들이 엄마를 느낄수 있게

유난히 정이 많은 아이들이니 읽고 울지도 모르니 슬프지 않게.ㅎㅎㅎ

누가 더 오래 살지 모르지만 내가 먼저 간다고  가정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한테 남길 유언장도  적어야겠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행복한 아내로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할까?

가냘프고 호리호리한 여우같은 아내가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할까?

양말짝 뒤집어 벗는다고 볼 때 마다 잔소리를 해서 미안하고 할까?

그 좋아하는 곱창요리를 냄새난다고 안해 줘서 미안하다고 할까?

비밀장부나 비상금을 꼬불쳐둔게 없으니 금전문제는 없겠고

그저 30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대체로 잘 살았으니 고맙고

밖에 여자친구 안 만들고 ​현대판 장애인으로 살아주니 그것도 고맙다고 할까?

나 죽고나면 꼭 재혼은 하라고 해야겠다.

가끔 나 없이 혼자 있는 날은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니 남편 혼자서는 못 살 것 같다.

덩치 크고 힘센 여자랑 살아봤으니 재혼은 코스모스같이 한들한들한 여자랑 하라고 할까?

음...큰딸한테는 뭐라고 하지?

맏이의 부담은 주지 말고 두 동생들 잘 다독거리며 아빠 자주 찾아 가 보라고?

애들한테 물려 줄 재산이 별로 없으니 미안하겠다.​

착한 삼남매가 나한테로 와 줘서 고마웠다고 사랑하게 해 줘서 감사했노라고 해야겠다.

세상은 살아보면 볼수록 아름다운거라면 믿을까?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해 주고 싶다.

따뜻한 가슴만 있다면 세상은 언제라도 행복하다고

뜨거운 사랑만 있다면 세상은 언제나 내편이더라고.

누구를 오래오래 미워하기보다는 그를 용서하는마음이 있을 때

용서받는 그보다 내가 먼저 행복하노라고.

누가 먼저 손을 내 밀어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위해 손 내밀 때

세상은....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나만의 보석이 되어 준다는 것.

낮의 일과를 마치고 조용한 밤 시간에

차근차근 조금씩 적어나가야겠다.

일기와는 다른 형식이 되겠지.

아니면 어떤 날은 일기처럼 쓰여질지도 모르겠지만.

컴퓨터가 아닌 노트에 내 손으로 직접.

삐뚤빼뚤하더라도 내 흔적들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