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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 때 왜 그랬어?


BY 그대향기 2014-06-25

나는 지금도 커다란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산다.

아마 내가 죽을 때 까지 없어지지 않을 아쉬움일 것 같다.

돌아가신 엄마가 원망스럽고 엄마가 야속한.

지금에 와서 아쉬워하고 가슴이 아려봤자 뭐 어쩌자는건 아닌데 많이 아프다.

한 여자의 인생항로가 자신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흘러 가 버린게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아마도 다른 인생이 펼쳐졌겠지만.

그 때는 너무 어렸고 힘이ㅡ 없었다.

 

5남매 중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는 아들만 있던 집에 외동 딸로 태어났다.

귀하게 태어났다고 이름다 귀하게 지음을 받았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딸 낳았다고 하루 온 종일 동네 잔치를 한 아버지셨지만 가정에는 소홀하셨다.

뼈대가 장군감이었던 아버지와 아담하게 생긴 엄마 사이에서 유독 나만 아버지를 닮았다.

오빠들은 엄마를 닮아 키도 보통인 반면에 딸인 나만 아버지를 닮아서 크고 힘도 쎘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우뚝한 키 때문에 운동은 못하는게 없었다.

키만 크다고 운동을 다 잘하는건 아니지만 힘도 있다보니 육상과 구기종목에는 탁월했다.

고등학교 졸업까지와  세 아이들 운동회 때까지 2등은 단 한번도 안 해 본 달리기 실력이었다.

핸드볼부 주장을 하면서 나의 팔힘은 제 빛을 발휘했다고 봐야한다.

초등학교 여학생이 연습할 아이가 없어서 남자코치 선생님하고만 패스연습을 했다.

전국체전에 가서도 좋은 성적을 냈지만 팀이 지는 바람에 우승은 좌절됐지만

코치선생님은 졸업하기 전에 서울에 체육장학생으로 나를 보내시려고 준비를 다 하셨다.

그러나 엄마가 친인척 한사람도 없는 서울 땅에 열두살 어린 나를 보내주지 않으셨다.

운동으로 대성을 할 학생이니 꼭 보내주십사고 엄마를 몇번이나 찾아왔지만

엄마는 한사코 마다하셨다.

엄마 그 때 왜 그랬어?

나 그냥 서울로 보내주셨더라면 지금쯤 뭐가 돼 있어도 돼 있을건데 솥뚜껑이나 돌리게 하고.

우생순의 주인공이 되어 있어도 될 형편이었는데 엄마 그 때 왜 그랬어?

난 우리 아이들 외국 가서 몇년씩 있다 온대도 다 가라고 했어.

엄마가 나를 가둬 놓은게 너무 한이 되어 우리 아이들한테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거든.

엄마의 반대 때문에 인생 전부를 손해보게 할 수는 없잖아.

나는 그랬는데 엄만 그 때 너무했어.

그냥 보내줬더라면 지금 이런 후회는 안하고 살건데.

또 한번 엄마는 나를 주저앉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군에 엄마 몰래 지원했고 신체검사와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서울에서 면접만 보면 되는데 엄만 그 때는 단식투쟁을 하며 나를 말렸어.

여군이 다 무슨 소리냐며.....

난 집을 떠나고 싶었고 나 혼자 뭔가를 이루고 싶었는데 엄만 번번히 나를 가로막았어.

아버지의 무능함도 가난도 다 싫은 나를 엄만 곁에 두고 보호아닌 보호를 하신 셈이지.

혼자라는 부담감은 컸겠지만 독립은 할 수 있었는데 엄만 두번씩이나 나를 좌절시키고...

왜 그랬어 왜?

큰 덩치로 뭐든 맡겨주면 주는대로 척척 해 냈던 나를 선생님들은 다들 잘한다 하셨고

오빠들이 못 받았던  줄반장 상에다가 학력 우수상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상까지.

아~

전국대회 웅변 최우수상 여럿까지 많네.

번쩍번쩍한 우승 트로피도 여럿 받았고.ㅎㅎㅎ

엄만 거친 머스마들만 키우다가 딸이라고 하나 낳은게 또 머스마 닮아서

서운하셨겠지만 머스마닮은 가스나는 그래도 그 덕을 많이도 봤구만.

큰 키 덕도 많이 봤고 힘쎈 덕도 많이 봤지.

그래도 피곤할 때도 많았지 뭐.

다른 여자애들보다 키 크고 힘이 쎄다는 이유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내 담당이었으니.

엄만 그래도 여자라고 엄마 일을 곧잘 거들어 주고 말벗이 되는 나를 곁에 두고 싶었던 거야?

나는 멀리멀리로 튀어가고 싶었는데 커다란 보호막을 쳐 두고 나를 가둔거야?

나를 맏이로 낳았더라면 좋을 뻔 하셨다는 아쉬움을 나타내시고?

거친 머스마 넷에 가정을 등진 아버지 사이에서 내가 엄마의 위로가 되었던거야?

그래서 나를 붙들어 앉힌거였어?

나는 세월을 거꾸로 돌릴 기회가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과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돌아 가고 싶어 엄마.

체육장학생으로 서울에 가 보고 싶고 그런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어.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싶어.

썩 잘하는 공부는 아니지만 내 하고 싶은 공부는 할만큼 머리는 되지 싶거든.

늦깍이공부라는 것도 있던데 나는 자신없어.

요즘들어 뭔가를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까맣게 생각이 안 날 때가 더 많아.

그래서 한창 공부할 머리가 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고등학교 때 부터 소녀 가장을 해야 했던 그런 열 일곱살 말고 그냥 열 일곱살로.

그런 시계 어디 안 팔까 엄마?

그 때 왜 그렇게 어려웠고 힘든 시간들이었을까?

나 돌아가고 싶어.

내 꿈이 파랗게 자라던 그 시절로.

지금이 불행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어서 그래.

자상한 남편에 사랑스런 두 딸 그리고 듬직한 아들에 귀여운 외손녀가 둘이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나고 내 꿈은 아직도 썩어지지가 않아서....그래서 그래.

엄마 그 때 왜 그랬어?